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독일의 6대 가도를 가다 (12)
HOME 회사소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뉴스플러스 > 문화
2018년06월18일 00시00분 148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독일의 6대 가도를 가다 (12)
괴테가도(Goethe Strasse) 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 독일을 대표하는 6대 가도에 그의 이름이 빠질 리 없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약 600구간에 풀다, 아이제나흐, 바이마르, 예나, 라이프치히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있는데 몇몇 도시가 괴테와 깊은 관련이 있어 괴테 가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괴테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우스트` 산실인 괴테 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에 자리잡고 있다.
 
괴테하우스는 영국을 찾는 여행자들이 셰익스피어 생가를 가보고 싶어하듯 독일을 찾아온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명소. 괴테와 관련된 여러 유물 말고도 1700년대 독일 상류층 주택구조와 생활용품을 함께 볼 수 있는 꽤 흥미로운 곳이다. 괴테가 대학 시절을 보낸 라이프치히와 함께 바이마르도 괴테와 인연이 깊은 도시다. 괴테 생애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도시가 바이마르고, 생을 마감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교포신문사에서는 괴테가도를 따라 그의 삶의 흔적이 남은 도시들을 살펴보도록 한다.
 
바이마르(Weimar) :‘독일 지성의 허브바이마르
유엔이 ‘Classical Weimar’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리스트에 올렸듯 바이마르는 독일 고전주의의 본당이다. 괴테, 실러, 니체, 헤르더 같은 쟁쟁한 고전파들이 이 작은 도시를 유럽 문화의 중심축으로 키워냈다. 특히 괴테가 청년기 이후 58년을 살았던 바이마르 곳곳에는 고뇌하는 파우스트의 자취가 서려 있다.
20대 성년이 된 이후 괴테가 평생을 살아간 도시 바이마르를 교포신문에서는 2회에 걸쳐 살펴보도록 한다.
 
독일 지성의 허브바이마르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유럽의 자연과 문화는 상이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 남쪽의 자연은 밝고 경쾌하면서 바다와도 친하나, 산맥을 넘는 순간부터 그만 칙칙한 색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표정은 쌀쌀맞다고 할 만큼 굳어진다. 말수도 적어 쉽게 말을 걸기 어렵다. 알프스의 고산준봉이 따뜻한 남풍의 북상을 막으면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삭풍을 잠재우기에 그 같은 자연과 문화가 생겨난 듯하다.
 
하지만 그런 알프스 이북 땅에서도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문화, 다시 말해 남방의 고전문화를 되살리려는 운동이 18세기 한때 크게 일어났다. 그 현장은 튀링겐 주()의 바이마르.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바르트부르크가 멀지 않은 곳에 있고, 그로부터 260년 후 괴테가 이곳 바이마르에서 독일어로 파우스트를 펴내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꽃피웠다.
 
유네스코는 세계 최초의 민주헌법이라 일컫는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공표(1919)된 이 도시를 1998고전도시 바이마르(Classical Weimar)’란 이름으로 세계유산 리스트에 올렸다. EU(유럽연합)는 괴테와 실러, 니체, 헤르더 등 출중한 인물들이 활동한 독일 문화의 중심지이자 고전문학의 메카라는 이유로 괴테 탄생 250주년이던 1999년 바이마르를 유럽문화도시로 선정했다(2004년엔 프랑스의 릴르와 이탈리아의 제노바가 선정됐다).
바이마르는 독일 학생들이 수학여행지로 제일 많이 찾는 도시기도 하다. 한국 학생들이 천년 고도 경주를, 일본 학생들이 신궁(神宮) 도시 이세(伊熱)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이마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8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세기 후 종교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개신교가 바이마르에 들어오게 된다. 이때 마르틴 루터도 몇 번 바이마르에 머무른 기록이 존재한다. 이때 무역으로 잠시 번성했으나 이후 에르푸르트에 밀려 쇠퇴한다. 이후 바이마르 공국이 성립된다.
 
1758년부터 1832년 사이를 바이마르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1714년 작센-아이제나흐 공국과 작센-바이마르 공국이 동군연합이 되었다. 쇠퇴 이후 그저그런 시절을 보내던 바이마르가 독일의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 시기는 바로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였다.
 
이 당시 바이마르 공국의 대공비였던 안나 아말리아(Duchess Anna Amalia)와 그녀의 아들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공은 문화,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고 많은 투자를 한다. 그리고 엄청난 결실을 맺게 되는데 바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프리드리히 실러가 바이마르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재직하면서 파우스트 등의 걸작들을 집필하면서 동시에 바이마르를 예술의 중심지로 꾸미는데 일조한다. 1815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으로 공국이 승격된다.
 
1832년 괴테가 타계하면서 바이마르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듯 하였으나 바이마르의 문화적 영향력은 계속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프란츠 리스트, 프리드리히 니체 등 걸출한 철학자, 음악가, 문학가들이 바이마르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독일의 문화적인 역량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또한 이시기에 바이마르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동시에 건축 붐이 일기 시작한다.
 
다만 이러한 문화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는 자체적인 산업 기반이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고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벌어진 독일 혁명으로 인해 제정이 무너지자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국도 함께 무너지고 바이마르에서 새로운 헌법이 발표됨에 따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된다.
 
바이마르 공화국 (1918~1933) 시기에도 바이마르의 영화는 꺼지지 않았다. 이 당시 독일 뿐만 아니라 훗날 전세계 건축에 영향을 끼칠 새로운 건축 사조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바로 바우하우스였다.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이곳에 바우하우스 학교 (훗날 데사우로 이전)를 설립하면서 이 건축 사조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 운동은 곧 들어선 나치스 정권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되었고 많은 건축가들이 해외로 망명하게 되었다.
나치 시대에는 부헨발트 강제수용소가 1937년 세워졌으며 동독시절에는 바이마르의 문화적 영향력은 사그라들어 버렸으나, 다행스럽게도 이전에 있었던 문화적인 영향력 때문에 동독 정부는 다른 도시와는 달리 대체적으로 바이마르의 수많은 문화 유산들 독일 통일시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다만 이 시기 방치된 건물들이 상당히 많았다.
 
독일 통일 직후 바이마르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나 연방 정부의 지원으로 곧 회생한다. 1996년 바우하우스가, 1998년에는 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 또한 2004년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에서 동독 시절의 노후한 배선 설비로 인해 건물과 일부 서적들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현재는 복원이 어느정도 완료된 상태이다.
 
바이마르는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볼거리는 매우 많다. 특히 도시 중간 중간에 이 도시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두상이나 동상이 세워져 있으니 찾아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Herzogin Anna Amalia Bibliothek)를 소개한다.
 
이 도서관은 오늘날의 바이마르를 이룩한 바이마르 공국의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의 이름이 붙여졌다. 괴테가 관장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도서관 내부는 풍부한 장서뿐만 아니라 매우 아름다운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도서관 중간의 로코코 홀은 도서관의 핵심이자 도서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이며 내부에는 괴테와 실러의 두상,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구 동독 시절 방치되어 있었으며 2004년 노후한 배선 합선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일부가 타고 상당한 수의 장서가 소실되었으나 건물 자체는 복원이 완료되었으며 장서는 복원중이다.
이외에도 괴테 박물관, 실러 박물관, 니체 하우스, 바우 하우스 박물관, 시청(Rathaus), 바이마르 궁전, 괴테-쉴러 극장, 등이 가볼만한 곳이다.
 
다음 호에서는 괴테와 관련된 바이마르를 살펴보도록 한다.
 
사진:
 
1.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로코코 홀
2. 바이마르 궁전
3. 바이마르 시청(Rathaus)
4. 바우 하우스 박물관
 
107920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문화섹션 목록으로
[문화]김문길 소장 "독도...
[문화]자알란트주 코리아...
[문화]정원교의 중인환시...
[문화]플라스틱 쓰레기의...
[문화]제7회 프랑크푸르...
 

이름 비밀번호
[1]
다음기사 : 함부르크에서 2018년 K-Pop 페스티벌 독일지역 예선 열려 (2018-06-18 00:00:00)
이전기사 : 정원교의 중인환시(衆人環視) (18) (2018-06-18 00:00:00)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제 27회 겨자씨 모임
뒤셀도르프 소망교회 대강절 성...
사)재독한인간호협회 제26차 정...
향군창립 66주년(지회 창립 8주...
도르트문트 한글학교 40주년 학...
자동차퍽치기 당하다!?
책&삶에서 독일 소식을 전해줄 ...
한글로망 자랑스런 한글 세계화
    답변 : 한국을 한국이라 말...
독일의사들 선운사에서 한국기공...
피해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Damenmode bis 80% Duesseldorf-...
아름다운공간
CoOpera 가이드 모집공고
총신대 한국어교원양성과정과 함...
[중소기업진흥공단 SBC] 2019년도 해외민간네트워크 ...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포럼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