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2018년 20회 재외동포문학상에 가작 - 크라쿠프의 피에로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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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1월28일 00시00분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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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0회 재외동포문학상에 가작 - 크라쿠프의 피에로기(1)
신수정

1월 말, 엄마가 온다는 연락을 받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싶었다. 1월 설에 시댁을 방문했으니 2월 음력 설에는 친정에 휴가를 올인하겠다는 올케언니의 선언이 내려진 후여서 엄마의 갑작스러운 방문의 이유가 짐작되기는 했다.
 
부엌대장에서 해방된 엄마의 콧바람 섞인 외유일수도 있고, 또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항의하기 위한 엄마의 방식일수도 있다. 핏줄로 연결된 딸의 감각으론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엄마는 공항에서 20리터짜리 등산 배낭에 양손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나타났다. 엄마는 인사를 푸념으로 대신했다.
 
지들이 꼭 다른 명절에는 다 오는 것처럼 그러지. 설날에도 애들 앞세우고 세뱃돈 받으러 왔다가 반나절만에 가버려 놓고선 구정에는 친정에만 있겠단다. 아이고. 내가 동네 창피해서 여기로 온거야. 이모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그러냐. 손주들 키워주고나서 지들이 건사할 수 있게 되니까 친정만 챙기는거 봐라. 아들은 낳아서 헛고생이야. 남만 좋은 일 시키는 거여. “
 
그 말 속에는 여북하게도 나도 딸이 있다, 그러니 딸 덕 보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 가슴 한 편이 쪼그라들었다. 이민 생활이 8년차에 접어 들었지만 여전히 나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허덕이고 있다.
 
해를 넘겨 엄마를 본 딸의, 공항에서 으레 다시 만난 가족을 반기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는 다정하게 엄마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남편은 엄마의 짐을 카트에 모두 욱여넣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일흔에 가까운 노인 혼자 꾸리고 온 짐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부피다.
 
저 김은 산다는거 까먹어서 공항 면세점에서 겨우 사왔다. 동네 마트에서 원플러스원 하는거 사 갖고 왔으면 쌌을텐데, 세금도 떼는 면세점인데 왜 그리 비싸게 판다니. 저건 나물이랑 얼린 생선. 또 저 작은 백은 된장이랑 고추장 참기름 좀 넣었다. 그리고 깨 볶은거랑 매실청도 좀 많이 담아왔지. ”
 
엄마의 부연설명은 짐가방을 트렁크에 애써 옮겨 싣는 사위에 대한 미안함을 중화시키려는 변명처럼 들렸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와. 집에 있는 먹을 거 다 싸들고 온 거 아니야? 아빠랑 서영이는 엄마 없을 동안 뭐 먹는대?”
 
퇴직 후 무기력하게 집에서 티비보는 낙으로 사시는 아빠와 직장에 다니는 동생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아유~ 알아서 잘 챙겨 먹겠지. 밥은 느이 아빠가 할 줄 알고 반찬은 서영이네 회사 옆에 백화점 있으니까 서영이가 반찬 사오던지 뭐 알아서 잘 먹겠지. 뭔 걱정이냐. , 요새 그러더라. 남편이 집에서 삼시세끼 다 얻어먹으면 삼식이, 그리고 종종 간식까지 챙겨달라고 하면 종간나끼란다. 니 아빠가 그거여.” 엄마가 키득거렸다.
 
외국인인 남편이 이 대화를 못 알아듣는 것이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 금세 시골 봄날의 장터가 펼쳐졌다. 엄마가 들고 온 배낭에는 혹시 눌릴까 신문지와 포장지로 넉넉히 둘러싼 나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 음식이 아니라 일거리를 싸들고 왔네? 이거 다듬으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엄마 딸 아니랄까봐, 나는 달래 한 묶음을 집어들며 엄마의 수고에 고맙다는 인사를 짜증으로 대신한다.
 
도토리묵 가루를 엄청 가져왔어. 묵 먹으려면 달래가 있어야 되니깐.”
엄마가 나를 나무라듯 힐끗 보며 나물이 다칠까 아기를 안아올리는 정성으로 신문지에 싸인 나물들을 두루두루 펼쳐내었다.
, 나물은 정말 오랫만에 본다. 마트에서 안 팔거든.”
여기 사람들은 나물도 안해먹고 산다니? , 이건 방풍인데 풍을 막아준단다. 느이 시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가셨다며. 그래서 일부러 구해 온거야. 네 남편 해주라고. 나물이 금값이야. 요 만큼이 만이천원이다. 먹어보고, 잘 먹으면 내가 EMS로 계속 보내줄게. “
엄마는 내심 뿌듯한 목소리다.
됐어. 괜히 우체국 좋을 일 하지 말구. 근데 우리 애들하고 남편은 빵 먹어서 밥에다 나물 먹을지 모르겠다. ”
 
내가 들어도 얄미운 소리를 나는 찾아서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엄마가 내 집에 오면서 이렇게 많은 짐을 끙끙거리며 지고 왔다는게 속이 상했다.
 
결혼한 후로는 엄마가 나를 챙기면 어쩐지 나는 엄마에게 지는 것 같아 부아가 났다. 엄마가 나를 위해 이런 수고를 했다는 것이 왜 속상한 걸까.
 
아마 엄마가 나한테 잘해 주면 나는 엄마를 계속 미워할 건덕지가 없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비뚤어지고 모난 마음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또 마음 한구석에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쌓고 있었다.
 
엄마가 본격적으로 미워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엄마와 떨어져 살기 시작한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의 극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것은 남편을 택한 대신 엄마의 손을 놓아버린 것과 다름없었는데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내 엄마인 김선희라는 사람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기억속의 엄마는 집안에 있는 것을 못견뎌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필사적으로 집 밖에서 엄마의 사회를 만들려고 했으나,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시골에서 잘살고 있는 엄마친구들을 부추겨서 엄마는 끝없이 장사 계획을 벌였다.
 
나는 지금도 자영업을 살리자는 투의 기사를 접하면 가벼운 소름이 돋는다. 아니, 자영업은 망해야 한다. 나는 광화문 광장에 나가 외치고 싶다. 당신들이 하는 일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대박집이라는 허황된, 어설픈 행운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
동네식당이 망하는 확률은 열에 일곱. 흡연으로 폐암을 얻게 될 확률에 비해 월등히 높다. 나는 담뱃갑에 폐암을 경고하는 문구와 끔찍한 그림이 붙어있는 것처럼, 맛집을 광고하고 성공을 자축하는 티비 프로그램에도 화면 아래 경고문구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창업으로 임대료 및 권리금을 뜯기고 빈털터리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고문구 아래에다가는 망한 가게의 인테리어를 손으로 뜯어내고 있는, 패배감이 어린 엄마의 얼굴을 집어넣고 싶었다.
 
수많은 가게를 오픈하고 또 닫으면서, 시작할 때의 엄마는 사장님 소리에 흐뭇해하며 인테리어업자에게 당당하게 이것저것 주문했지만 가게가 망할 때면 철거비용이 아까워 실내 장식을 맨손으로 뜯어내곤 했다.
 
언젠가 엄마는 풍수지리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하나 사가지고 와서는 곧 피라미드를 주문 제작해서 호프집 입구에 세워 놓았다. 피라미드 안의 미라가 썩지 않는 것처럼, 피라미드 모형을 입구에 세워두는 것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게 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주장이었다. 미라가 썩지 않는 건 내장을 빼고 방부제를 발랐기 때문인데 손님들 꼼장어구이도 미라로 만들어 내 갈거냐고 아빠가 한 마디를 거들었지만 우리는 결국 엄마를 막지 못했다. 그때쯤 집 근처에 들어선 홈플러스의 지붕 디자인이 피라미드 모양이라는 것도 엄마의 논리를 보태주었다. 홈플러스가 얼마나 장사가 잘되냐는 거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동생은 동방신기 화보집을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카시오페이아 마크를 저걸로 했으면 멤버들이 안 나갔을려나?”
 
그렇게 가게 문 옆을 부담스럽게 지키던 피라미드 모형은 가게가 망한 뒤에는 우리 집 현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새롭게 발견한 엄마의 사채 빚에 분노한 아빠가 바닥에 내려침으로서 수명을 다했다. , 그 피라미드 모형은 이별까지도 존재감을 발휘해 관값으로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아파트 나무 바닥이 주저앉아서다.
엄마의 요식업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만두집이었다. 엄마는 달인을 소개하는 티비프로그램을 보고 나서는, 만두로 성공할거야!! 라고 독립열사처럼 부르짖었다. 엄마는 그 동안 요식업에 데어본 것은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고 이제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만두는 미리 만들어놨다가 물량이 딸리면 얼려 놓은 것을 쪄내면 되니 일손이 덜 필요하고, 메뉴가 적으니 재료 낭비가 덜 하고, 또 찐만두와 군만두, 만둣국으로 분화시켜 놓으면 매일 오는 단골손님도 질리지 않게 대접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 때만큼은 아빠도 우리도 엄마를 말렸다. 우리 모두는 엄마의 열정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 모두의 미래의 희생을 담보로 잡아놓는 것이었기에. 그러나 토론에서 이기는 사람은 가장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가 큰 사람이다. 엄마는 기어이 만두집을 차렸다.
 
모두의 우려와는 다르게, 만두집은 차린 후 서너 달까지는 그럭저럭 잘 되었다.
 
날씨 덕이었다. 영업개시는 11월 초였고 곧 추운 날씨가 엄마의 동업자가 되었다. 퇴근길에 모락모락 김을 피우는 찐만두에 후각을 빼앗긴 직장인들이 가족에게 줄 만두를 사들고 갔다. 그러나 봄이 되고, 황사로 인해 만두통을 밖에 내 놓고 장사할 수 없게 되면서 엄마의 장사는 서서히 과거의 퇴로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더워지는 날씨도 문제였다. 만두는 쉬이 상했고 회전률이 높지 않은 날에는 쪄 놓은 만두를 통째로 버려야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만두로 저녁을 때웠다. 만두국, 만두야채볶음. 만두라면. 너무 지긋지긋한 날에는 동생과 나는 만두피를 벗겨내고 만두속을 고추장 듬뿍 친 밥에 비벼 먹었다. 트림을 하면 만두냄새가 올라왔고 온 가족이 풀썩풀썩 뀌는 방귀냄새가 똑같아졌다.
 
엄마는 필살의 일격으로 텔레비전 출연을 결심했다.
 
알음알음으로 한 브로커와 접선을 하게 되었는데, 오백만원을 주면 먹거리를 소개하는 유명한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맛집으로 소개되는 거니 동원되는 손님도 적어도 하루동안 낮 밤으로 오십 명 정도가 필요한데 그에 대한 지불은 별도였다. 피디 상납 등의 떡값까지 모두 헤아려보니 천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엄마는 내 이름으로 낸 대출로 이 돈의 일부를 충당했다. 그리고 방송이 결정된 날에 우리 가족 모두는 백인분이 넘는 만두를 소를 가득 넣어 지어놓고는 방송국 차를 기다렸지만, 오후 다섯시가 넘도록 약속된 방송차와 브로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만두집을 닫았다.
 
모든 사업의 꿈을 접은 후 엄마는 한동안 집 안에 갇혀 살았다. 햇빛을 보면 죽는 가녀린 꽃, 아니 엄마 말대로 지렁이라도 된 듯이 엄마는 집 안에서 화초를 가꾸며 흙을 쥐고 살았다. 사람처럼 징그러운 생물체는 없다고 했다. 꽃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대한 배신과, 세상에 당한 모멸을 잊을 수 있고, 인간의 삶의 굴레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아니, 이건 엄마가 한 말이 아니라 당시 중 2병을 앓고 있던 동생이 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천안에 있는 독일계 자동차회사에 경리로 취직했고 얼마지 않아 본사에서 파견 나와있던 독일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말이 없고 조용한 내가 우아해보여 좋다고 했다. 우아하다는 말은 그 말 자체로 나를 압도시키는 힘이 있었다. 마치 내가 자라온 환경과 가족들을 통째로 부정하는 배신을 선사하는 기분이었다. 쉽게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나를, 눈치를 보는 기민한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 고요한 분위기의 여인으로 봐주는 사람은 흔치 않을 뿐더러, 서로의 배경에 대한 계산과 가족의 간섭이 적은 국제결혼이라, 나는 그의 결혼신청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점차 그의 은근한 다정함과 세심함에 매료되어갔다.
 
이번 엄마와 나 둘만의 여행의 계획을 세워준 사람도 남편이었다.
 
남편은 열 시간 넘는 비행을 견디고 엄마가 독일에까지 왔으니 유럽의 다른 나라도 보여주는 것이 외국에 나가 사는 딸의 도리라고 했다. 하긴 잘 키운 딸은 비행기를 태워준다니 그 말이 맞다.
 
지난 방문에서 엄마를 모시고 서유럽의 여러나라를 다녀왔으니 이번에는 동유럽이 어떨까 했는데, 마침 출장이 잦은 남편에게 폴란드 유명호텔의 풀코스바우처가 있었고 그걸 쓸 목적으로 우리 모녀의 여행지는 크라쿠프로 정했다.
 
지난 여행에서 성당의 웅장한 모습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던 엄마의 말도 이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 스트라스부르의 대성당에서였나. 어린시절, 고요하게 기도하는 언니들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성당에 다녔다고, 엄마는 수줍게 고백하듯이 나에게 속삭였었다. 그 때 엄마의 눈은 혼자 어떤 먼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 것 마냥 촉촉했던 것 같다.
 
남편에 따르면 크라쿠프는 천주교 성당의 도시라는 별칭이 있었다. 그는 크라쿠프 시내 관광지도를 프린트해서는 카톨릭 성당의 위치를 가장 편한 동선으로 짜서 표시해주었다. 누가 독일사람 아니랄까봐. 하지만 엄마의 관심사를 챙겨주는 남편의 자상함이 뿌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어쩔 수 없다.
 
그런 남편의 기대와는 다르게, 엄마는 성당에도, 동유럽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는 듯했다.
여행을 떠나면 어쩐지 저기압이 되는 엄마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체크인 줄에 벌써부터 입이 나와 있었다.
 
(다음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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