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짧게 간추린 러시아 역사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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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5월20일 00시00분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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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간추린 러시아 역사 – (상)
황만섭

세계를 겁박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초강대국이 된 러시아,

13세기초에는 징기스칸에 쫓기다가 결국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그 뒤 발틱해 연안의 강대국이었던 스웨덴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던 나라, 한때 러시아 왕이 250명을 인솔하고 네델란드로 선박기술을 배우러 떠났던 문명이 열악했던 나라 러시아, 이런 나라가 어쩌다가 세계에서 큰소리치는 초강대국이 되었을까?
 
한때 르네상스가 무엇인지? 종교개혁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지구 모퉁이에서 살았던 러시아, 창녀에서 여왕이 된 예카테리나가 있었던 나라,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고, 땅이 너무나도 광활해 11개의 시간대에 살고 있는 나라, 85개의 연방정부가 있고, 서양에서 동양까지 펼쳐진 광대한 땅을 가진 나라, 러시아 역사를 간략하게 짚어본다.
 
몽골의 징기스칸이 처음으로 러시아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1223년이었고,
1242년에 러시아는 몽골제국에 정복당했다. 러시아를 정복한 몽골은 깃발만 꽂아놓고 문화를 심지 않았으며, 통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몽골제국의 군대는 조직과 훈련이 잘되어 있는 용맹을 떨치는 용사들로 그들을 당해낼 나라가 없었으나, 문화와 정치력은 별로였다.
 
몽골의 허술한 감시하에서 러시아의 대제후들은 비교적 독립적인 통치를 계속할 수 있었고, 이반 1세는 1323년부터~40년까지 17년간 통치하면서 모스크바를 러시아의 수도로 정했다. 그뒤 그의 아들 이반 3세가 1472년에 몽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면서, 자신을 모든 라시아인들의 대제후로 선언했다. 그의 아들 바실리 3세는 스스로를 차르(황제)라 칭했으며, 이탈리아의 건축가들을 불러드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스크바의 내성인 크렘린을 건설했다.
 
그의 아들 이반 4세는 51년간이나 통치하면서 독재를 휘둘렀고, 뇌제(雷宰)라는 악명을 얻는 폭군이었다. 이반 4세는 그 일로 1613년에 쫓겨났고, 그의 집안이었던 류리크 왕조가 막을 내리고 방계의 로마노프 가문이 1917년까지 차르를 배출했으나,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으로 로마노프 가문도 문을 닫았다.
 
1682년 소피아(표트르의 이복동생)가 어리석은 이복형제인 표트르 1세를 대리하여 통치를 했고, 표트르 1세는 모스크바에 있는 외교가에 놀러 다니면서 건달생활을 즐겼다. 그런 생활 속에서 모스크바에 나와 있는 외교관들이 러시아인들보다 훨씬 교양이 있고, 높은 문화생활과 기술수준이 뛰어나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당시 몽골만 알았지, 로마법이나 르네상스 그리고 종교개혁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고, 그들의 영토 안에 갇혀 지내는 중세의 어둠 컴컴한 장막 속에 반쯤 잠이 든 상태로 표류하고 있었다. 당시 러시아는 힘든 농사일과 농장주들의 채찍과 그리스 종교의 황금빛 성화 향연통이나 흔드는 사제들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취해 있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표트르는 168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고, 이제 그에 의해서 러시아의 새로운 시대가 열였다. 그는 레닌처럼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했다. 유럽을 향해 빗장을 열었고, 흑해로 나가려면 터키와 싸워야 했으며, 북해로 나가려면 스웨덴과 전쟁을 각오해야 했었다. 당시 스웨덴은 발틱해 연안을 장악한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어느 정도 힘을 키운 표트르는 제일 먼저 터키를 건드려보았지만, 보기 좋게 패배했고, 먼저 나라를 근대화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표트르는 해외 연수단 250명을 인솔하고 자기 자신도 직접 단원으로 위장하여 홀란드의 선박건조 메카인 찬다에서 선박 제조공들과 함께 좁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평범한 각재 운반꾼으로 열 달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밤에는 해당이론을 연구했다. 학자들과 과학자들을 연이어 만났으며, 거기서 현미경을 처음으로 보았고, 해부실에서 시체의 내부를 살폈다.
 
한편으로는 엔지니어 기술과 기계학 관련 강의를 들었고, 이빨을 뽑는 법을 배워 자신의 신하에게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새로운 기계와 공구들을 실은 화물차를 바리바리 러시아로 보냈으며,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외국으로 내보내 교육에 힘을 기우렸다. 대상은 선장을 비롯하여 장교, 요리사, 의사 등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뒤 그는 런던과 빈을 방문했으며 돌아오는 길에 폴란드의 아우구스트 궁정에 머물면서 왕과 마음껏 술을 마셨고 은그릇을 우그러뜨리는 시합을 하면서 아우구스트 왕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들의 우정 뒤에는 서로 힘을 합쳐서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는 대륙을 빼앗자는 동맹이었다. 덴마크도 이 동맹에 합류했고, 드디어 제2차 북방전쟁(1700~21)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천재적인 야전군 사령관이었던 스위덴 왕 카를 12세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 덴마크,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의 표트르 1세는 아직 스웨덴의 카를 12세를 상대할만한 실력이 되지 못했다.
 
카를 12세는 폴란드의 아우구스트 왕을 폐위시켰고, 계속해서 러시아의 광활한 땅으로 진군을 계속했다. 그러나 카를12세를 기다리는 것은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그가 진군한 길은 훗날 나폴레옹도 똑같이 걸었고, 히틀러도 같은 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카를 12세가 패한 것처럼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처참하게 망가졌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후퇴를 계속하면서 모든 도시와 저장품들을 불 질렀다.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스웨덴 군사들의 손과 발이 동상으로 잘려나갔다. 마침내 170951일 차르코프 서남쪽의 폴바다에서 공방전이 벌어졌고 카를 12세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233년 후인 20세기(19428~ 432)에 독일군과 소련군 사이에 벌어졌던 스탈린그라드의 공방전과 같았다. 이 전쟁이 끝나고 카를 12세가 격퇴되었을 때, 세계는 변해 있었다. 발트해 연안과 우크라이나까지 집어삼킨 러시아는 이미 유럽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강대국으로 변해있었다.
 
카를 12세는 터키로 도주해서 터키 군대로 표트르를 다시 한번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술탄이 그를 귀찮게 여기자, 말을 타고 강행군한지 14일 만에 이스탄불에서 스웨덴까지 달렸다. 스웨덴으로 귀국한 그는 새로운 군대를 일으켜 노르웨이를 공격했지만 실패했고, 36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말았다.
 
카를 12세는 스웨덴의 한니발이었다. 그는 천재적인 야전군 사령관이었으며, 비록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과거에 러시아를 지배했던 바이킹 시대의 영광을 거의 재현했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근대강대국이었던 스웨덴의 무덤을 판 셈이고, 러시아를 탄생시킨 산파역할까지 해주고 떠난 왕이 되고 말았다.
 
*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112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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