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김문길 소장 "독도가 일본 땅 아니라는 극비 문서 발견"
HOME 회사소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뉴스플러스 > 문화
2018년11월05일 00시00분 102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김문길 소장 "독도가 일본 땅 아니라는 극비 문서 발견"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내용 담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극비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문길(73) 한일문화연구소장은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전남 여수시 구봉중학교에서 '독도는 우리땅' 강연을 하면서 일본 정부와 지방정부의 문서 4점을 공개했다.
 
메이지(明治) 9년인 1876년 메이지 정부가 만든 '명치(明治) 9년 지리부 지적과의 문서'에는 '울릉도와 한 개의 섬(독도)은 일본과 관계없으니 관심을 두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문서는 일본 내무부가 시마네현으로 보내는 문서로 사실상 독도가 일본의 땅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1956년 시마네현 지사인 가까미츠 야스오가 외무대신 요시다 스케에 보낸 공문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 금지령이 내려진 뒤에 독도까지 접근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일본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독도 주위에 '이승만 라인'(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자 대응하기 위해 이 문서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1905년 러시아전쟁을 계기로 독도를 죽도라 부르며 일본 영토라고 주장해왔다.
러일전쟁 전까지 독도를 송도(松島)라고 불렀다.
 
김 소장은 또 1696년에 만들어진 '죽도(竹島) 도해 금지령'이라는 문서도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 돗토리 시마네현을 지배했던 마쓰타이라 신타료는 '죽도(당시 울릉도)는 조선 땅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문길 소장은 "조선에서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권을 주장하자 일본 정부가 자국 주민들에게 들어가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린 공문을 처음으로 확인했다""일본에서 우익 정치 세력이 득세하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일본인들과 함께 이 문서를 일본 정부에 보내 다시 한 번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조선 독도통치 입증 사료 `울릉도사적` 이본 발견
조선 후기 무신 장한상(16561724)이 삼척영장 겸 울릉도 수토관으로서 16949월 울릉도를 조사한 뒤 쓴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성한 문헌 `울릉도사적`(鬱陵島事蹟) 이본(異本) 2종이 추가로 발견됐다.
 
울릉도사적은 조선 정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통치했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이번에 확인된 이본은 기존에 알려진 자료보다 필사 시점이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가 1023일 밝혔다.
 
장한상이 울릉도에서 독도를 목격한 내용을 담은 울릉도사적은 조선이 행정권과 사법권을 시행하고자 관리를 울릉도에 파견한 수토(搜討)의 첫 성과물이다.
 
조선은 이른바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1694년부터 1894년까지 3년마다 수토를 시행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울릉도사적은 `절도공양세비명`(節度公兩世碑銘)에 실린 글로, 학계에는 1978년 처음으로 존재 사실이 전해졌다.
 
절도공양세비명은 장한상의 외후손으로 추정되는 신광박이 임인년(壬寅年)에 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장한상 수토와 가까운 1722년을 작성 시점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조선정치사 전공인 이원택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울릉도사적이 수록된 또 다른 책인 `절도공양세실록`(節度公兩世實錄), `교동수사공만제록`(喬桐水使公輓祭錄)을 발견한 뒤 절도공양세비명과 비교한 결과, 신광박이 울릉도사적을 쓴 시기는 1782년 이후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절도공양세실록과 절도공양세비명, 교동수사공만제록은 모두 장한상을 모신 사당인 경덕사(景德祠)에 있다가 박물관으로 갔다""시기적으로는 교동수사공만제록에 수록된 울릉도사적이 가장 이르고, 절도공양세실록과 절도공양세비명이 뒤를 이어 필사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절도공양세비명에는 1724년 세상을 떠난 장한상 비문과 사제문(賜祭文·임금이 내린 제문)이 있어 필사 시점이 1722년이 될 수 없다""절도공양세비명은 절도공양세실록을 필사한 것이 틀림없는데, 서적 편집방식도 특이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109729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문화섹션 목록으로
[문화]사단법인 독한협회...
[문화] 평화의 달빛, 한...
[문화]여야 국회의원, 2...
[문화]제 8회 함부르크 ...
[문화]주본분관, 파더본...
 

이름 비밀번호
[1]
다음기사 : 제 7회 함부르크 한국영화제 열려 (2018-11-12 00:00:00)
이전기사 : 자알란트주 코리아 네트워크 모임 설립 추진 (2018-11-05 00:00:00)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쾰른 한빛 교회 성탄 음악회
쾰른한인회 2018년 송년잔치및 ...
재독한인 어르신위로잔치에 초대...
파독광부 고 김한용 회원 장례안...
쾰른, 뒤셀도르프 등 대도시 소...
자동차퍽치기 당하다!?
책&삶에서 독일 소식을 전해줄 ...
한글로망 자랑스런 한글 세계화
    답변 : 한국을 한국이라 말...
독일의사들 선운사에서 한국기공...
피해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Damenmode bis 80% Duesseldorf-...
아름다운공간
CoOpera 가이드 모집공고
총신대 한국어교원양성과정과 함...
[중소기업진흥공단 SBC] 2019년도 해외민간네트워크 ...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포럼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