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일본과 한국 방문 일정 12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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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6월25일 00시00분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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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 방문 일정 12일 – (1)
황만섭(재독한인총연합회 자문위원)

(2017. 6. 5 ~ 6.11 일본, 6.11-6.19 한국)
65일 루프트한자 716편을 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동경으로 가는 비행기로 18:05에 출발해서 다음날12:15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다. 10시간 20분을 예상하고 있었고, 380석의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꽃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니 신선이 된 느낌이다. 공항에서 가방 1개가 나오지 않아 애를 태우는데 도우미로 일하는 일본아가씨들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편하고 친절함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하네다 공항은 도쿄 시내에 있는 작은 공항이고, 나리타 공항은 동경에서 꽤 떨어져 있는 큰 공항이다. 나리타 공항은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을 생각하면 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메체데스 6인승 밴 이었는데, 가까운 거리임에도 580유로나 되는 엄청난 요금이 나왔다. 일본은 물가가 비싸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숙소는 긴자 거리에서 가깝고 동경 역과도 가까운 꽤나 위치가 좋은 Mandarin Oriental 호텔이다. 호텔에는 한국인 두 명(남녀)이 근무하고 있어 편리했다. 아마 이 호텔을 찾는 한국인이 많아서 인 것 같았다. 호텔은 신주쿠(메이지 신전)와도 지오타구 왕궁과도 가까웠고 스미다 강이 흐르는 것이 보이는 동경 한복판이었다.
 
38층에 로비가 있었다. 그러니까 30층에서 38층까지만 사용되는 호텔로 미로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복도가 복잡해 천재가 아니면 자기 방에 찾아가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늦은 시간이라서 점심식사를 호텔방으로 배달시켰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그들과 벌어졌던 얼룩진 현대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을사조약은 19051117일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재순과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체결 당시 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다. 을사년에 강제로 체결된 이 조약의 억울함과 불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린 그걸 을사늑약이라 부른다. 일본에서는 일한보호협약이라고 부른다. 양국 통치권자의 위임 절차가 전혀 없는 이 조약은 사실상 아무런 효력이 없는 조약이지만, 이어령비어령(耳於鈴鼻於鈴)이다. 말 그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친일파들은 을사조약이라고 함)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이에 찬성한 대한제국 대신은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재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5명이다. 역사는 이들을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5적이라고 부른다.
 
청일전쟁은 1894~1895년 조선의 지배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1894년 조선은 갑오농민전쟁(동학혁명)이 일어났고 정부군은 청에 원군을 요청했다. 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은 톈진조약(만약 조선에서 군사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일본도 참여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우리 나라에 들어온다.
 
전주확약으로 갑오농민전쟁이 진정된 후, 일 양군의 철병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이를 거부하고, 경복궁을 점령했으며, 평양전투에서 청군을 후퇴시킨 일본은 조선내정에 적극적으로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에 다시 농민봉기가 일어나 충정도 우금치 등에서 죽창, 곡괭이, 낫 등으로 무장한 농민군은 일본군과 싸웠으나 총알받이가 되어 죽어나갔다. 황해해전에서 청군을 격파한 일본군은 진저우성과 뤼순을 점령하고 청나라(중국)를 굴복시켰다. 1895417일 승리한 일본과 패배한 청(중국)나라는 굴욕적인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고, 일본은 자본주의 사회로 급속한 발전을 거듭했고, 조선과 중국은 일본과 열강의 수탈대상과 분할경쟁의 대상국으로 시달리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1910(경술년) 829, 일제가 한일합병조약(경술국치)에 따라 우리의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로 1945815일까지 35년간 지배되는 일제36년의 침략사다. ‘외국인은 땅을 소유할 수 없다라는 규정을 고치고, 측량을 실시하면서 조선땅 40%를 빼앗고 쌀을 수탈해갔다.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 그들은 토지사업으로 세금을 높였다.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범죄와 잘못을 감추면서, 1910년의 경술국치를 한일합방이라고 미화시키면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엉터리 역사를 가르쳤다.
 
오죽해야 유시민 작가가 거꾸로 읽는 현대사를 썼을까? 그렇다. 학교에서 배운 것 하고, 살면서 알게 된 사실(현실)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오죽해야 역사의 기록은 왜곡이 너무 심해 날짜와 시간만 맞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을까?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의 독립을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했던 독립운동가와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애국지사들은 마지못해 이름 정도만 나오는 형식적인 교육을 시키면서 자기들이 저질렀던 친일행적은 감추고 미화시키면서 독립유공자 훈장도 받고 적산가옥의 재산도 찾고 지키느라 정신이 없다.
 
일본은 근대적 토지제도를 구실삼아 조선의 힘없는 백성들의 땅을 하루 아침에 빼앗아갔다. 일본은 1939년 숟가락까지 빼앗는 국가총동원 법과 징용령을 발표하고, 1940년 식량재고 신고령, 1942년 목재 통제령 등 1943년까지 약 167개에 달하는 영을 발표해 우리를 노예처럼 들볶아 피를 말리는 핍박을 감행했다. 국가총동원령 때에는 숟가락, 놋그릇, 벽에 박힌 못까지 뽑아가는 금속류 회수령을 실시했다.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 1920년대에는 산미증식계획, 국가 총동원 법 그리고 이어진 징용으로 150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끌려갔으며, 1930,40년대엔 내선일체령까지 발표한다.
*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108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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