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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4월08일 00시00분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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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포커스:카다피 축출된지 8년..리비아는 왜 동서로 갈라졌을까?
지난 2011년 독재자 카다피 축출 이후 동·서로 양분됐던 리비아에 본격적인 내전이 벌어지면서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서부의 리비아 정부와 동부 군벌간 내전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실제 종교·문화·인종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쟁을 벌이던 동서간 지역분쟁이 도사리고 있는데다 각각 서방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각 세력간 각축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분쟁 지역민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47일 리비아 동부를 장악하고 있는 군벌인 리비아국민군(LNA)는 트리폴리 외곽에서 공습을 진행, 리비아 정부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앞서 리비아국민군은 지난 4일부터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을 선언한 뒤, 무력충돌이 계속됐으며 양자간 최소 35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2011년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동서로 분할된 상태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IS와의 전쟁까지 마친 리비아는 이제 본격적인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이번 내전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현 리비아 통합정부와 서부 투브루크에 있는 세속주의 정권 간의 대결이 이어지며 발생했다. 투브루크 정권 산하의 군 세력인 리비아국민군의 지도자,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이 트리폴리 진격을 지시하면서 양자간 무력대결이 본격화됐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과거 카다피의 측근 중 한 사람이었으나 이웃나라 차드와의 전쟁에서 패배, 포로로 붙잡힌 뒤 카다피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며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카다피 축출운동을 벌이다가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리비아로 복귀해 군벌이 된 인물이다.
 
리비아는 2011년 카다피 축출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간 갈등으로 정부가 둘로 쪼개졌다. 이에따라 지난 2015년 유엔의 중재하에 동서 정부가 리비아 연방정부를 구성키로 했으나 투브루크의 세속주의 정권이 이를 거부하면서 통합에 실패했다. 이후 IS가 준동하는 기간동안에는 양자가 연합해 IS 토벌전에 나서기도 했으나 2017년 토벌이 완료되면서 양자간 분쟁이 다시 시작됐다.
 
현재 리비아 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서방측이 지지하고 있으며, 투브루크의 세속주의 정권과 리비아국민군은 러시아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지지하고 있어 시리아나 베네수엘라처럼 대리전 양상까지 띠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군이 안전문제를 우려해 자국 병력을 철수하겠다 밝히면서 향후 양자간 무력충돌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리비아가 탄생 당시부터 겪었던 동서간 지역감정도 내전에 큰 불씨가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원래 리비아는 15세기 이후 400년 이상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1911년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의 결과로 이탈리아 식민지가 됐다. 이 당시에도 서부 트리폴리타니아와 동부 키레나이카, 남부 페잔 등 크게 세개 지역으로 나뉘어있었다.
 
이후 3개 지역은 2차대전 이후인 1951, 리비아 연합왕국의 이름으로 독립, 연방정부를 구성했으나 1963년 국왕 이드리스 1세가 연방제를 폐지해버렸다. 이후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가 발발했으며 42년간 카다피의 철권통치 속에 지역감정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있었다. 이후 카다피 정권이 2011년 붕괴되고, 다양한 종파와 인종이 연합했던 리비아 시민군도 파벌과 종파에 따라 쪼개지기 시작하면서 지역감정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리비아 군벌 하프타르는 누구?
리비아에서 내전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면서 위기의 방아쇠를 당긴 군벌 실세 칼리파 하프타르 리비아국민군(LNA) 최고사령관에 관심이 쏠린다.
 
리비아 동부를 장악한 하프타르 사령관이 지난 4(현지시간) 자신의 부대들에 리비아 수도인 서부도시 트리폴리 진격을 지시하면서 리비아 통합정부와 리비아국민군의 충돌이 격화했다.
하프타르 사령관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휴전 촉구에 따르지 않으면서 수도를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퇴역 장성 출신의 하프타르 사령관은 리비아에서 수십년간 산전수전 다 겪은 비()이슬람계 인물이다. 특히 2011'아랍의 봄'으로 몰락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와 관계가 흥미롭다.
 
영국 B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하프타르는 1943년 리비아의 동부도시 아즈다비야에서 태어났으며 카다피가 1969년 국왕 아드리스 1세를 몰아냈을 때 군 간부로 쿠데타에 가담했다.
 
하프타르는 1980년대 차드 주재 리비아군 사령관에 올랐지만 1987년 리비아군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차드군에 패했고 하프타르는 차드군에 포로로 잡혔다.
 
당시 카다피는 차드 내 리비아 병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프타르의 존재를 부인했고 이를 계기로 하프타르는 카다피의 적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프타르는 포로 신분에서 풀려난 뒤 1988년 반정부 군사조직인 리비아국민군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하프타르는 미국으로 망명해 카다피 축출 등을 목표로 리비아국민군 조직의 확대에 노력했다.
 
하프타르는 미국 망명 당시 중앙보국(CIA) 본부 근처에서 장기간 머물렀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프타르는 '아랍의 봄' 시민혁명이 발생한 2011년 카다피 반군의 지상군 사령관(중장)으로 리비아에 돌아온 뒤 카다피 축출에 앞장선 뒤 은퇴했다.
 
그러나 하프타르는 2014"이슬람 테러세력으로부터 리비아를 구하겠다"며 정국에 다시 등장했다.
 
그해 2월 이슬람계가 장악한 의회의 해산을 요구한 데 이어 5월에는 리비아국민군이 리비아 동부의 중심도시 벵가지의 이슬람 무장단체 기지를 공격했다.
 
리비아국민군은 2016년 벵가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들을 몰아냈고 리비아 동부지역에서 지지지역을 계속 넓혔다.
 
현재 하프타르가 장악한 지역은 동부 유전지대를 비롯해 리비아 국토의 3분의 2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부터 리비아 서부의 상당 지역도 그의 영향력에 들어갔다.
하프타르가 장악한 동부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가 많이 줄면서 그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1
2. 하프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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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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