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한국 방문 일정 12일 – (9)

황만섭 (재독한인총연합회 자문위원)
뉴스일자: 2018년08월20일 00시00분

(2017. 6. 5 ~ 6.11 일본, 6.11-6.19 한국)
 
총독부가 이른바 내선(內鮮) 불교정책을 세운 후, 31본산(本山) 주지스님들을 모아놓고 만해 한용운 선생을 연사로 초청했다. 억지로 끌려 나온 만해는 단 2분 동안의 자문자답으로 강연을 마쳤다. “세상에 제일 더러운 것은?” “!”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은?” “썩고 있는 시체!” “그보다 더한 것은?” “31본산 주지 너희 놈들이다만해는 호통을 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당시 주지스님들은 종교지도자로서의 품위나 품격 그리고 양심과 기개는 없었고, 오로지 친일파로 전락해 자신들의 안락과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만해 선생은 그걸 시체에다가 비유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만해는 임기응변과 재치가 넘쳤고, 동작과 주먹이 빨라 싸움도 잘했다. 주먹은 전광석화 같이 빨랐고 또 셌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자기와 같이 수감된 동료들이 극형을 받을 것이란 소식을 듣고 안색이 파래지자, “독립만세를 부르고도 살아남을 생각을 했단 말이냐?”고 외치며 옆에 있던 변기를 던지기도 했다. 만해는 그들과 같이 출옥할 때 얼싸안고 기뻐했고, 위로하면서 영접 나온 인사들에게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더러운 자식들, 오죽 못났으면 영접을 해? 너희들은 왜 영접받을 생각을 못하느냐?”고 소리쳤다. 어느 강연 장에서의 일이다. 만해는 우리 최대의 원수는 누구겠습니까? 모두 일본이라고 합니다.” 임석한 일본순사가 놀라 급히 연설 중지!”를 외치자, 만해는 뒷말을 이어갔다. “일본이 원수라지만, 더 큰 원수는 우리들의 게으름입니다.” 그렇게 위기를 피해갔던 만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월남 이상재(月南李商在) 선생의 사회장(社會葬) 때 발기인이 되기를 거부했던 만해였다. 만해는 19446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하고 말았다. 장례는 전통불교의식에 따라 화장하였으며, 유해는 망우리묘지에 안장되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영화 <허스토리>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지어낸 것이지만, 줄거리 자체는 실제 사실인 작품이다. 허스토리(herstory)란 말은 남성 중심의 역사인 히스토리(history)에 대한 반성적 의미를 담은 신조어다. 부산에서 여행사를 하던 사장 문정숙(김희애 분)은 일본고객들과의 관계가 두터웠다. 그가 위안부문제에 뛰어들자 그들이 등을 돌렸다. 그는 배정길(김해숙 분)을 비롯한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함께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선박과 비행기로 오갔다. 그렇게 재판을 벌인 끝에 제소 6년 만인 1998, 1심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관부 재판은 한일 위안부문제에서 '획기적'이고도 '돌발적'인 사건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국가책임을 인정한 최초이자 유일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무료변론을 펼치는 재일동포 변호사 이상일(김준한 분)이 영화 속에서 언급하듯이, 일본에는 위안부 문제의 근거가 될 만한 법률이 없다. 판사는 법률이 없으면 재판을 못한다. 그래서 관부 재판을 담당한 시모노세키 지부는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용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시모노세키 지부는 1998427일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3개 항으로 이뤄진 판결문 제1항은 피고 일본은 "3명의 위안부 피해자에게 각각 30만 엔과 199691일부터 지불완료까지 연 5푼 비율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지연이자는 지불의무발생시점부터 지불의무이행시점까지의 채무불이행을 뜻한다. 위자료는 금액이 적을 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한테만 국한된 것이었고, 피해자들이 강력히 요구했던 일본국가의 사죄도, 피해배상도 없었다. 위로금 성격의 위자료를 주라고 했을 뿐이었다.
 
1심 법원은 근거법률이 없는데도 입법부작위 이론을 내세워 일본의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입법부작위는 단순히 입법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입법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입법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판결을 얻어낸 피해자들과 여행사 사장과 재일동포 변호사들도 대단했지만, 판결을 내린 일본판사들도 훌륭했다. 국가의 위신보다 국가의 양심을 우선시한 판사들이었고, 일본 정부는 당연히 충격을 받았다. 영화 끝부분 자막에서 언급된 것처럼 일본판사들은 이 사건으로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199384일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의 담화는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면서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솔직히 인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 또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가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로서도 앞으로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려야 할 문제다.
 
판결문은 "피고(일본)는 당연히 종군위안부 제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텐데도 일본헌법제정 후에도 수년간 위의 작위의무(피해자 구제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방치하여 고통을 배가시켰다는 점을 인정한 뒤 이렇게 말한다.
 
"늦어도 위 내각관방장관 담화가 나온 199384일 이후의 작위의무는 위안부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회복하기 위한 특별한 배상입법을 해야 할 일본헌법상의 의무로 전환되었고, 그 취지는 명확하게 국회에 대한 입법 과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헌법제정 당시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한 일본의 작위의무가 있었고 이 의무는 고노 담화를 계기로 구체적인 입법의무로 전환됐는데도, 일본이 1998427일 현재까지도 관련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므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부 재판을 통해 약간이라도 보여주었던 일본의 양심은 그 뒤 다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2심과 3심에서 법원은 일본의 국가책임을 부정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가 아베 신조 정권이 출현하면서 일본의 양심은 멀리멀리 도망가고 말았다. 식민지 피해여성들의 한을 풀고 일본 국가의 양심을 찾아주기 위한 'hi스토리'가 아닌 'her스토리'의 투쟁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가 그래서 더 절실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바쁘기도 하고 시간도 없는데다가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변화가 빠르고 복잡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헷갈릴 때가 많다. 나는 언젠가부터 한 권의 책을 한두 장의 글로 줄여서 시간이 없어 쩔쩔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생각에 잠기지만, 그게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마음은 바쁘고,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나는 그저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자칫 조금만 게으름 피우다가는 어느 분야에선가 사회의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어쩌면 옛날옛적에 괴나리봇짐지고 천안삼거리를 지나 한양천리 가던 시절이 느리고 편안해서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는다.
*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오마이뉴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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