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2018년 20회 재외동포문학상 가작 수상작] 크라쿠프의 피에로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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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2월11일 00시00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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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회 재외동포문학상 가작 수상작] 크라쿠프의 피에로기(3)
- 신 수 정
기억 속의 어린 나는, 매우 많은 시간 동안 혼자였다. 오빠가 친구들하고 놀러나가면 나는 동생을 돌봐야 했다. 동생은 꽤나 자주 울어서 데리고 나가기가 창피했다.


동생의 어린이집이 끝나면 하원버스에서 내리는 동생 손을 잡고 집 근처 빵집에 가서 먹을거리를 샀다. 동생이 저녁으로 빵과 우유를 먹고 혼자 티비를 보다 잠들면 나는 베란다에 빨간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엄마가 아끼는 꽃을 하나씩 잎을 따며 엄마와 아빠를 기다렸다.
 
베란다에는 작은 장독대에 엄마가 해 놓은 쿰쿰한 된장과 고추장 냄새, 그리고 또 약간은 오래된, 햇살에 바랜 듯한 공기와 그리고 먼지냄새가 섞여있었다. 그립지는 않지만 떠올리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나의 유년시절의 냄새.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어렸던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얘기해 줄 것이다. 쓸쓸해하지 말아라. 마음에 그늘을 두지 말아.
 
비를 가득 머금은 듯한 마음 속 한 구석에 아직도 그 아이는 혼자 쓸쓸한 그림자를 남기며 꽃잎을 따고 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이 호텔방의 냄새는 그 때의 그 냄새와 닮아있다.
 
베란다의 공기는 엄마의 체취와 닮아있었던 걸까.
 
때꾼한 눈을 비비고 나니 아침이었다. 새벽녘에야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것이 오히려 꿈같다. 엄마는 모처럼 개운한 얼굴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비행기는 지연없이 예정된 시간에 크라쿠프 공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다. 저가항공이어서 자리를 지정하려면 추가비용을 내야 했기에 건너 뛰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간 남짓의 비행시간동안 엄마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갖을 수 있다. 날카롭게 돋아난 나의 가시를 좀 쉬게 하고 싶었다. 엄마는 좌석표대로 저만치 뒷자리에 착석했다. 하지만 이젠 또 엄마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버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엄마는 비행기가 익숙치 않을텐데. 나한테 있는 휴지라도 주고올까. 엄마는 긴장하면 코를 푸는 버릇이 있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몇번을 망설이다가 일어서서 엄마에게 갔다.
엄마, 있다가 도착하면 내려가서 기다려. 엄마가 먼저 내릴 거 같으니깐.”
나는 부러 밝은 표정으로 휴지를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엄마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피곤한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눈을 감았다.
 
작은 비행기는 바람을 조금 힘겨워하며 게으른 승객의 잠을 깨워주는 진동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폴란드의 것과는 다른 훈풍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인데 이렇게 다를까 싶다. 잔뜩 여미었던 옷의 지퍼를 내리는 여유를 부리며 아슬아슬한 비행기 계단을 내려오니 비행장과 공항을 연결해주는 셔틀버스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 엄마는 벌써 버스안에 있겠지.
 
나는 뒤쪽에 주차되어 있는 셔틀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앞 버스는 그 순간 문을 닫고 출발해버린다. 이리저리 봐도 내가 탄 버스 안에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는 앞 버스로 갔나보다. ,공항에 도착해서 만나겠지 뭐.
 
나는 비스듬히 앉아 여행의 마지막 풍경을 즐겼다. 익숙한 독일어 표지판이 어쩐지 마음의 위안을 준다. 여행은 어쩌면 익숙함을 감사하기 위해 떠나는 고행인지도 모르겠다.
 
셔틀버스는 만나는 횡단보도 마다 서면서 느릿하게 운행했다.
 
독일은 벌써 봄인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쨍하다.
 
공항에 도착하자 버스 안을 채운 사람들이 각자 짐을 챙기며 일어났다.
 
그런데 버스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알고보니 공항의 자동문이 고장이 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버스를 세워두기로 한 모양이다. 텁텁해지는 버스 안의 공기에 사람들의 짜증이 짙어지고 있다. 문득 다리 한짝을 내밀면 닿을 듯한 공항의 유리문 안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엄마다.
 
엄마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이리 저리 작은 홀 안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눈에 띄기 위해 손을 흔들었지만 엄마는 자동문 밖의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폴짝폴짝 뛰며 손을 높이 올렸지만 엄마는 공항의 유리문이 고장났음을 모르는 눈치였다. 버스 안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흘깃거림이 느껴졌다.
 
소리를 지른대도 닫힌 이 버스와 공항의 문을 통과해서 엄마에게 닿기란 불가능해 보여서 나는 손만 높이 쳐든 채로 염치불구하고 버스의 문 쪽으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나 여기 있어. 다른 데 찾지 말고 앞을 봐. 엄마에게 텔레파시가 전달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휴대폰 로밍을 해놓지 않은 엄마가 에스컬레이터라도 타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넓은 공항 안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게 된다. 불길한 상상에 닿자 머리 끝이 삐죽 솟았다.
 
5분도 안되는 시간이 말랑한 엿가락처럼 길쭉하게 늘어졌다. 자동문을 고치는 수리기사가 오고 버스기사는 다시금 양해의 안내방송을 내보내었다. 엄마는 그 새 한 승무원을 붙잡아 비행기표를 내밀며 어설픈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는 눈치였다. 승무원은 얼굴에 귀찮음이 한가득이다.
 
몇 미터 떨어져 바라보는 나는 어느새 울음이 터질 것 같다.
 
그 순간, 이제는 습관적으로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는 엄마의 눈길이 버스 안에서 손을 들고 있는 내 그림자를 스쳤다. 엄마는 나를 확인하자 당혹감이 가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입모양과 손짓으로 고장난 자동문을 가리켰다. 엄마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눈에 수긍한 분위기다. 엄마의 얼굴에 안도감이 점점 더 크게 번져 나갔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지각 직전의 직장인들처럼 서둘러 버스에서 몰려나가고 나도 질세라 엄마를 향해 뜀박질로 달려간다.
 
엄마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었다.
 
나는 너가 비행기 내리는 바로 그 께에서 만나자고 했나 싶어서, 큰일이다 싶더라. 나는 까먹고 금방 버스 올라타고 왔는디 너가 없응께 뭔일인가, 이렇게 추운데 그 바람 쌩쌩 부는 데서 여적까지 기다리면 너가 을매나 추울것이여. 그래서 내가 다시 너 있는데로 가야헌다고 했는디 승무원들이 안된다고만 그러지, 한국말 되는 사람한테 물어보니까는 공항 와이파이로 전화를 해보라는데, 아유, 너 추운데서 고생할까봐 심장이 덜그럭거리대.”
 
당황한 엄마는 사투리를 섞어 쓴다. 아닌게 아니라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의 덜그럭거리는 심장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 뭉클한 것이 내 심장을 덥혀서 내 심장도 같이 덜그럭거렸다.
 
엄마의 노기는 벌써 무뎌져 있었다. 우리는 한층 편안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관광객 사이로 녹아들어갔다. 각설탕이 따뜻한 차에 적셔지는 기분으로 나는 ICE에 안에 앉아 프랑크푸르트와 만하임을 잇는 숲과 평원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엄마는 극한의 긴장감에서 탈출한 지친 모험가의 얼굴이 되어 기차의 리드미컬한 진동과 움직임에 압도된 모양이었다. 차표검사를 하는 검표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엄마는 고개를 떨구고 꾸벅꾸벅 졸았다. 엄마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보였다.
 
엄마가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하루동안 우리는 대한민국의 열 중에 다섯번째에는 들어가는 평범한 모녀 사이로, 날카로운 날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적인 관계로 지낼 수 있었다. 엄마는 이곳에서 산 초콜릿과 과자를 포장하고 오빠네 집으로 보낼 살라미를 비닐로 몇번이고 싸서 밀봉했다. 이 햄이 꼬들꼬들 말랐어도 이리 냄새가 강한데, 이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아야 맛이 있을거 아니냐. 엄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며느리를 줄 젤리도 한 봉지라도 더 끼워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공항은 항상 그렇듯 익숙하던 모든 것들을 어색하게 만든다. 엄마를 배웅하는 나의 태도도 마중때의 어색함을 닮아있다.
 
여권과 탑승권을 꺼내들고, 내일 또 볼 사람처럼 인사하는 엄마를, 나는 일부러 끌어 안았다. 엄마는 나의 기억보다 작아져 있어서 뭉클했다. 패딩점퍼를 벗은 엄마의 허리는 아홉살짜리 내 딸아이 모양 가늘었다. 엄마는 이 작은 몸으로 엄마의 우주를 감당했을 것이다. 엄마의 우주는 보통의 것보다 더 유성우가 잦게 내리는, 약간은 슬픈 보랏빛 반짝이가 감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세계에 겹쳐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 세계는 끝없이 엄마의 우주에 충돌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세계는 이미 엄마의 우주에 감싸 안겨져 있다는 것을.
 
공항에 들어오기전에 미리 예약해둔 플릭스버스의 알람벨이 울렸다. 곧 버스가 떠나니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겠다.
 
신문지에 돌돌 말아 발코니에 둔 달래가 시들까 걱정되었다. 쌀쌀해도 3월의 햇살은 봄볕이긴 하다. 그리고 냉동실에 얼려둔 인절미를 꺼내어 콩가루에 돌돌 굴려 조청을 찍어 먹어야지. 전자렌지에 돌리지 말고, 겉이 바삭하도록 프라이팬에 올려 천천히 굽자. 엄마가 가져온 된장도 날이 더워지기 전에 옮겨 놓아야 한다. 오늘 저녁은 강된장이랑 양배추 쌈으로. 양배추가 찜기에서 투명하게 익어갈 생각을 하니 침이 고이고 등뼈가 주욱 펴지는 느낌이다.
 
햇살이 좋았다. 나는 바삐 걸음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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