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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01월14일 00시00분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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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의 중인환시 (36)
보불전쟁과 마지막 수업
187091일부터 다음 해까지 불란서 아덴(Ardennes) 부근 세당(Sedan)에서부터 전투가 발발할 때만하더라도 이것이 독일과 불란서 두 나라 사이에 정치적인 대사건으로 발전하게 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 전쟁은 독일통일을 이루려는 오토 비스마르크(Otto Bismarck)와 독일 통일을 저지시키려는 나폴레옹 3세의 정치적인 충돌로 일어난 전쟁이다.
 
독일 빌헬름1(Wilhelm I)와 비스마르크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협정(Nordrhein Westfalen)으로 여러 왕정으로 나뉘어져 있는 독일을 어떻게 하든 통일시키려는 열의에 차 있을 때, 독일통일을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방해해왔던 나라가 바로 인접국인 불란서였다.
 
세당전투는 프로이센 군대에 의해 메츠(Metz)에 포위되어 있던 군대를 지원하기위해 마크 마옹(MacMahon) 야전사령관이 나폴레옹 3세와 출정했다. 이 계획을 사전에 탐지한 프로이센의 몰트케(Graf von Moltke) 사령관이 침입로에 잠복해 있다가 이들을 격퇴시켰다.
 
마크마옹 사령관과 나폴레옹 3세가 재침공을 할 것인가 아니면 파리로 후퇴 할 것인가를 숙의하고 있을 때 비스마르크 군대가 세당을 기습 공격하여 나폴레옹 3세로부터 항복을 받아 냈다.
 
나폴레옹3세가 항복을 선언한 이틀 후, 전국에서 대규모 민중혁명이 일어나자 정부는 재빨리 <불란서는 더 이상 왕이 정치하는 왕정국가가 아니라 국민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는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해 버린다.
 
<민주공화국>선포로 <나폴레옹 3>까지 이어져 오던 불란서 왕정은 물론 잔다크(Jeanne d'Arc)에 의해 세워진 샤를7(Charles VII)<짐이 곧 국가>라고 했던 루이14(Louis XIV) 등 많은 불란서 왕정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392년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되었던 조선왕조는 518년이 지난 1910년 일본군의 침탈에 의해 27대 왕 순종으로 끝이 났다.
 
불란서도 1871년 독일 비스마르크가 이끈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패망하자 서기 498년 메로빙어(Meovingiens) 왕조부터 시작되었던 왕국은 1373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 나폴레옹 3세로 끝을 보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 3세는 독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망함과 동시에 체포되었고 비스마르크의 강요로 영국으로 망명했다.
 
독일 비스마르크의 불란서 세당전투에서의 승리는 불란서를 민주공화국으로 변화시켰지만, 실패했더라면 영국처럼 아직도 왕정국가였을지도 모르겠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우월성과 군사적인 세력을 주변국에 알리기 위해 프로이센의 빌헬름1(Wilhelm I) 황제 대관식을 불란서 베르사이유 궁전(Chateu de Versailles) 에서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비스마르크는 베르사이유에서의 대관식을 독일 국력을 최대한 과시하고 완전한 독일통일을 이루었음을 만방에 알리는 기회로 만들고자 했다.
2년전 여름 호엔쫄러른(Hohenzollern) 성을 구경갔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빌핼름1세의 대관식 그림은 복사품마저도 볼 수 없었다.
 
이후 베르사이유에서 양국간의 평화조약이 이루어졌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에서는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불란서는 독일에 전쟁피해보상금으로 50억 프랑을 지불하고 나폴레옹 전쟁이후 지배하고 있던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지역 대부분을 독일에 양보해야만 했다.
 
30-40년이 걸릴 줄 알았던 전쟁보상비는 독일의 지배로부터 빨리 벗어나려고 했던 국민들의 노력으로 2년만에 갚아지자 독일도 놀라고 말았다.
 
마지막 수업(La Derniere Classe)은 알퐁스 도테(Alphonse Dodet)의 단편소설로써 그의 월요이야기(Contes du Lundi)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엘자스지방의 소년 Franz 는 공부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소년으로 불란서어를 제대로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면서 학교는 열심히 다녔다.
 
어느 날 학교에 가보니 많은 동네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묻고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엘자스와 로렌지방에서는 이제 불란서 말로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고 독일어로만 공부해야 한다> 면서 오늘 수업이 불란서말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했다.
이때 Franz 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놀기에 바빠 불란서말조차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르는 자신을 후회하게 되는 데, 이를 본 Amel 선생님이 <네가 후회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며 위로해 준다.
 
12, 오전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리고 프로이센 군악대가 학교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담임선생님은 칠판에 큰 글씨로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라고 적으며 끝을 맽는 단편 소설이다.
 
일본강점기 때 우리 나라 말을 못 쓰게 했던 것처럼 독일도 프랑스에서 불어를 못 쓰게 하고 독일어만 쓸 것을 강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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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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