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최용준 안토니오 신부님의 독일과 유럽 이야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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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8월20일 00시00분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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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준 안토니오 신부님의 독일과 유럽 이야기 (6)
교포신문사는 프랑크푸르트 한인천주교회 최용준 안토니오 주임신부님의 글을 두 번째 주에는 독일이야기, 네 번째 주에는 독일 이외의 유럽 이야기의 형식으로 격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리기 쿨름(Rigi Kulm)
스위스 알프스를 오르는 것만큼 경이롭고 설레는 일은 없다. 높고 험한 데다 정상은 만년설이 골짜기에는 초원과 그림 같은 집들이 있다. 행여 어딘가 호수라도 있다면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마태호른이나 융프라우가 아니더라도 알프스가 뻗어가는 곳이면 어느 곳이 나 절경을 연출한다.
 
알프스 관광의 시작점이자 빼놓을 수 없는 루체른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프랑크푸르트 역 이른 아침 출발이지만 잠시 창밖을 볼 뿐 곧바로 잠을 청한다. 바젤을 지나며 눈을 뜨고 어떻게 알프스 자락이 시작되는지 눈으로 확인한다. 작은 구릉과 언덕들을 지날 때는 한국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다만 논밭이 아닌 푸른 초원이란 점이 차이를 나타낸다. 서서히 열차는 루체른 역을 향하고 나는 긴장감을 일깨우며 일정과 시간들을 확인했다.
 
역을 나오자 루체른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중세풍의 고색창연한 건물들과 강을 끼고 있는 명소들이 자태를 드러낸다. 그리고 넓게 펼쳐진 호수의 반짝임이 눈 인사를 한다. 도시의 풍광은 강이나 호수를 끼고 있어야 제 맛이고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사람에게 첫인상이 있듯 도시에도 첫인상이 있다. 처음 느낌이 전부는 아니지만 마지막 평가는 처음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타야 할 배가 선착장에서 기다린다. 배에 오르기 전 나눈 인사가 상큼하다. 표정과 눈길일 뿐이지만 마음은 생각과 말로 가득 차 있다.
 
서서히 배가 출발하고 호수의 풍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진 바위절벽의 능선이 씩씩하고 배경을 이루는 필라투스 산이 웅장하다. 절벽 저 멀리에는 알프스의 본류인 티틀리스 산맥이 백설을 이고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호수 중앙에 이르자 리기산 능선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상까지 파랗고 높아 보이지 않지만 높이가 해발 1798m이라 하니 지리산과 비슷한 높이다. 호숫가 집들과 마을들이 예쁘다. 드디어 내린 곳은 산악열차가 시작되는 Vitznau 였다.
 
열차를 타고 정상인 '리기쿨름'까지 갔다. 50분이 걸렸다. 스위스 산악열차의 시초가 되었다고 하는 리기쿨름을 와보니 이해가 된다. 정상에 내리자 안내판이 보였다. “이곳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말이 함께 쓰여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온 탓이기도 하겠지만 누군가가 이를 위해 무척이나 애쓴 것으로 보인다. 필라투스에 오르는 열차에는 아예 한국어로 세상에서 가장 급경사를 오르는 열차라는 말이 객실 바깥에 쓰여져 있다. 융프라우나 그린델발트 전망대에서는 컵라면을 먹었으니 묘한 느낌과 함께 자부심도 가졌다. 아예 직원들이 껍질을 뜯고 스프를 넣은 다음 물까지 부어주니 자칫 한국 전망대인줄 착각하기도 했다. 뒤늦은 발걸음이지만 나에게도 방문하는 순간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린다.
 
정상에 서서 탁트인 주변을 바라보니 전혀 다른 새 그림이 나타났다. 보이지 않던 또 하나의 호수가 보이고 비행기에서나 확인할 만한 풍경들이 보였다. 저 멀리 호수 끝에 지난 겨울에 찾았던 추크(Zug)’가 보였다. 그쪽에서 오는 기차도 있다. 알프스 본령인 티틀리스가 완연하고 백설의 능선들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너무 먼 탓일까. 융프라우는 방향만 잴 뿐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정상을 서성이다 길을 따라 내려오며 다음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이 달라진다. 발길은 어느덧 능선 길을 따라 계속 움직이더니 급기야는 걸어서 하산하고 싶은 마음까지 일어난다. 걸어 내려가도 될까? 지금까지 30분 정도 걸었다. 그리고 이정표를 보니 배를 탈 피츠나우까지 2시간 30분이다. 망설여진다. 그 사이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나무가 없고 가파른데다 호수도 가까워 보인다. 금새 내려갈 것만 같다. 그런데 길을 잘 모르겠고 높이도 지리산 높이다. 결정을 해야 할 순간, 천사가 나타났다. 마침 홀로 내려오는 아주머니가 있어 길을 물었다. 자기는 저 아랫 동네에 살고 있으니 길을 가르쳐 주겠다며 따르라 한다. 그것도 지름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길을 가며 간단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는 윗 동네에 살았는데 지금은 아랫마을에 산다고 한다. 30분쯤 걸었을까.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 헤어지고 혼자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2시간이다. 확 트인 전망과 넓은 길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땀이 흐르고 다리도 아프다. 그러나 마음은 감격에 겨웠다. 도시 길도 혼자이지만 나는 산길도 혼자 다닌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등산체험이 많았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오후 늦게 배에 올라 루체른으로 향한다. 산을 내려오며 찍은 사진들이 예쁘다. 한가롭고 여유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즐거운 감상에 젖는다. 몸과 다리가 뻐근하지만 물살을 가르는 시원함이 피로를 풀게 한다. 루체른은 내일 보면 된다. 거기에도 또 다른 감동이 있겠지만 오늘은 참으로 유쾌한 여행을 하였다. 호수와 산과 길에는 국경이 없고 언어의 장벽도 없다. 자연은 경계를 떠난 자유의 세계를 말해 주고 있다. 독일이든 유럽이든 상관없다. 길이 있으면 걷고 산이 있으면 오르면 되는 것이다. 길 떠난 나그네에게 이정표는 필요할지라도 굳이 종착지는 필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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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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