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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7월29일 00시00분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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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의 중인환시 (52)
백제를 건설한 온조왕
지난편에 고구려를 건설한 동명성왕 고주몽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고주몽의 아들인 온조왕은 어떻게 백제를 건설할 수 있었는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를 종합해 보았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이다. 일본에서는 음태귀수왕(陰太貴首王)이라고 부른다. 온조왕은 고구려 고주몽의 둘째 아들이다. 정확히는 현부인과의 둘째 아들이고 전처에게서 얻은 아들까지 셈하면 셋째로 막내아들이 된다.
 
고주몽이 북부여에서 졸본성으로 왔을 때 졸본성의 왕에게는 아들이 없이 딸만 셋이 있었다. 어느 날 주민들을 데리고 이주해 온 고주몽을 만나 본 졸본성의 왕은 그가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첫눈에 알아보고 사위를 삼으려고 했다.
크게 잔치를 베풀어 고주몽이 이주해 온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딸 셋 중에서도 가장 영리하고 예뻤던 둘째 딸을 그의 아내로 받아 줄 것을 부탁하자 고주몽도 어쩔 수 없이 승락하고 말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둘 사이에서 첫째 아들 비류(沸流)왕자가 태어났고 온조(溫祚)왕자가 둘째로 태어났다.
 
주몽이 졸본성 왕의 강요와 권유로 그의 둘째 딸과 결혼을 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북부여에 있을 때 전처에게서 이미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바로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유리(琉璃)왕자이다.
 
그 적자인 유리왕자가 성장하여 단신으로 졸본성의 아버지를 찿아오니 왕위를 이을 태자의 자리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둘째부인에서 태어난 서자 비류와 온조왕자는 그들이 태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부하를 데리고 남쪽으로 떠나니 이를 알고 따라 오는 이가 수백 명에 달했다.
비류왕자는 미추홀(彌鄒忽)에 터를 잡았고 온조왕자는 위례성(慰禮城))에 터를 잡은 뒤에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했다.
 
이때가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성제(成帝) 홍가(鴻嘉) 3년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2100여년전의 일이다.
 
비류와 온조왕자가 서로 다른 곳에 도읍을 정하고 난 뒤 형인 비류가 동생이 도읍으로 정한 위례성지역으로 와보니 자기가 정한 지역보다 더욱 비옥하고 도읍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 이를 상심한 나머지 마음의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이에 비류왕자를 따라 갔던 백성들도 미추홀에서 온조왕자가 세운 위례성으로 모이니 도읍지는 더욱 크게 번성해져 갔다.
 
지리적 안정과 백성의 생활안정도 제대로 찾아갈 즈음 온조왕자는 십제(十濟)로 불렀던 나라이름을 고치기로 결정하고 형과 같이 남으로 이주할 때 많은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주었다(百姓樂從) 하여 백제(百濟)로 고치기로 했다.
 
백제는 성왕이 남부여로 바꿀 때까지 국호로 쓰였지만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시작된 것이라면서 성씨를 부여(扶餘)로 바꾸었다.
 
온조왕의 본명이 묘호라는 주장도 있지만 백제 역사상 최초로 시호를 받은 군주는 성왕의 부친인 무령왕이었던 것을 보면 백제는 성왕 1년 이전에는 묘호와 시호 둘 다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어 묘호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은 맞지 않는 것으로 평해지고 있다.
온조왕은 나라가 융성해지고 커가게 되자 궁궐도 넓혀가며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고주몽의 사당도 크게 세워 두었다.
 
고대국가에서 나라의 발전이라는 것은 성을 높이 쌓고 전쟁이 발발할 때면 꼭 이겨야만 국가가 영위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지금이야 무기의 발달로 전술이 절대적이지만 당시에는 창과 활과 칼이 유일한 무기였을 때에는 체력이 국력일 수밖에 없었다.
 
온조왕도 북쪽에 말갈족과 국경을 인접하고 있던 때여서 그들의 침략을 막으려면 성을 높이 쌓고 창과 활을 만드는 일에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원전 16년에 말갈족이 백제를 침입해 왔지만 대패해 달아났고, 기원전 11년에도 말갈족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지만 10여일만에 가져 온 식량이 떨어지자 자진 후퇴해 돌아 갔음에도 기원전 1년에 또 다시 쳐들어오자 이번에는 그들의 추장을 생포하여 더 이상의 침입이 없게 할 정도로 국방을 튼튼히 했다.
 
온조왕은 46년간이라는 오랜 세월 왕위에 있는 동안 국방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전쟁도 일으켜 우리 나라 중남부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마한(馬韓), 변한(弁韓), 진한(辰韓)인 삼한(三韓)을 백제에 통합시켜가며 땅을 넓혀가다가 서기282월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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