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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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2월24일 00시00분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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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크레타 섬에 다녀오다.
소양자
그리스는 신화도 많고 역사가 대단하고 바다와 산이 많고 아주 굴곡이 심한 아름다운 나라다. 유럽 공동체에 들어올 때, 경제자료를 엉터리로 꾸며서 들어왔다지만, 아직도 가난하고 빚이 많다고 공동체의 힐책을 받지만 나름 많이 노력 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친했던 구 소련의 말을 안 듣고, 과감하게 유럽 공동체로 들어와서 고맙게도 지금은 많이 발전이 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8일간 잠깐 쉬고 햇볕 좀 쬐이고 싶어서, 여행사를 통해서 700( 버스 12!) 이 같이 다니는, 어마어마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했다. 듣고 보니, 지중해의 큰 호텔들을 겨울에 그냥 닫을 수가 없어서 원래 가격의 20% 지만,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 아주 운 좋은 케이스였다.
 
이번 여행은 크레타 섬이 테마였다. 크기가 260 Km x 60 Km 의 섬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것도 많고 경치도 다양했다. 서기 8세기 전의 맹인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나오는 일리야 라는 전설에 의하면, 제우스 신은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늘, 번개, 천둥, , 질서, 정의의 신이었고, 바람 쟁이 이고 폭군이었던 인간 신이었다. 아버지 크로노( Kronos : 시간의 신) 와 레아 부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아버지가 생각해 보니, 자기 자식들이 나중에 크면 자기 자리를 뺏을 것 같아, 낳는대로 다 잡아 먹었단다. 그런데 그 부인이 제우스는 하도 아까워서 숨기고 , 벽돌로 아기같이 싸서 바쳤더니, 아버지는 속아서 벽돌을 먹고 제우스는 간신히 살아났다. 제우스는 자기 질투가 많은 여동생, 헤라와 7번 째 결혼도 하고 그녀를 정식 부인으로 만들었다. (그 때는 근친상간이 위법이 아니었나 보다! 웃음) 제우스는 로마 시대가 올 때 까지 황금기를 누렸고, 12 올림프스 신들에게 유혹도 하고 임신도 시키고 아주 못살게 괴롭히는 독제자 노릇을 했단다. 그 자취가 크레타의 크노소스(Knossos) 라는 노천 박물관에 많이 남아 있다.
 
그 노천 박물관은 1900년 에서야 아서 에반스(Arther Evans) 라는 분이 급히 발굴하기 시작하여 (가이드가 급히 해서 인지 엉터리가 많다고 했다.) 세상을 놀라게 했고, 크레타의 일리아스 시대와 미케네 시대를 많이 알게 했고, 아직도 발굴이 다 안 되어, 세계의 관심 거리 라고 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 /오디세우스/ 귀가 로 된 전설적인 트로이아 전쟁과 귀가하는 오디세우스를 51일 간만의 일로 적었으나, 핵심은 다 들어있다. 특히, 그리스 장군 아킬레스가 중심이 되어,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9 년 간의 긴 전쟁 계속에 관여하는 장군들과 용감한 군인들, 장군들, 올림프스의 신들과 그 시대의 많은 장수들과 철학자들의 이야기로, 긴장과 스릴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적었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는 제우스 신에게 아킬레우스의 명예가 회복 되지 않는 한, 그리스인이 지게 해줄 것을 탄원한다.
 
아킬레우스가 당장 전쟁에 안 나가자, 파르트 쿨로스( 그의 친구, 또는 애인)가 대신 나가 싸우다가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당장 죽이고 시체를 마차에 끌고 다니며 모욕을 준다. 그 시절엔 그 행동이 최고의 모욕이었나 보다. 다행히도, 중간에 프리아모스의 탄원으로, 시체를 돌려주는 것으로, 전쟁은 일단 끝이 난다.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그 방편도 전설이고, 9년 전쟁하고 이기고 10년이나 걸려 갖은 고난끝에 귀가한 오디세우스 이야기도 전설일 뿐이다. 우리는 책에서, 영화에서도 많이 보았고, 지금도 그 장소에 가면 다른 유적들과 함께 트로이 목마가 만들어져 있다. 크레타엔 오래전부터 그리스인 외에도 아시안, 아프리카 , 아랍인들이 산 흔적이 있고, 서기 2700년 전에는 어머니 신(인간 상으로 만든) 을 모시기도 했었다.
 
5500년 역사가 있는 크레타 섬도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수많은 인간 신들과 폭력자들의 횡포에, 일반 백성들은 서로 소통도 없이 자급자족으로, 가난하게, 하지만 아주 맘 편하게 올리브 농사나 짓고, 양을 기르며, 그리스 정교( 동정녀 마리아가 최고 존경 대상이고, 예배 보는 신부들은 신도들과 접촉이 없이 막을 치고 자기들끼리만 하고, 신도들은 밖에서 맘대로 오가고, 최소 3번 까지 재혼할 수 있단다.) 를 믿으며, 문화와 전통을 살리며 살았다.
 
또 오랫동안 사회주의로 경제가 안 좋았고 가난 했었는데,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유명한 카페트 회사와 번쩍이는 금은 다이아몬드 보석상과 메이커, 아르마니의 가죽 옷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고급 가죽 제품 회사를 모델 쇼와 함께 견학 했다. 아직도 휴가 중에 그런 물건을 사는 이들이 있어서 적이 놀라웠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서기 1700년 전에 그들만의 고유 문자가 있었고, 특히 여성들이 강했고, 황토, 조개, 석회석, 대리석, 구리, , , 수정, 코끼리 뼈 등으로 건축과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대부분은 박물관에 전시함) 또 몇 번의 화산 폭팔과 지진, 홍수로 섬이 몇 번이나 망가졌고, 약삭빠른 장사군 , 베니스인들이 (이태리가 이태리 이름으로 총 통합된 것은 겨우 1800년 부터 라고.) 쳐들어 와 장사를 하고, 크리스천들이 미션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로마인들은 450년 동안 지배 하면서 자기들 종교 외에도 그리스 신들을 자기들 신으로 바꾸어 사용했다고. 다음엔 터키가 200년 동안 지배하다가 1923년에 쫓겨났다.( 지금도 터키인들 아주 싫어한다.)
 
1941- 1944년에는 독일 히틀러가 지배했다가 다시 해방 되었다. 그래서 예전엔 수도가 Chania (차니아) 였다가 지금은 Heraklio( 헤라클리오) 이다.
 
우리가 5일 묵은 호텔도 Heraklio( 헤라클리오) 의 바닷가에 있는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주 큰 호텔이었다. 방에서도 밤낮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 , 물새 소리에 귀 , 눈 호강 하고 모래사장을 맨발로 많이 걸으며 시원한 지중해 바람을 즐겼다.
 
지중해는 썰물, 밀물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하고 바닷물 온도가 섭씨 18도 정도 였다. 북쪽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손님들은 그런데도 물만 보면 뛰어들어 수영 들을 하곤 했다. 지중해 음식은 다양하고 맛있고 신선 했다. 특히 다양한 올리브가 잡초같이 자라고, 레몬, 오렌지가 석류와 잘 자란다. 바위로 된 높은 산들이 조금만 틈이 나면 온통 허브로 덮혀 있다.
 
특히 우리가 즐겨 먹던 음식은 , 양고기 , 양 치즈. 발효된 그리스 요구르트, 기로스(Gyros: 돼지 고기 말고, 여러가지 고기를 쇠 꽂이에 감아 빙빙 돌리며 기름을 쪽 빼고 구어서 잘라내어 맛있는 오이 요구르트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 였다. 그 외 에도 맛있는 과일에, 채소에, 여러 가지 열매와 초콜릿으로 만든 후식은 지금도 군침이 돌게 한다. 거기다 그리스 와인은 달지도 않고 햇볕을 많이 쬔, 보약이다. 아무리 픽 시즌이 아니라고 하지만 돈도 그렇게 적게 내고 그렇게 맛있게 많이 먹으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 빈대도 낯짝이 있다고 하던가?)
 
그런데 신기한 한 가지 이벤트가 한국을 그리워하게 했다. 화장실에서 사용한 종이를 변기에 넣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연습이 안 되어 몇 번 실수를 했으나, 독일 집에 돌아와서도 사용한 화장실 종이를 변기에 안 넣는 나를 보았다.
 
정원이나 길거리엔 야자수, 무궁화, 철쭉, 게라니언 등등 여름꽃 들이 건장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해를 할 수 없는 길 고양이들 수십 마리가 호텔 식당 앞에서 앉아서 때마다 구걸을 하고, 호텔의 정원에 온통 발드리안(고양이 오줌 냄새가 나는 허브) 향수를 뿌려 놓아서, 나는 고양이 털과 오줌 냄새 알레르기 발생으로, 마지막 날은 약간 참기 힘들었다. ( 고양이야 미안해!) 그대신 개들은 자주 안 보였다. 때 늦게 남은 모기도 몇 마리 있었다.
 
우리 여행 중 하루만 잠깐 비가 조금 내리고 날씨가 계속 좋았다. 매일같이 대형 벤츠 버스로, 길들이 좁고 양 때들이 아무 때나 나타나는 꼬불꼬불한 길들을 사고 하나 없이 운전 잘 하며, 항상 웃는 운전수 아저씨들, 50년 이상을 독일에서 산 나보다 독일어를 휠 씬 더 잘 하는 부러운 멋쟁이 아가씨 가이드들, 아직도 형편없이 싼 물가들( 언제 빚 갚으려고?), 항상 친절하게 웃으며, 칼리 메라(낮 인사), 칼리 스페라(오후 인사) 하며, 반가워하던 원주민들... 햇볕 많이 쬐고, 많이 걷고 참 행복했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비행기로 3시간 이면 날라 갈 수 있고, 겨우 한 시간 차이인 크레타에, 잘 다녀온 것 같다. 우린 손가방 하나만 10Kg 씩 들고 갔다 왔는데도, 부족한 게 하나도 없었다. (허용량 23Kg) 그리고 제일 심심하고 재미있었던 일은 그리스도 이젠 유럽 공동체라고, 오고 가는데 여권 한번 보자고 안 해서, 약간 심심했다.
 
겨울 비 오는 프랑크후르트에 오니, 우리가 잘 아는, 재독 성악가, 작곡가, 지휘자, 김영식님께서 김 재희 시, 이수인 곡인, 고향의 노래를 직접 연주하고, 불러서 보내주시며, 귀가 환영을 해 주셨다. 곡과 가사와 노래가 너무 좋아 여기에 베낀다.
 
고향의 노래
 
국화꽃 져 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 이제는 한적한 빈 들에 서 보라
고향 길 눈 속 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
 
1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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