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지! (3, 마지막 회)

효린 강정희( 수필가 시인 소설가 시조 시인)
뉴스일자: 2018년08월20일 00시00분

 
1266년 프랑스 왕족이자 첫 프랑스계 시칠리아 왕이었던 양주의 샤를이 나폴리로 천도를 하였고 시칠리아왕국 (1282년까지), 나폴리 왕국 (1282년 이후)의 일원으로 나폴리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빈 회의 이후 나폴리는 양시칠리아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쇠퇴기 이후 100년이 흘러 이탈리아 통합 왕국이 출범하자 나폴리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보았지만 빠르게 복구되었다. 전후 이탈리아의 도시화와 산업화에 발을 맞춰 이주 노동자들로 인구가 많이 증가하고, 일파 로메오 등 여러 국영 기업들이 공장을 열어 이탈리아 남부의 산업화에 기여했다.
나폴리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온난한 겨울과 무덥고 건조한 여름이다. 나폴리만에서 흘러오는 풍부한 바람과 자연의 축복으로 로마 대에는 황제들이 가장 사랑했던 휴양지 중 하나였다.
 
나폴리 주의 주도인 나폴리는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전체보다 경제 구조가 취약하다. 전체 103개 도중 94위에 머물고 있을 정도다. 사실 이러한 통계는 공식적인 통계이기는 하지만 암시장 거래나 관광업에서 누리는 부가가치가 빠진 경우도 있어 아주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폴리는 북부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탈리아 남부에서 비교적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전후 이탈리아의 고도 성장기에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후에 피아트에 매각된 알파 로메오의 공장처럼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낮은 효율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점 때문에 문을 닫은 제철소 같은 경우도 있었다. 실직률은 20~30%에 달하며 물론 공식적으로 통계치에 잡히지 않는 산업/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모처럼 우리 가족 삼 대가 함께한 2주일간의 이탈리아 휴가, 폭염에 매일 15~2만 보를 걸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차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말수가 적어지고 크게 웃을 일이 적어진 나이에 틀에 박힌 수법에서 벗어나 아침에 눈을 뜨면 아들을 볼 수 있고 손자의 재롱떠는 모습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즐거움은 말라빠진 토란 줄기에 물이 오르듯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밀고 당기고 함께하는 아름다운 꽃수레였다. 아들의 따뜻한 배려에 찔끔찔끔 눈물이 감돌기도 했다.
 
피자와 스파게티 음식이 나폴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 정통 피자 음식점 Pizzeria ‘Da Michele’이 있는데 그곳을 찾아간 우리는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이 이미 번호표를 뽑고서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처럼 피자 음식점에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 식당은 약 20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비좁은 곳이어서 우린 또 기다려야 했는데 아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피자를 주문해서 밖에서 먹었다. 정말 말 그대로 최고의 맛이었다. 다음은 피자를 먹고 후식으로 즐겨 먹는다는 제과소를 찾아갔다. SFOGLIATELLA라는 후식은 동그란 머핀 모양인데 치즈에 계피와 오랜지 향이 나는 생전 먹어보지 못한 특이한 음식이었다. 구워내는 베이커가 두 사람이었는데 이곳 역시 많은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문을 받고 즉시 구워내기 때문에 싱싱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맛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나폴리의 낭만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나폴리 시내에서 약 40Km 떨어진 숙소를 찾았다. 상당히 지대가 높은 Montepuliciano라는 도시 아파트에 도착하여 쌓인 빨래를 세탁하고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바삭바삭한 김에 라면을 삶아서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었더니 정신이 번쩍 났다. 우리 영준이는 이층 침대를 오르락거리며 싱글벙글한다. 호텔은 편리한 점이 많지만, 4인용 침대 아파트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오손도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신선한 산 공기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고 10시경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우린 피렌체에 도착하여 1박을 편안하게 보내고 밀라노로 향했다. 밀라노에는 시조 동우회 회원인 소프라노 김XX가 살고 있어서 그분과 연결이 되어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났지만, 친근감이 가는 친절한 분이었다.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인연의 고리는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지만, 그 고리가 녹슬지 않게 가꾸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하지 않든가.
 
긍정적이고 정이 넘치는 낭만의 도시 이탈리아를 언젠가 또 오자는 아들의 약속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축복받은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 Arridiverci(*) 작별 인사를 했다.
왠지 모르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짧다고 했듯이 밀라노에서 우리 집까지는 장장 850Km였지만, 늦게라도 집으로 가고 싶다는 아들의 뜻에 따라 저녁 늦게 도착했다.
누가 곁에 숯불 다리미를 들이대고 있는 듯한 날씨에 4,000 Km을 운전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말이 없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아들에게 참 잘했다고 이탈리아 햇빛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여정을 풀고 꿈처럼 지나간 휴가의 파노라마를 가슴 깊이 새기며 기지개를 켜고 직각을 이룬다. 초록 기운을 충전한 어미 새가 새끼 새를 위하여 먹이를 나르는 것처럼 시장엘 드나들며 보양식을 만들어 수고한 가족들에게 공급하며 의미 있는 여행을 잘 마치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발걸음을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새로운 장소 낯선 공기 색다른 소리와 향기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촉감을 느껴보고 새로운 사람들의 말씨와 정을 느끼며 목적 없는 여유로움은 언제나 평안한 충전의 시간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감성만큼 느낀다고 이번 여행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가족 사랑이 돈독해짐을 느낀다.
 
피붙이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을 비비며 만든 아름다운 새로운 추억을 그 무엇과 바꾸리. 친절이 웃음이고 웃음이 친절인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는 모두가 고적이고 박물관이다. 건물 기둥 하나하나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든 것이 압도적인 나라, 광 대국인 이탈리아는 해외에서 4,370만 명이 방문하여 세계에서 5번째로 관광객이 많은 나라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서(44) 보여주듯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어 엄청난 관광 수입이 있는데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허덕이는 이탈리아가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며 복을 부르는 삶의 질그릇을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7월은 내 가슴에 뜨겁게 피어있는 하냥 깊은 오종종한 추억이다. 다음에 또 오자는 아들의 약속을 은근히 바라는 엄마의 무지개 꿈이 욕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Auf wiedersehen! 또 봐요, 작별 인사
자료출처: 위키 백과
 
가족 사랑
가난한 나의 영혼 설움 속에 찾은 보석
흑인 아닌 흑인 남편 자랑스런 두 아들
포근히 불어난 다섯 식구 36.5도 체온 되어
마주 보며 웃어주고 귀 쫑긋 기울이고
소곤소곤 정겹게 머리를 마주 대며
고맙고 사랑한다고 포화(飽和)처럼 쏟으리.
* 포화더 이상의 양을 수용할 수 없이 가득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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