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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2월25일 00시00분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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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桓檀古記, 천지광명) – (중)
(환국-배달(단군)-조선(삼한시대<진한, 마한, 번한>)-북부여-고구려-대진(발해)-고려-조선-대한민국(임시정부)-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남북분단시대)으로 이어집니다...
 
100년 전 단제 신채호 선생은 북간도를 돌아보며 우리의 역사를 확인하고 목놓아 울었고, 바로 돌아와 조선상고사를 썼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도올 김용옥 선생이 북간도의 현장에서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도올 선생은 지금 와서 우리가 그 땅을 찾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땅의 주인공이었음을 알고, 자긍심과 큰 포부를 가지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 우리한민족이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가자는 울부짖음이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간헐적으로 흘러 다녔던 유대인의 이야기가, 스위스 바젤에서 몇 사람의 유대인의 주도로 시온주의를 만들더니, 그 뒤 발포선언으로 이어졌고, 결국 유대인들의 이스라엘이 건국(1948)되었다. 이제 그들은 세계제일의 우수한 민족이라고 큰소리치며 살고 있다. 우린 유대인보다도 훨씬 더 똑똑한 민족임을 알아야 하고, 세계 각지에 나가 있는 우리민족의 디아스포라도 유대인들의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강원~경기지방 정도의 작은 면적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은 19세기부터 슬그머니 자기들의 이야기를 세계사 속에 끼워 넣더니, 이제는 정말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며,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가 세계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크고, 많고, 우수하다. 우린 배달의 민족이라 부르는 한민족으로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우리가 못할 게 어디 있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망명에서 돌아온 프랑스의 드골은 민족을 배반한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고서는 국가가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민족이 단합을 할 수 없다며, 나치에 협력한 몇 만 명의 사람들을 처단(사형, 징역형, 공민권박탈 등)한다. 그 중에서 700여명은 실제로 사형을 집행했다.
 
나치가 프랑스를 핍박한 기간은 짧았고, 일제가 우리를 핍박한 기간은 길었다. 짧은 기간에 벌어진 죄악에 대한 드골의 심판은 엄중했고, 우린 그 긴 기간 동안에 저질렀던 친일파들의 악행을 처리하기는커녕 손도 대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김구 주석이 귀국하면서 품속에 담고 온 핵심 역적들(친일파)의 명단은 불과 30여명 정도로 아주 적은 숫자였지만, 그것마저도 실행하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이 되자, 친일파들은 나는 죽어도 싸지만, 제발 처자식만큼은 살려달라고 애원할 생각을 가지고 지하에 숨어, 숨을 죽이고 세상이 돌아가는 눈치를 보고 있었을 때, 이승만과 하지는 그들을 불러냈다. 이미 아부를 했던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도 고분고분한 그들에게 일을 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당시의 친일파들은 잘살고 잘 배워서 대체적으로 유식했다. 정치권과 사법권 그리고 경찰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그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졌고, 그들은 독립투사들을 빨갱이와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몰아 잡아가두고 사형시키거나 암살했다. 애초에 그들에게는 민족정기와 국가의 기강 같은 것은 흥미도, 관심도 없었고, 오직 자기 배만 부르면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세상은 미친 사람들의 손에 맡겨졌다. 제헌국회에서 만들어진 반민특위가 그들에게 테러를 당했고, 서북청년단들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민족주의자들의 모임을 찾아 다니며 폭행을 자행했다. 친일파들은 훈장과 포상을 독차지했고 호의호식 했으며, 그 부는 오늘날까지 그들의 후손들에게 이어졌다. 참으로 기가 막힌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유튜브에서 흉노역사를 총 정리한 환단고기 강의, 김정민 박사의 고대사 강의를 들으면 놓쳤던 역사의 이해가 쉽고 빠르다. 지금은 역사를 알고 배우는 방법들이 다양하며 접근하기 쉽고 내용이 재미있어 이해하기도 편하다.
 
임종국 선생(경남 창녕, 1929-1989)이 친일문학을 쓴 동기는 문인들의 자료를 모으는 중에, 그들이 쓴 일제찬양의 글들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계속해서 정신대, 밤의 日帝침략사, 일제하의 사상탄압, 일본군의 朝鮮침략사 1-2,를 썼고, 실록 친일파(사후), 일제 침략과 친일 마적단(사후), 친일 그 과거와 현재(사후), 또 망국을 할 것인가(사후), 빼앗긴 시절의 이야기(사후), 여인영전(사후) 등 많은 저서가 임종국 선생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사후)로 표시한 책들은 그가 죽을 때, 생전에 모아두었던 많은 자료들을 살아남은 이들에게 넘겨준 것들을 뒤에 정리한 것이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는, 그가 친일행적을 쫓다가, 자기 아버지의 이름(임문호)를 발견하게 된 일이다. 난감해 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내가 친일을 했다는 이야기가 그 책에서 빠지면 그 책은 이미 죽은 책이 된다. 주저하지 말고 내 친일행적을 맨 앞줄에 똑똑하게 쓰거라그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또박또박 맨 앞줄에 기록했다. 임종국 선생이 아니었으면 민족반역자들의 행적이 땅에 묻혔을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임헌영(任軒永, 1941~)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대학시절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백철 교수와, 임종국 선생의 영향으로 민족문제 연구소장이 되었다. 임헌영 소장은 ‘100년 전쟁’(유튜브에서 볼 수 있음)을 발표한 뒤에 무려 13번이나 검찰에 불려가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의 건립과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임헌영 소장의 공이다. 임헌영 소장에 의해서 친일파들의 소행이 더 자세히, 더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배우 정우성은 친일파와 역사의 왜곡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책임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건 국민각자가 외쳐야 할 책임이다. 서태지의 노래 발해를 꿈꾸며를 듣고 크게 감동한 김대중 대통령은 서태지를 불러 그에게 감사해 하며 대담을 가졌다.
 
조선 정조 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44세 때, 1780년경 중국여행 6개월)에는 중국에도 평양이라는 지역이 다섯 곳이나 있었는데, 후세에 옹졸한 우리 선비들이 지금의 평양으로 축소 해석했다고 한탄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시절, 점령지마다 알레산더라는 이름을 붙여, 한 때는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에 알렉산더라는 지명이 80여 개가 될 때도 있었다. 평양도 그처럼 많았던 것이다.
 
 
*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111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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