김복동 할머니 추모식 베를린과 복흠에서 열려

“나비가 되어서 온 천지 세계로 날아다니고 싶어”
뉴스일자: 2019년02월11일 00시00분

 
130일부터 23일까지 코리아협의회에서 여성평화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할머니의 분향소가 차려졌다. 많은 교민들이 분향소를 찾아 그분의 넋을 기렸다. 31일에는 정범구 주독 한국 대사가 분향소를 찾아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 코리아협의회 관계자 및 교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216시부터 코리아협의회에서 고() 김복동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고인을 위해 헌화하고, 분향하고자 하는 교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추모식은 생전 영상, 민요, 살풀이춤, 추모사, 합동분향의 순서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추모식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활동하셨던 김복동 할머니의 3분가량의 생전 영상들을 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영상이 상영되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영상이 끝난 뒤에는 소솔이씨의 민요 아리랑과 김금선씨의 살풀이춤이 진행됐다. 아리랑을 부를 때에는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합창하며 고인을 위로했다. 다음으로는 예술가 김금선씨가 살풀이 가락에 맞춰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코리아협의회 소속 AG Trostfrauen의 김진향, 최영숙, 미치코 카지무라 그리고 한정화 대표의 추모사가 진행됐다. 생전에 만나 뵀었던 고인과의 추억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추모사였다. 이날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하는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식에 참석했다. 무엇보다 한국 교민뿐만 아니라 독일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해 그 의미를 더했다.
 
합동분향이 끝난 후에도 추모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고인의 넋을 기리면 헌화, 분향을 이어갔다. 추모를 끝낸 사람들은 추모 공간 한편에 마련된 노랑나비에 추모의 글을 정성스럽게 적어서 분향소 주위에 붙여 나갔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평화운동가로 위안부 피해를 전 세계에 알리고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힘써왔다. 할머니는 1992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고발했고, 2012년에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했으며, 2017년에는 재일 조선학교 학생 지원을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같은 해 대장암 판정을 받았고, 병세가 악화되면서 128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특히, 2015년에는 베를린을 직접 방문하셔서 코리아협의회의 AG Trostfrauen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연설 및 증언을 하시고, 함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도 하시고, 국회에 방문하여 증언하시고 기자들과 활발한 인터뷰를 하는 등 베를린과의 인연도 상당히 깊다.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유지는 “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지원하는 문제를 나를 대신해 끝까지 해 달라였다. 한국에서는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됐으며, 유해는 충남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됐다.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한편 NRW () 김복동 할머니 추모식은 22일 보쿰 한국인의 집에서 한국민중문화모임 최태호 회장의 사회로 추모식을 시작 하였다.
 
서의실 목사님의 추모가 와 고 김복동 할머니의 양력 소개후 장경옥님 의 가야금 반주에 맞추어 아리랑을 함께 부르고 추용남 목사님 추모 시 낭독과 분향으로 가시는 길 에 평안을 기원하였다.
 
노랑나비를 손에, 손에 들고 할머니 의 뒤를 따르겠다는 약속으로 엄숙한 추모식을 끝내고 준비한 식사와 여러 이야기로 떠나신 할머니의 허전함을 달래다.
: 코리아협의회, 5.18기념재단 인턴 김기범
사진: 코리아협의회, 조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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