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Wetzlar), 그림형제(Hanau)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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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3월11일 00시00분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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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Wetzlar), 그림형제(Hanau) – (상)
황만섭


2018
1124(토요일)


기록을
찾아보니 프랑크푸르트에서 베츨라가120km나와있었고, 도시이름도WetzlarWetzlera자를e틀리게쓰여있었다. 그리고다음목적지하나우는바로프랑크푸르트옆에있는동네다. 그래서곳을하루는베츨라, 하루는하나우로나누어서소풍을떠날까생각을하다가, 어쩌면하루에도가능하겠다는생각이들었고, 목요일과금요일이틀동안을차일피일미루다가토요일출발하기전에거리를찍어보니, 베츨라는우리집에서68km, 하나우는23km라는숫자가떴다. 하루동안에곳을돌아보는시간은넉넉하겠다며집을떠났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한국말로 직역하자면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라고도 번역이 가능하다. 그러나 슬픔이라는 말로 이미 책이 나왔기 때문에 그대로 쓰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74년에 출판된 이 책은 괴테(1749-1832)의 첫 작품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베르테르의 옷차림(연미복)을 너도나도 다투어 따라 입었고, 심지어 자살까지도 흉내 내는 등 그 열기는 걷잡을 수 없었다. 괴테는 자신의 이야기를 베르테르라는 이름을 빌려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을 취해 서간체 소설을 창작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츨라까지 68km를 운전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다. 아마 아직 나이가 젊어서(어려서?)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세월이 조금만 지나가면 신체의 건강이 어디에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또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인간들은 자신의 생명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온 결론은, “그렇다. 지금 현재가 고맙다. 오늘 하루가 정말 고맙다를 연발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번 소풍을 떠나면서도 나에게 허락된 지금의 건강을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떠나는 소풍이다. 베츨라는 산도 아니고, 언덕도 아닌 애매하게 높은 곳에 보기 좋은 전망을 스스로 갖춘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좁은 골목들과 옛집들은, 지금 괴테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걱정 없이 옛길을 찾아 다닐 수 있을 만큼 수백 년 된 집들과 골목길들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시내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또 오고 싶다는 생각과,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줄거리를 살펴보면, 무도회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로테에게 반한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접근하여 친교를 맺고, 그녀의 집을 왕래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럴 무렵,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나타나자, 베르테르는 크게 당황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어색해졌고, 베르테르는 그런 와중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괴로워하다가 그녀를 잊기 위해 베츨라를 떠나지만, 로테가 그리워 다시 베츨라로 돌아온다.
 
그 사이 알베르트와 결혼을 한 로테는 유부녀가 되어 있었다. 베르테르는 로테의 주위를 맴돌며 그리움으로 괴로워했고, 로테 역시 베르테르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남편을 위해 베르테르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 베르테르가 구애하면서 로테에게 키스를 시도했고, 놀란 그녀는 절교를 선언한다. 절망에 빠진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서 빌린 총으로 자살한다는 것이 소설내용이다. 그러나 소설에서와는 달리 괴테는 83세까지 장수를 했던 사람이다.
 
베츨라 광장 옆의 성당은 특이한 모습의 육중한 건물이었고, 위엄과 아름다움까지 갖추고 있었다. 성당 앞의 광장에서는 토요일에만 열리는 장이 한창이었고, 광장 한 곳에는 로테의 집, 괴테가 살았던 집, 예루살렘의 집 등을 가리키는 안내판들이 다른 표지판들과 함께 걸려 있었다. 옆엔 생선시장도 따로 있었다. 촘촘히 들어선 상점들로 아름다운 골목길들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철물시장이라는 간판이 붙은 거리가 시작되는 작은 광장이 나왔다. 그 광장을 기점으로 오거리가 시작되었고, 골목마다 옛집들과 함께 깨끗한 길들은 거의 박물관 수준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당시에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다. 왕족들과 귀족들은 다투어 이 소설을 읽기에 바빴고, 마침내 세계최초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인세를 적당히 우물쭈물 처리해버렸고, 괴테에게는 엄청난 명성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해적판들을 통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끝없이 쏟아져 나올 때쯤, 바이마르공국의 칼 폰 아우구트 공작이 괴테를 초청했고, 공작은 그에게 글 쓰는 일에만 열중해도 충분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괴테는 그곳에서 글 쓰는 일 이외에도 장관을 겸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시인, 극작가, 자연연구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그의 탁월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괴테에 관한 이야기 중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괴테와 절친한 친구이자 열 살이나 적은 후배 실러(극작가, 1759-1805)의 이야기다. 실러는 “16살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놀랐다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괴테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서웠던 자신의 영주가 평민에 가까운 젊은 괴테를 소설 하나 때문에 저렇게 정중히 모시는 걸까?” 믿어지지가 않았고, 충격을 받기까지 했다면서 나도 꼭 글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그 뒤 실러는 바이마르 공국에서 괴테와 같이 지내면서 친한 친구가 되었다. 괴테가 어느 날 이태리 여행 중에 들었던 스위스 건국신화 빌헬름 텔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걸 한번 써보라고 권유했고, 실러가 쓴 빌헬름 텔은 파리에서 500회 이상을 공연하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파리 시장은 그에게 명예파리시민권 제1호를 수여했다. 실러가 46세의 나이로 죽자, 괴테는 서재에서 홀로 슬프게 울었다.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사진: Wetzlar 구 시가지



111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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