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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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8월13일 00시00분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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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지! (2)

34일을 피렌체에서 머물고 로마로 향하는 길에 시에나(Siena)를 관광했다. 토스카나 지방 한가운데 위치한 도시로 중세 후기 산업도시로 번성했던 도시라고 한다. 중세에 굉장히 번창했다가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밀려서 잊힌 도시처럼 돼버렸다는 시에나,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1995년 지역 전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이다. 중세 시대를 느끼며 골목을 걸어 올라가니 시에나의 중심인 캄포 광장이 나왔다. 현재 시에나의 시내인 푸블리토 궁전이 위치한 광장으로 시에나 초기 역사의 중심지라고 한다.
 
시에나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화려한 정명 부가 특징이라고 한다. 시에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도 화려한 것으로 유명한 성당이다. 정말 화려하고 정교한 모습이었다. 피렌체와의 경쟁 때문에 확장 공사를 시작했었다가 흑사병이 창궐해서 중단됐다고 하는데, 만약에 정상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면 정말 어마어마했을 것 같다.
 
시에나 관광을 마치고 2시간 후에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자 라치오주의 주도로, 테베레강 연안에 있다. 로마시의 행정구역 면적은 1,285km2로 서울시의 2배 정도이고, 2014년 인구는 290여 만 명이다. 로마시 권역의 인구는 430여 만 명이다. 로마 대도시 현의 인구는 400만이 넘지만, 밀라노나 나폴리 대도시 현보다 면적이 3~4배 넓은 편이고 되려 로마시의 면적과 밀라노와 나폴리의 대도시 현의 면적이 비슷하므로 세 도시 모두 300만 정도로 비슷한 규모의 도시라 볼 수 있다.
 
로마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마 건국 원년은 기원전 753년으로 2,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얘기되지만, 인류는 그 전부터 이 지역에 정착하여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로마는 라틴인, 에트루리아인, 그리고 사비니인 것으로 구성되었다. 한때는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였으며, 그 역사 덕분에 유럽 문명 사회에서는 로마를 가리켜 세계의 머리(Caput mundi)’, ‘영원한 도시(la Città Eterna)’라고 부른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로 로마시는 서서히 교황의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서기 8세기부터 1870년까지 로마는 교황령의 수도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통일 이후 1871년에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수도로 자리 잡고 있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고온건조하다. 원래는 로마 일부였으나 교황령으로써 독립한 바티칸 시국이 자리 잡고 있다. 법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나라이지만 역사종교문화적으로 이탈리아, 특히 로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지역은 거리가 좁고 대부분이 테베레강 강가의 동쪽에 있다. 로마의 과거의 영광의 흔적인 기념 석조물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 있다.

관광객이 들끓는 콜로세움을 입장하기 위해서 우린 약 1시간 반 정도 기다렸다. 콜로세움(Colosseum, 이탈리아어: Colosseo 콜로세오)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은 4만 명에서 7만 명까지 앉을 수 있으며 4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관중들이 작렬하는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하기 위한 장대 장치를 지탱하는 240여 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 이 천막을 펼치기 위해, 근처 오스티아항구에서 배를 이용해 줄을 끌어당겼다. 이외에도 계단과 독립 공간, 즉 갈레리아가 있었다. 이 갈레리아는 이집트산 콩, 음료수 등을 파는 상인들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시민이 여기서 만났다. 경기장 바닥은 모래로 덮이고, 곳곳에는 사냥 장의 분위기를 살려 나무와 구릉을 설치하였다. 바닥 밑에는 노예들과 맹수들을 수용하던 각종 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의 싸움 장면도 연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닥 전체에 물을 가두는 일이 쉽지 않아 별도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의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판테온 Pantheon 신전은 그리스어 판테이온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로마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의 건물로 로마제국의 장군이었던 아그리파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1세기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당시 판테온 신전을 보고 미켈란젤로는 이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천사가 만들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유는 온전히 로마제국을 강성대국으로 만들어준, 시멘트로만 지어졌다. 그당시 로마제국의 시멘트 기술은 세계를 압도하였고, 특유의 화산재를 넣어서 누구보다도 빠른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으며, 물속에서도 굳는 시멘트를 사용하여 튼튼한 건물을 지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직도 로마에서 다양한 건축물들을 볼 수가 있다. 수 세기 수십 세기 로마를 이끌어준 장본인 중 하나가 시멘트가 아닐까? 추측한다. 미켈란젤로가 가장 감동한 부분은 바로 판테온 신전의 엄청난 크기의 돔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놀라운 건 철근 하나 들어가지 않은 오직 시멘트로 만들어진 판테온 신전의 돔은 끝에서부터 돔 안쪽으로 차근차근 만들어진 구조인데 도중에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가벼운 부석을 넣어서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철근 하나 안 들어간 건물이 여태껏 버티고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서 현대 과학자들이 판테온 신전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비밀을 가지고 있는 돔의 비밀이 현대 와서 풀렸다고 한다. 시멘트 안에 철근 대신 수십 개의 말의 꼬리를 넣었다. 수십 개의 말의 꼬리가 천정에서부터 돔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광장 Piazza Di Spagna17세기 스페인 대사관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에 로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스페인 광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크 양식의 137개 계단 위로는 성심회 소속의 삼위일체 교회 ‚Trinita del Monti‘가 있다. 광장과 이어진 계단의 이름은 언덕 위의 삼위일체 교회로 오르는 계단이라고 불린다. 광장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광장들과는 완전 다른 폭이 좁고 계단은 많은 특이한 구조의 스페인 광장이다. 낭만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본 것과는 달리 실망할 수 있는 곳이지만 그런데 희한한 게 찬란한 햇빛 아래 수많은 사람이 계단에 앉아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면 볼수록 저절로 매력이 넘쳐 흐르기도 한다. 1953년에 제작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알콩달콩 두근두근 데이트하던 장면이 눈에 선한 곳이다. 광장 한가운데 원형 구조의 에메랄드빛 분수가 있어서 물소리와 비주얼만으로도 청량감이 솟는다. 많은 연인과 여행객들이 인증사진을 남기고 쉬어가는 광장! 낭만 가득한 분수와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하는 풍경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로마는 의외로 모든 관광 포인트가 직선 연결로 되어있는 구조라 초행길에도 찾기 쉽고 본의 아니게 뚜벅이 탐방을 하는 편이 더 편하다. 스페인 광장을 지나 쭉 걸어가다 보면 지름신 강림하는 쇼핑으로 유명한 콘도띠 거리 Via Condotti 10분 정도 쭉 직진해서 걸어가다 보면 다음 목적지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와 만난다. 트레비 분수는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1726년에 완성되었는데,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실시한 분수 설계 공모전에서 채택된 니꼴라 살비의 작품이라고 한다. 트레비 분수는 지대가 낮기 때문에 뿜어내는 물줄기가 훨씬 강하다고 한다. 에메랄드빛 분수도 너무나 예쁘고 특이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가 분수를 뒤돌아서서 동전을 휘! 하고 던져주면 꼭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25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 던진 동전이 지금의 소망이 이루어져서 우리 가족 삼 대가 함께 로마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트레비 분수에서 판테온 가는 길에서 만난 정교하고 커다란 기둥이 정말 압도적이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 간듯한 이 엄청난 규모의 기둥들은 다 무엇일까?
 
바티칸 시국 Vatican 市國, 라틴어: Status Civitatis Vaticanæ 스타 투스 키비타티스 바티카나이, 이탈리아어: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 스타토 델라 치타 델 바티카노, 문화어: 바띠까노 시국), 약칭 바티칸(라틴어: Civitas Vaticana 키비타스 바티카나, 이탈리아어: Città del Vaticano 치타 델 바티카노)은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있으며, 국경 역할을 하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내륙국이자 도시국가이다. 바티칸시는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0.44km2의 면적에 약 400명 정도의 인구를 지녔으며 면적과 인구로 보아 매우 작은 독립 국가이다.
 
이전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한 교황령(756-1870)이 있었으나,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에 강제 합병되었고, 10년 후인 1870년에는 로마와 더불어 나머지 다른 지역도 모두 이탈리아에 합병되어 소멸했었다. 바티칸 시국은 이 교황령의 회복을 목표로 한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의 체결로 독립을 성취하여 오늘에 이른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이 통치하는 일종의 신권 국가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총본부이다. 바티칸 시국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성직자나 수도자로 이루어져 있다. 국제 관계에서는 성좌(聖座, Sancta Sedes)로 불린다.
 
11시경에 바틴칸에 도착했다. 표를 구매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은 물론 이미 표를 구매하고 입장을 기다리는 여행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다. 자세히 알아보니까 적어도 5시간을 기다려야 할 상황이란다. 우리가 25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 8시에 개장하는데 그 전에 이미 와서 기다렸는데도 2시간 정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 영준이를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포기하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노상에 기념품을 파는 몇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한국말로 말을 걸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왔다 갔기에 한국말을 하는지 짐작이 갔다. 지금도 시스티나 성당 Sistine Chapel안의 역동적인 그림, 거대한 천장화의 웅장함과 거대함에 나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얕게 느껴졌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고개를 쳐올리고 구경하는 사람도 고개가 불편한데 4년 이상 벽화를 그린 미켈란젤로는 고개가 삐뚤어졌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모든 것이 감탄이었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다.
우리 영준이는 다음 기회에 바티칸을 구경하기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에게 추억이 있는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10년 전에 들렸을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34일의 로마 관광을 마치고 나폴리로 떠났다. Autostrade 1는 독일의 고속도로 못지않게 잘 되어있었다. 4차 선은 아니지만 대피 도로 대신 중간중간에 SOS 대피 구역이 있음이 독일과 다른 점이었다. 고속도로 속도는 130Km / Std로 제한되어 있었다. 우리 집을 떠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도로세 (스위스 35유로 포함)는 약 170유로를 지급했다. 토스카나 지역은 고속도로 내내 굵직하고 푸른 소나무가 있어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고속도로 주차장에는 Sola Anlage로 된 지붕이 있어서 그나마 직접적인 햇빛을 피해 자동차를 주차할 수 있었다. 2.5시간 후에 나폴리에 도착하였는데 나폴리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지저분한 낡은 거리며 아파트에 빨래들이 펄럭이고 지금까지 관광했던 도시보다 더 조심을 해야 한다니 왠지 불안해졌다.
 
나폴리Napoli, 문화어: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도시로, 캄파니아주의 주도이다. 이 도시는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는 양시칠리아왕국의 수도였다. 나폴리시는 고대 때 네아폴리스(Neapolis)로 불렸으며 "신도시"라는 뜻을 지닌다. 현재 나폴리 인근을 아우르는 도시 밀집 지구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 밀집 지대이며 유럽에서도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다. 볼세비우스 화산과 인근의 소화산 지구 근방에 자리하고 있다.
나폴리시 자체의 중심 인구는 백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자신을 Neapolitan이라고 칭한다. 나폴리 대도시 현의 인구가 300만 명에 면적은 울산시와 비슷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나폴리 인구는 300만 명 정도로 봐야 한다. 역사와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나폴리 역사 광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폴리 지역의 방언은 이탈리아와 조금 다른 편이다. 그 때문에 나폴리 어라고 따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 나폴리시는 시 근방에 있는 국제공항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위에 공항 관련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나폴리시 지구는 기원전 7~6세기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인이 건설했다고는 하지만 엄밀히는 그리스의 식민지 백성이었던 쿠마에인에 의해 전체 도시 유적이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때문에 그리스가 건설한 신도시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로마 제국의 지배 동안 그리스어와 관습을 간직한 곳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이후 동고트 왕국, 비잔티움 제국, 노르만족의 시칠리아, 호엔슈타우펜 왕가, 아라곤 왕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나폴리-부르봉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 때문에 오늘날 궁전에서는 수많은 왕가와 왕이 머물었던 기념비적인 유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266년 프랑스 왕족이자 첫 프랑스계 시칠리아 왕이었던 양주의 샤를이 나폴리로 천도를 하였고 시칠리아왕국 (1282년까지), 나폴리 왕국 (1282년 이후)의 일원으로 나폴리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빈 회의 이후 나폴리는 양시칠리아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쇠퇴기 이후 100년이 흘러 이탈리아 통합 왕국이 출범하자 나폴리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보았지만 빠르게 복구되었다. 전후 이탈리아의 도시화와 산업화에 발을 맞춰 이주 노동자들로 인구가 많이 증가하고, 일파 로메오 등 여러 국영 기업들이 공장을 열어 이탈리아 남부의 산업화에 기여했다.
나폴리의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온난한 겨울과 무덥고 건조한 여름이다. 나폴리만에서 흘러오는 풍부한 바람과 자연의 축복으로 로마 대에는 황제들이 가장 사랑했던 휴양지 중 하나였다.
나폴리 주의 주도인 나폴리는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전체보다 경제 구조가 취약하다. 전체 103개 도중 94위에 머물고 있을 정도다. 사실 이러한 통계는 공식적인 통계이기는 하지만 암시장 거래나 관광업에서 누리는 부가가치가 빠진 경우도 있어 아주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폴리는 북부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탈리아 남부에서 비교적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전후 이탈리아의 고도 성장기에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후에 피아트에 매각된 알파 로메오의 공장처럼 성공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낮은 효율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점 때문에 문을 닫은 제철소 같은 경우도 있었다. 실직률은 20~30%에 달하며 물론 공식적으로 통계치에 잡히지 않는 산업/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모처럼 우리 가족 삼 대가 함께한 2주일간의 이탈리아 휴가, 폭염에 매일 15~2만 보를 걸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차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말수가 적어지고 크게 웃을 일이 적어진 나이에 틀에 박힌 수법에서 벗어나 아침에 눈을 뜨면 아들을 볼 수 있고 손자의 재롱떠는 모습을 보며 아침 식사를 함께하는 즐거움은 말라빠진 토란 줄기에 물이 오르듯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밀고 당기고 함께하는 아름다운 꽃수레였다. 아들의 따뜻한 배려에 찔끔찔끔 눈물이 감돌기도 했다.
 
피자와 스파게티 음식이 나폴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그 정통 피자 음식점 Pizzeria „Da Michele“이 있는데 그곳을 찾아간 우리는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이 이미 번호표를 뽑고서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처럼 피자 음식점에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 식당은 약 20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비좁은 곳이어서 우린 또 기다려야 했는데 아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피자를 주문해서 밖에서 먹었다. 정말 말 그대로 최고의 맛이었다. 다음은 피자를 먹고 후식으로 즐겨 먹는다는 제과소를 찾아갔다. SFOGLIATELLA라는 후식은 동그란 머핀 모양인데 치즈에 계피와 오랜지 향이 나는 생전 먹어보지 못한 특이한 음식이었다. 구워내는 베이커가 두 사람이었는데 이곳 역시 많은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문을 받고 즉시 구워내기 때문에 싱싱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맛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나폴리의 낭만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나폴리 시내에서 약 40Km 떨어진 숙소를 찾았다. 상당히 지대가 높은 Montepuliciano라는 도시 아파트에 도착하여 쌓인 빨래를 세탁하고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바삭바삭한 김에 라면을 삶아서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먹었더니 정신이 번쩍 났다. 우리 영준이는 이층 침대를 오르락거리며 싱글벙글한다. 호텔은 편리한 점이 많지만, 4인용 침대 아파트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오손도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신선한 산 공기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고 10시경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섰다.

우린 피렌체에 도착하여 1박을 편안하게 보내고 밀라노로 향했다. 밀라노에는 시조 동우회 회원인 소프라노 김XX가 살고 있어서 그분과 연결이 되어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났지만, 친근감이 가는 친절한 분이었다.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인연의 고리는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지만, 그 고리가 녹슬지 않게 가꾸어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하지 않든가.


긍정적이고 정이 넘치는 낭만의 도시 이탈리아를 언젠가 또 오자는 아들의 약속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축복받은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 ** Arridiverci 작별 인사를 했다.


왠지 모르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짧다고 했듯이 밀라노에서 우리 집까지는 장장 850Km였지만, 늦게라도 집으로 가고 싶다는 아들의 뜻에 따라 저녁 늦게 도착했다.


누가 곁에 숯불 다리미를 들이대고 있는 듯한 날씨에 4,000 Km을 운전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말이 없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아들에게 참 잘했다고 이탈리아 햇빛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여정을 풀고 꿈처럼 지나간 휴가의 파노라마를 가슴 깊이 새기며 기지개를 켜고 직각을 이룬다. 초록 기운을 충전한 어미 새가 새끼 새를 위하여 먹이를 나르는 것처럼 시장엘 드나들며 보양식을 만들어 수고한 가족들에게 공급하며 의미 있는 여행을 잘 마치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발걸음을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새로운 장소 낯선 공기 색다른 소리와 향기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촉감을 느껴보고 새로운 사람들의 말씨와 정을 느끼며 목적 없는 여유로움은 언제나 평안한 충전의 시간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감성만큼 느낀다고 이번 여행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가족 사랑이 돈독해짐을 느낀다.


피붙이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살을 비비며 만든 아름다운 새로운 추억을 그 무엇과 바꾸리. 친절이 웃음이고 웃음이 친절인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는 모두가 고적이고 박물관이다. 건물 기둥 하나하나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든 것이 압도적인 나라, 광 대국인 이탈리아는 해외에서 4,370만 명이 방문하여 세계에서 5번째로 관광객이 많은 나라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서(44) 보여주듯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어 엄청난 관광 수입이 있는데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허덕이는 이탈리아가 그들의 미래를 보장하며 복을 부르는 삶의 질그릇을 만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
7월은 내 가슴에 뜨겁게 피어있는 하냥 깊은 오종종한 추억이다. 다음에 또 오자는 아들의 약속을 은근히 바라는 엄마의 무지개 꿈이 욕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쌀을 버터나 올리브유에 볶은 뒤 육수를 붓고 부재료와 함께 졸여낸 쌀 요리
** Auf wiedersehen! 또 봐요, 작별 인사
*** 더 이상의 양을 수용할 수 없이 가득 참.
가족 사랑
마주 보며 웃어주고 귀 기울여 경청하고
속닥속닥 정겹게 머리를 마주 대며
고맙고 사랑한다고 ***포화 飽和처럼 쏟으리.
 
자료 Quelle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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