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2018년 20회 재외동포문학상에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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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2월04일 00시00분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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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회 재외동포문학상에 가작
크라쿠프의 피에로기(2) - 신수정
저가항공답게 버스를 타고 탑승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은 차치하고, 수화물을 추가요금을 내고 부쳐야 하는 데에서 또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엄마는 그 몇 푼을 아끼고자 하는 나의 가난한 근성이 불만이었고, 나는 또 엄마의 배포 큰 관광객의 호기로움이 거슬렸다.
 
나름 서프라이즈였던 행선지를 알려주니 엄마는 2월의 추운 날씨에 동유럽을 가는 것도 당혹스러워했다. 아마도 엄마는 좀 더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 이탈리아나 포르투갈의 해변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야 그런 생각에 미치다니.
추운데, 더 추운 데를 찾아가다니 하고 엄마는 입이 벌써 나와 있다.
 
엄마가 무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는 엄마와의 대화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수다.
이 와중에 손에 땀이 나는 긴장감이 어쩐지 여행이 주는 설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독일의 것과는 비교불가의 얼음이 박힌 듯한 바람이 얼굴로 내려 꽂힌다. 크라쿠프는 오늘 영하 5.
 
엄마는 한국에서부터 입고 온 얇은 까만 롱패딩이 전부였다. 체구가 크고 당당한 보폭의 서양 사람들 사이에서 작고 마른 나이든 동양여자의 무언가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는 빈약함이 나를 슬프게 했다. 이곳 사람들이 입는 두터운 가죽이나 털이 달린 아우터를 좀 사주면 나아질까 싶어 나는 크라쿠프 역에 딸린 쇼핑몰을 엄마를 끌고 돌아다녔다.
엄마는 한 밝은 베이지색 코트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서성였다. 만지면 바로 사야할 까봐 두려워하듯이. 활달하고 두려움 없는 엄마의 모습에 익숙한 나는 소심해진 엄마의 그런 모습이 낯설다. 어느새 숱이 많이 비어 휑한 것 같은 엄마의 정수리마저도.
 
엄마, 이쁘겠다. 한번 입어봐.”
글쎄. 때가 탈 것 같아서. 엄청 따스워 보이긴 한다, 그지?”
 
코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펼쳐들고 보니 아주 고운 달걀껍질색이다.
 
엄마를 대형 거울 앞으로 끌고 가서 억지로 입힐라 치니, 엄마는 선물을 받는 아이처럼 두근두근한 표정이다. 코트는 아주 예뻤다. 옷을 빛나보이게 하는 매장의 불빛을 받으니, 걱정없이 자라난 어느 부잣집 아가씨의 날개처럼 코트도 그렇게 빛이 났다.
 
하지만 xs사이즈인 코트의 소매가 엄마에겐 너무 길어서 어른의 옷을 몰래 입은 아이 같은 모양새다. 코트는 더구나 심술쟁이여서, 엄마에게서 나는 멋조차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빛날 요령이기라도 한 마냥, 코트는 혼자 마냥 예뻤다. 그것을 엄마도 눈치챘을까봐, 내 심장은 더더욱 쪼그라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코트를 벗겼다.
 
서양 사람들이 팔이 긴 가봐. 핏이 좀 안 맞네. “
에잇, 옷이라고 하는게 다 꼴같잖다.” 엄마는 휑하니 먼저 매장을 성큼성큼 나가버렸다.
 
예민해진 엄마는 호텔의 작은 엘리베이터도 불만이었다.
여기는 짐은 큰 거 가지고 못 타겠다. 한국 호텔들은 다 널찍널찍한데. 너네는 참 알뜰하게도 사나보다. 기껏 유럽까지 와서 이건 좁아빠진 데 있다 돌아가는 꼴이고.”
호텔을 후진걸로 예약했다는 투가 남편을 무시하는 것 같아 속이 끓어올랐다. 나는 아직 남편이 정성스럽게 체크해준 지도를 손에 꼭 쥔 채였다.
엄마는 대체 우리한테 뭘 그리 잘해줬는데? 나 결혼할 때 이불 한 채라도 들려 보내줬어? 아니면 오빠네 애들을 키워줬던 것처럼 우리 애들한테 다정한 할머니가 되어줘봤어?
나는 이 날카로운 말들을 삼키느라 볼이 얼얼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 했다. 단지 엄마가 내가 살고 있는 유럽을, 그리고 내 남편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한 선택을 엄마가 비웃는 것 같아 마음이 찔리고 또 괴로웠다. 마치 시댁을 남몰래 흉보고 싶지만, 친정엄마가 흉을 보면 그것은 또 그래도 괴로운 것이다. 나는 내 복잡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날이 돋힌 말은 결국 호텔 방에서 우리 둘의 공간을 만나자 사정없이 튀어나왔다. 완충작용을 해 줄 아이들도, 남편도 이곳에 없다. 이제 겨우 시작한 23일의 모녀여행이 처절하게 실패했음을, 나는 먼저 온순한 딸의 가면을 벗어던짐으로 인정하고야 말았다.
 
결국 우리는 모녀다. 우리는 서로가 가장 아플 말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지난날들에 대한 엄마의 후회를 공격했고 엄마는 가족을 떠나 이민을 가버린 내 선택을 비난함으로서 딸로서의 죄책감을 타겟으로 삼았다.
 
애를 낳고 나면 부모가 이해가 된다던데, 나는 애를 낳고 나니까 더 엄마가 이해가 안 가더라.”
 
나는 태연하게 짐을 풀며 트렁크의 옷을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으며 말을 던졌다.
 
어떻게 꼴랑 아홉 살, 네 살 된 애들을 놓고 밖에 나가냐. 아홉 살짜리도 그냥 앤데. 그 애한테 어떻게 더 동생을 보라고 해. 우리 딸이 지금 여덟 살인데 나는 집 열쇠도 못 줘. 학교에서 돌아올 때 되면 항상 집에 있지. 마음이 달아서.”
 
엄마는 아무 말도 없다. 나는 좀 더 공격을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 사위는 엄마 말대로 대학도 못 나오고 별 볼일 없는지도 몰라도, 나 그거 하나는 부럽더라. 우리 시어머니 같은 엄마 둔 거. 본인 아들 잘 챙기시고 우리 애들도 정말 잘 놀아주셔. 시간을 내어 준다는 게 나는 그게 육아구나 싶더라. 그거 하나는 시어머니한테 제대로 배웠지.”
 
그래, 시어머니라도 제대로 뒀으니 잘 됐다.” 엄마는 트렁크의 지퍼를 거칠게 내렸다.
그래서 키워 놔서 직장 좀 다니나 했더만, 대학 못 나온 놈한테 시집을 쪼르르 가버리냐? 장녀라고 있는게 집이 제일 힘들 때 외국놈이랑. 내가 쪽팔려서 너 결혼한다고 말을 못해서 축의금 다 날렸어, 이년아. 돌려받지를 못해서 그 아까운 걸 어쩔거냐고.”
엄마는 빨간색 때타올을 챙겨 샤워실 문을 쾅 닫았다.
아이구 이건 앉을 데도 없네. 목욕도 이렇게 불편하게 하라구. 여긴 왜 비누도 없어!! ”
엄마의 짜증섞인 소리가 샤워실을 타고 귓가에 꽂혔다.
 
크라쿠프는 듣던 대로 성당이 많았다. 추운 날씨에 동동거리며 성당투어를 하고 나니 작은 올드타운을 거의 다 돈 셈이었다. 올드타운 끝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서 있는 작은 성에 올라가 그 옆을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배경으로 사진까지 찍고나니 더 이상 할게 없었다. 우리는 메인 광장의 기념품 가게를 왕복으로 돌며 시덥잖은 열쇠고리와 스카프를 한 두개씩 사고, 러시아식 털모자도 머리에 써보고 귀마개도 해보았지만 사지는 않았다. 걷고 있으나 두 다리가 동동 뜬 기분이다. 여행자의 의무로서 반사적으로 다리가 움직인다. 나는 어느새 관광가이드의 자세로 엄마라는 고객님의 만족을 위해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다.
 
남편이 소개해 준, 미슐랭가이드에 나왔다는 한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엄마와 나의 허둥댐은 극에 달했다. 우리는 연미복을 입은 웨이터가 가져다 준 서너개의 유리잔의 용도를 궁금해하며, 또 몇개나 되는 포크의 쓰임이 맞는지에 불안해하며, 팁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 문제로 식사 내내 고민했다. 여행의 긍정적인 긴장도 이제는 삼키면 체할 것 같은 불청객이 되고 말았다.
 
점심으로 선택한 고급레스토랑에서 먹은 만큼의 기를 다 빼앗기고 왔던 우리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진정한 허기를 느꼈다.
 
밥 먹고 나온게 네시가 넘었는데 조금 헛헛하다, .”
 
엄마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 역시 허기에 따뜻한 호텔방마저 쌀쌀하게 느껴지고 있던 차였다.나는 프론트에 전화해서 어설픈 영어로 지금 영업하고 있는 근처의 식당을 문의했다.
 
식당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지배인은 이곳이 폴란드의 전통음식인 피에로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피에로기(Pierogi)? 안내책자에서 본 기억이 났다. 얼핏 본 그림으로는 사우어크림을 얹은 작은 만두 같은 모양이었는데, 호텔에서 한 거리 떨어진 이곳에 찾아와 메뉴판을 보니 그야말로 한국의 만두와 똑같이 생겼다.
 
추천메뉴는 고기와 시금치가 들어간 피에로기와, 계절과일들로 채운 피에로기 모듬. 각각 굽거나 삶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엄마는 메뉴설명을 듣고 무언가 불평을 하려다가, 나의 지친듯한 모습에 말을 삼키는 모습이었다.
 
곧 잘 시간인데 고기소를 넣은 것은 싫고, 과일을 넣은 만두라니 그게 웬 이상한 음식이냐. 아마 이런 말을 엄마는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주인에게 메뉴판의 오늘의 추천메뉴를 짚으며 어색한 미소로 주문을 대신했다.
무뚝뚝해 보이는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주문하지 않은 수프를 머그컵에 가득 담아 서비스로 내어 주었다.
 
낡은 나무 의자와 뭉툭하게 잘라진 작은 테이블로 채워진 작은 레스토랑은 아무래도 근처 대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단골집인 것 같았다. 우리말고 홀 안의 다른 손님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조심스러움의 아우라를 풍기는 관광객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주인은 금세 만두를 끓는 물에 데쳐서 크림과 후추를 듬뿍 뿌렸다. 만두의 표면이 물기를 먹어 홀의 조명에 반짝거렸다. 엄마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주인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엄마의 움직임도 저렇게 잽싸고 군더더기 없는 것이었던가.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엄마와 나는 우리 앞에 놓인 피에로기를 맞아 아무 말없이 앉아, 오직 이 음식을 위해 폴란드까지의 먼 길을 온 것처럼 우리는 조심스럽게 만두를 갈라 속을 확인하고 냄새를 맡아보고 입에 넣었다.
 
음식을 관찰하는 것은 우리의 오랜 습관이다. 엄마는 음식점에 가면 노하우를 얻기 위해 음식을 분석했고, 그런 엄마와 같이 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행동을 따라하곤 했다.
잊고 있었던, 엄마가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었던 만두의 맛이, 오래전에 대뇌에 저장된 기억이 반사적으로 찌르르 전해져왔다.
 
그러나 피에로기는 우리나라의 만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맛.
 
잔뜩먹고 트림을 내뱉으면 토한 듯 산미가 올라오는 엄마의 김치 만두와는 다르게, 폴란드의 피에로기라는 이름의 만두는 후추를 뿌린 두터운 만두피의 텁텁한 밀가루 냄새를 잔뜩 머금게 될 것만 같다. 그러나 과일을 저며 만든 소가 상큼한 끝맛을 주어 계속 입이 당겼다.
 
고기랑 김치만두 말고 이렇게 과일을 넣었으면 잘 팔렸을라나. “
침묵을 깨고 엄마가 한숨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나는 대답을 피할 요량으로 빨간 물이 비치는 피에로기를 자르지도 않고 입 안에 집어넣었다.
 
푹 익힌 딸기 속이 씹자마자 터져 입안을 채운다.
 
여기는 과일이 싼가봐. 과일을 이렇게 많이 집어넣고도 만두 열 개에 삼천 원이라니.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다.”
 
엄마는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슬픈 얼굴이 되어 피에로기를 오래 씹었다.
 
나는 자꾸 목이 메어 머그잔의 수프를 들이켰다. 자잘한 야채 건더기가 목을 간지럽히며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호텔 방의 밤은 고요하다.
 
시내 중심가의 성당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닫힌 창문 사이로 들려왔다.
나는 엄마가 깰까 조심히 몸을 들어올려 널찍한 창턱에 걸터앉았다. 바로 밑의 라지에이터가 창문턱을 데워 엉덩이가 프라이팬 위의 인절미마냥 따끈히 녹는 것같다.
비가 왔는지 거리가 촉촉해져 있다. 구름이 땅에 내려앉은것 마냥 거리의 표면은 뿌옇다. 노오란 가로등이 뿜어내는 먼지 섞인 빛이 돌바닥의 튀어나온 부분에 닿아 반짝거렸다.
내 마음도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무겁고 또 촉촉하다. 기억이 누르면 금세 물기가 올라올 것 같은 밤이다.
 
나는 같은 호텔 방에 있는 엄마와 나의 거리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또 미워하는지를.
나는 너무 가벼워서 눈송이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나는 엄마한테서 벗어나서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엄마에게서 벗어난 나는 너무나 가볍고 또 너무나 무겁다.
엄마, 나는 엄마 말대로 도망가서 맘 편히 잘 살고 있지는 않아.
나는 요새 이상해.
 
독일어를 할 때에 나는, 더듬고, 말을 찾고, 그리고 두려워. 한국말을 할 때도 가끔 그래. 자주 쓰지 않으니 매끄럽게 나오지 않는 모국어가 아쉽고 그리워.
 
이곳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외국인으로서의 어색한 미소와 꾸며낸 밝음으로 무장하고 살아.
 
그런 내가 무겁고도 또 하찮아서 가벼워.
 
 
 
 
기억 속의 어린 나는, 매우 많은 시간 동안 혼자였다. 오빠가 친구들하고 놀러나가면 나는 동생을 돌봐야 했다. 동생은 꽤나 자주 울어서 데리고 나가기가 창피했다.
 
동생의 어린이집이 끝나면 하원버스에서 내리는 동생 손을 잡고 집 근처 빵집에 가서 먹을거리를 샀다. 동생이 저녁으로 빵과 우유를 먹고 혼자 티비를 보다 잠들면 나는 베란다에 빨간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엄마가 아끼는 꽃을 하나씩 잎을 따며 엄마와 아빠를 기다렸다.
 
베란다에는 작은 장독대에 엄마가 해 놓은 쿰쿰한 된장과 고추장 냄새, 그리고 또 약간은 오래된, 햇살에 바랜 듯한 공기와 그리고 먼지냄새가 섞여있었다. 그립지는 않지만 떠올리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드는, 나의 유년시절의 냄새.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어렸던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얘기해 줄 것이다. 쓸쓸해하지 말아라. 마음에 그늘을 두지 말아.
비를 가득 머금은 듯한 마음 속 한 구석에 아직도 그 아이는 혼자 쓸쓸한 그림자를 남기며 꽃잎을 따고 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이 호텔방의 냄새는 그 때의 그 냄새와 닮아있다.
베란다의 공기는 엄마의 체취와 닮아있었던 걸까.
 
때꾼한 눈을 비비고 나니 아침이었다. 새벽녘에야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것이 오히려 꿈같다. 엄마는 모처럼 개운한 얼굴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비행기는 지연없이 예정된 시간에 크라쿠프 공항을 출발하기로 되어 있다. 저가항공이어서 자리를 지정하려면 추가비용을 내야 했기에 건너 뛰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간 남짓의 비행시간동안 엄마와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갖을 수 있다. 날카롭게 돋아난 나의 가시를 좀 쉬게 하고 싶었다. 엄마는 좌석표대로 저만치 뒷자리에 착석했다. 하지만 이젠 또 엄마를 돌아보지도 않고 자리에 앉아버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 엄마는 비행기가 익숙치 않을텐데. 나한테 있는 휴지라도 주고올까. 엄마는 긴장하면 코를 푸는 버릇이 있다.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몇번을 망설이다가 일어서서 엄마에게 갔다.
엄마, 있다가 도착하면 내려가서 기다려. 엄마가 먼저 내릴 거 같으니깐.”
 
나는 부러 밝은 표정으로 휴지를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엄마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피곤한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눈을 감았다.
 
작은 비행기는 바람을 조금 힘겨워하며 게으른 승객의 잠을 깨워주는 진동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폴란드의 것과는 다른 훈풍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비행기로 한시간 거리인데 이렇게 다를까 싶다. 잔뜩 여미었던 옷의 지퍼를 내리는 여유를 부리며 아슬아슬한 비행기 계단을 내려오니 비행장과 공항을 연결해주는 셔틀버스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마 엄마는 벌써 버스안에 있겠지.
 
나는 뒤쪽에 주차되어 있는 셔틀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앞 버스는 그 순간 문을 닫고 출발해버린다. 이리저리 봐도 내가 탄 버스 안에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는 앞 버스로 갔나보다. ,공항에 도착해서 만나겠지 뭐.
 
나는 비스듬히 앉아 여행의 마지막 풍경을 즐겼다. 익숙한 독일어 표지판이 어쩐지 마음의 위안을 준다. 여행은 어쩌면 익숙함을 감사하기 위해 떠나는 고행인지도 모르겠다.
 
셔틀버스는 만나는 횡단보도 마다 서면서 느릿하게 운행했다.
 
독일은 벌써 봄인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쨍하다.
 
공항에 도착하자 버스 안을 채운 사람들이 각자 짐을 챙기며 일어났다.
 
그런데 버스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알고보니 공항의 자동문이 고장이 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버스를 세워두기로 한 모양이다. 텁텁해지는 버스 안의 공기에 사람들의 짜증이 짙어지고 있다. 문득 다리 한짝을 내밀면 닿을 듯한 공항의 유리문 안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엄마다.
 
엄마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이리 저리 작은 홀 안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차 안에서 엄마에게 눈에 띄기 위해 손을 흔들었지만 엄마는 자동문 밖의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폴짝폴짝 뛰며 손을 높이 올렸지만 엄마는 공항의 유리문이 고장났음을 모르는 눈치였다. 버스 안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흘깃거림이 느껴졌다.
 
소리를 지른대도 닫힌 이 버스와 공항의 문을 통과해서 엄마에게 닿기란 불가능해 보여서 나는 손만 높이 쳐든 채로 염치불구하고 버스의 문 쪽으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 나 여기 있어. 다른 데 찾지 말고 앞을 봐. 엄마에게 텔레파시가 전달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휴대폰 로밍을 해놓지 않은 엄마가 에스컬레이터라도 타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넓은 공항 안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게 된다. 불길한 상상에 닿자 머리 끝이 삐죽 솟았다.
 
5분도 안되는 시간이 말랑한 엿가락처럼 길쭉하게 늘어졌다. 자동문을 고치는 수리기사가 오고 버스기사는 다시금 양해의 안내방송을 내보내었다. 엄마는 그 새 한 승무원을 붙잡아 비행기표를 내밀며 어설픈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는 눈치였다. 승무원은 얼굴에 귀찮음이 한가득이다.
 
몇 미터 떨어져 바라보는 나는 어느새 울음이 터질 것 같다.
 
그 순간, 이제는 습관적으로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는 엄마의 눈길이 버스 안에서 손을 들고 있는 내 그림자를 스쳤다. 엄마는 나를 확인하자 당혹감이 가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입모양과 손짓으로 고장난 자동문을 가리켰다. 엄마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눈에 수긍한 분위기다. 엄마의 얼굴에 안도감이 점점 더 크게 번져 나갔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지각 직전의 직장인들처럼 서둘러 버스에서 몰려나가고 나도 질세라 엄마를 향해 뜀박질로 달려간다.
 
엄마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었다.
나는 너가 비행기 내리는 바로 그 께에서 만나자고 했나 싶어서, 큰일이다 싶더라. 나는 까먹고 금방 버스 올라타고 왔는디 너가 없응께 뭔일인가, 이렇게 추운데 그 바람 쌩쌩 부는 데서 여적까지 기다리면 너가 을매나 추울것이여. 그래서 내가 다시 너 있는데로 가야헌다고 했는디 승무원들이 안된다고만 그러지, 한국말 되는 사람한테 물어보니까는 공항 와이파이로 전화를 해보라는데, 아유, 너 추운데서 고생할까봐 심장이 덜그럭거리대.”
 
당황한 엄마는 사투리를 섞어 쓴다. 아닌게 아니라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의 덜그럭거리는 심장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 뭉클한 것이 내 심장을 덥혀서 내 심장도 같이 덜그럭거렸다.
 
엄마의 노기는 벌써 무뎌져 있었다. 우리는 한층 편안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캐리어를 끌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수많은 관광객 사이로 녹아들어갔다. 각설탕이 따뜻한 차에 적셔지는 기분으로 나는 ICE에 안에 앉아 프랑크푸르트와 만하임을 잇는 숲과 평원의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엄마는 극한의 긴장감에서 탈출한 지친 모험가의 얼굴이 되어 기차의 리드미컬한 진동과 움직임에 압도된 모양이었다. 차표검사를 하는 검표원이 도착하기도 전에 엄마는 고개를 떨구고 꾸벅꾸벅 졸았다. 엄마의 미간 주름이 더 깊어보였다.
 
엄마가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하루동안 우리는 대한민국의 열 중에 다섯번째에는 들어가는 평범한 모녀 사이로, 날카로운 날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적인 관계로 지낼 수 있었다. 엄마는 이곳에서 산 초콜릿과 과자를 포장하고 오빠네 집으로 보낼 살라미를 비닐로 몇번이고 싸서 밀봉했다. 이 햄이 꼬들꼬들 말랐어도 이리 냄새가 강한데, 이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아야 맛이 있을거 아니냐. 엄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며느리를 줄 젤리도 한 봉지라도 더 끼워 넣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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