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빈터에서
HOME 회사소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뉴스플러스 > 기고/연재
2019년07월01일 00시00분 70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빈터에서
류현옥
지붕 밑 다락방의 대형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면 우리 동네 뒤쪽에 자리한 빈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버려진 땅에는 온갖 풀꽃이 가득하다. 그곳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기획된 것이 아닌 자연이 이룬 동산이다. 잊고 살아온 고향 마을이 은은하게 마음속으로 날라 온다.
지나가는 바람 덕분에 어디에선가 실어온 씨앗들을 떨구고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고 해마다 꽃을 피우는 곳이다. 인근 사람들이 애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는 오솔길도 있다. 없어진 농가의 집터 위에 흙을 덮어 올린 듯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는 곳에 가죽나무 몇 그루가 서있다. 가을이면 유난히 검붉은 빛의 단풍든 잎사귀가 눈에 뜨였기에 쐐기풀을 젖히고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부서진 벽돌들, 담벼락의 흔적이 작은 언덕을 이루었고 온갖 이름 모르는 풀들이 무성하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까치밤나무 덤불로 경계를 이룬 채소밭도 보였다. 빈터의 모퉁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곳이다. 나는 냄새로 가죽나무를 확인한 후로 봄이면 연한 가죽 순을 꺾어와 책상 위에 꽂았다. 방치한 뿌리로 죽지 않은 난초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초여름이면 마가렛 흰 꽃과 붉은 양귀비꽃들이 언덕을 뒤덮었다. 오솔길 주변에는 산딸기 넝쿨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애견을 동반한 할아버지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이 땅에 대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 이 자연공원은 통일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땅이다. 그는 독일이 통일된 지 30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이런 빈터가 있고 방치되어 있는데 도시생활을 여유 있게 해주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어서 좋다고 했다.
 
토지주인이 신고를 해야 할 시한이 만료되어서 베를린시의 소유가 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 빈터가 주택지로 정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근처의 주민들이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구청에 탄원서를 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빈터와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철도 옆의 아파트에 살겠다고 시내에서 이사 올 사람도 없을 것이라 도시 계획자들이 쉽게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경 보호자들은 숨을 쉬고 잠간 눈길을 멈출 수 있는 빈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로비를 벌였다. 그곳에 투자를 할 건축 회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20여년이 더 흘렀다. 제일 가까운 이웃이 될 우리가 살고 있는 100세대의 동네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주택단지가 되어서 집들이 들어서고 젊은 세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몰려오면 전원도시의 분위기가 깨어지고 시끄러운 동네가 될 것이라고 반대하는 편과 아파트건물을 따라 슈퍼도 들어오고 갖가지 작은 상점들이 들어와 신도시가 형성되면 이곳 땅값이 뛰어 오를 것이고 살고 있는 집의 가치도 오를 것이기에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될 것이라는 찬성하는 파다. 반대자들은 조용한 곳을 살기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더 조용한 곳으로 옮길 것이고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면 오히려 땅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제 곧 칠순이 되는 우리부부는 기껏 오래 살아야 20여년이 지나면 스스로 이삿짐을 싸서 떠나지 않아도 이삿짐처럼 실려 나가게 될 형편이기에 땅값이나 집값에 무심할 수밖에 없다. 지가가 오른다 하여 여생을 더 풍요롭지는 않을 것이며 그때까지 살아가는데 별 도움도 되지 않을 일이다.
 
나의 산책길은 빈터의 경계선인 철길과 평행하게 열리는 숲길이다. 라일락 숲이 있고 그 사이에 늙은 호두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심은 것으로 생각되는 사과나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시달린 나무의 꽃들이 해마다 넓이를 키우고 있다. 군데군데 자라기 시작한 포구나무가 초가을이면 빨간 열매를 달고 바람에 흔들린다.
얼마 전 고국에서 방문 온 지인이 우리 집에 며칠간 머물렀다. 저녁 식사 후 산책을 나가 이곳을 돌아보면서 한 말이다.
 
이런 곳에 살다가 한국에 와서는 못 삽니다.”
산천이 아름답기로는 대한민국도 어느 나라에 뒤떨어지지는 않지요.”
이런 공터가 없어요. 좁은 나라여서 그런지 이런 땅을 가만 두지 않거든요. 독일은 정말 여유 있는 나라입니다. 빈터의 곳곳에 호박씨를 땅속에 묻어놓으면 덩굴이 기어 다니다가 호박꽃도 피고, 가을이면 여기저기 누룽둥이가 나타날 것이고 열무 씨를 뿌려 놓으면 그늘 밑에서 자라나 부드럽고 맛있는 바이오 채소를 수확을 할 것인데 이렇게 땅을 놀리다니 ....”
 
시골출신인 그는 아깝다고 했다. 통일된 새 정부가 지주를 찾지 못한 땅이라고 하자 더욱 열을 올렸다. 나라 땅은 개인 소유지보다 지가가 낮으니 담당공무원들이 활발하게 흥정을 하며 인맥을 통한 흥정이 이루어 질 것이란다. 그분은 돈 덩어리를 그냥 방치해두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로부터 고국의 부동산 투기사업 스트레스가 역력하게 느껴졌다.
 
다음날은 내가 자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곤 하는 한느산(Hahneberg)등성이로 갔다. 걸어서 20분이면 작은 동산이 시작되는 등성이에 도착한다. 거기에도 여전하게 버려진 빈터가 있고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 곳을 지난다. 손님은 대도시 베를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부럽다고 했다. 겨울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한 시간 걷기에 딱 좋은 곳이다.
 
한느산은 역사적인 곳으로 유명한 곳일 뿐 아니라 환경보호지역이다. 1870~1871년에는 독일과 프랑스 전쟁 때 무기창고로 이용되었고, 1923년 독일 역사에 한 페이지를 남긴 쿠테타 사건 당시에 테러단이 점령하여 스판다우의 치다델라와 함께 무기창고로 이용한 곳이다. 전후 파괴된 베를린 복귀를 위해 요새를 이루고 있던 벽돌을 뜯어 와서 베를린 시내 건물 재건에 썼고 시내에 쌓인 건물쓰레기는 이곳으로 옮겨 산을 이루었는데 한느산(Hahneberg)으로 명명했다.
 
그동안 자란 나무들이 지금은 숲을 이루고 있고 박쥐들이 모여 사는 박쥐 보호 지역이다. 통일 전까지는 동서독의 국경선에 자리하고 있어 봉쇄지역이었다가 1990년이 되어서야 민간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옛 요새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영화감독이며 배우인 쿠엔틴 타란티노Tarantino가 그의 영화 <거친 녀석들Inglourius Basterds>를 이곳을 배경으로 제작하여 대박을 친 곳이기도 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의 외형을 바꾸고 심지어는 파괴한다. 그러나 일정한 휴식기간을 주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고국의 손님은 독일에 와서 자연을 보호하며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처럼 너그러워지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던 동양의 정신대로라면 자연과의 친화를 더 잘 해야 할 것인데, 현실은 반대가 되었다. 너무 많은 인구가 과밀하게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반도 비무장지대를 공원화하려는 의지가 새롭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에 와서도 바쁘게 살 때는 찌들려 살다보니 빈터가 주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모르고 지냈다. 공터를 보고도 그곳을 놀리지 말고 뭔가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천성적인 마음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여유 있게 살다보면 이런 빈터를 생산지로 보지 않고 생활공간으로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지도 모른다. 손님의 말은 지금 고국의 사정은 세계 최고의 자살과 최저의 출산율로 매우 걱정이라고 한다. 삶에 대한 의지와 세계관이 변화된 고국의 사회풍조인데 원인을 밝혀 그 방향을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란다.
 
한느산(Hahneberg)에서 내려오는 길가 풀밭에서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자리를 깔고 앉아 음료와 음식을 펼쳐 놓았다.
 
피부색으로 봐서 독일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데요.”
 
나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난민들의 숙소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독일이 군복무 징병제를 없앤 지도 오래 되었고, 비어있던 군인들의 막사를 수리해서 난민들의 숙소 로 이용하고 있다고. 그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거기에 자리를 펴고 있는지 모르지만 고향을 떠난 아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즐거운 피크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소망하면서 귀가하였다.
 
112816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기고/연재섹션 목록으로
[문화]일본 “독도는 한...
[문화]KIM Duk-Soo Samul...
[뉴스]재독화가 황수잔의...
[문화]이동준변호사의 법...
[기고/연재]미국이야기--(4)
 

이름 비밀번호
[1]
다음기사 : 정원교의 중인환시 (49) (2019-07-01 00:00:00)
이전기사 : 미국이야기--(2) (2019-07-01 00:00:00)
“제74주년 광복절 기념식 및 제...  
파독광부기념회관-재독한인문화...  
재독일대한체육회 임시총회 - 회...
2019년 광복절행사 해병대 캠프 ...
Internationale Klaviermusik Ko...
자동차퍽치기 당하다!?
책&삶에서 독일 소식을 전해줄 ...
한글로망 자랑스런 한글 세계화
    답변 : 한국을 한국이라 말...
독일의사들 선운사에서 한국기공...
피해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Damenmode bis 80% Duesseldorf-...
아름다운공간
CoOpera 가이드 모집공고
총신대 한국어교원양성과정과 함...
[중소기업진흥공단 SBC] 2019년도 해외민간네트워크 ...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포럼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