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정원교의 중인환시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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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05일 00시00분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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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의 중인환시 (32)
영국 여왕 메리 1세

영국의 헨리 8(Heinrich VIII)는 그의 왕위를 이을 아들 하나를 얻기 위해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가며 집착했다.
 
아라곤(Aragon) 출신인 첫째부인 카타리나(Katharina)에게서는 여러 명의 자식 중에서 메리(Mary)라는 딸 하나만이 살아남았고, 두 번째 부인인 앤 볼린(Anne Boleyn)에게서는 엘리자베스(Elisabeth)라는 딸 하나만을 두었기 때문이다.
 
핸리 8세는 아들을 얻기 위해 여섯 명의 부인들을 통해 아들을 가져 보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모두 죽고 말았다.
 
당시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영아의 사망률이 높은 때였고 한 가정에서 한 명의 자식이라도 살아남아 주기만을 하늘에 바라던 시대였으니, 왕위를 이을 아이라고 해서 하늘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헨리8세의 25년 집권기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이 영국에 성공회를 국교로 만드는 종교개혁이었다. 그리고 가톨릭 신앙 속에서 자라난 첫 번째 부인에게서 낳은 딸 메리(Mary)가 후계자라도 될까봐 그녀의 왕위계승권마저 막아버리는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 영국의 왕은 모두 남자들이 계승하고 있었기에 자기 딸이라고 해서 영국의 여왕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헨리8세는 첫째 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게 되자 재혼을 하려고 했지만 로마 교황청에서 첫째 부인과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자 가톨릭을 탈퇴하고 새로운 영국국교로 성공회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쉽게 말하면, 새로 장가가서 새 부인으로부터 대를 이을 아들을 얻고 싶은 데 당시의 가톨릭 법으로는 이혼이 허락되지 않자, 이혼도 허락되고 장가도 여러 번 갈 수 있는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다.
 
헨리8세의 첫 번째 부인은 그의 형수로써 형의 부인이었는데, 오래 살다가 세월이 지나도 아들을 못 낳게 되자, 자기의 결혼이 근친상간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이혼이 되어야 한다면서, 자기의 불륜까지 밝히면서 교황청에 읍소했었지만 허락을 받지 못했다.
헨리8세가 만든 성공회는 신부나 수녀의 결혼을 허용, 본인의 자유의사에 맡기고 있으며 이혼도 허락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신부나 수녀가 결혼하는 것은 종교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실정법으로 판정된 신자들의 합의이혼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헨리8세는 여러 번의 장가와 시집을 허용하는 새로운 종교 성공회를 만든 후 모두 여섯 명의 아내로부터 아들을 얻어 보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에 모두 죽고 말았다.
 
헨리8세가 사망(1547)하자 세 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에드워드 6세가 왕위를 잠시 이었지만 그마저 17세라는 어린 나이로 죽게 되자, 왕위 계승이 금지되었던 첫 딸 메리가 왕위(1688-1693)에 오르게 되었다.
 
헨리8세가 친딸 메리가 여왕이 되는 것을 막아 보려고 법을 고치고 귀양까지 보냈지만 여왕이 되는 길이 멀고 돌아오기는 했어도 결국 메리는 영국의 첫 여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메리여왕은 영국 최초의 여왕이며 세계에서 제일 큰 유람선인 <킌 메리>호의 이름도 메리 여왕에서 따온 것이다.
왕위에 오른 메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 헨리8세가 새로 장가가서 아들을 얻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영국 성공회를 본래의 가톨릭 영국으로 돌려놓기 위해 성공회를 탄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왕 메리의 외가가 스페인 왕실이고 독실한 천주교 국가였기에 아버지 헨리8세가 만든 성공회를 없애고 영국을 가톨릭국가로 되돌려 놓으려고 한 것이다.
 
메리여왕의 짧은 5년 통치 사이에 300명이 넘은 성공회 신도들을 화형시키거나 죄를 씌워 사형시켰으며 하루 종일 화형장에서의 불길이 끊어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밝혀진 사망자의 숫자는 의미가 없겠다.
 
이런 잔인한 행위로 <메리 여왕>에게는 <Bloody Mary,피의 마리아>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으며, 칵테일 중에도 <Bloody Mary>라는 붉은색이 나는 술이 있는 데 이것은 영국 메리여왕의 <피의 숙청> 따라 생긴 별명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녀에게는 뼈아픈 어린 시절이 있었다.
 
헨리8세는 후계자 아들에 집착한 나머지 어머니 카타리나를 쫓아내고 딸인 메리마저 형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며 사생아로 몰아 귀양을 보냈었다.
 
두 번째로 들어 온 새 어머니는 언니뻘인 메리를 자기 딸인 엘리자벳의 하녀로 부려 먹었는데, 그녀는 남편 헨리8세가 아닌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다 들키게 되어 단두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메리를 학대했었다.
 
메리 여왕은 짧은 5(1553 -1558) 동안의 집권을 끝내고 후임자를 선택해야 할 때, 어린시절 배다른 동생 엘리자벳으로부터 그 많은 학대를 받았으면서도 1558년 왕위를 배다른 동생 엘리자벳 1세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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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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