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스위스 종교개혁의 현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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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6월11일 00시00분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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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종교개혁의 현장을 찾아서”
-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 복지위원회 -


주후 2018528()-31(). 성령강림주일 방학이 한창인 528일 아침. 독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재독한인교회 협의회(약칭 : 협의회, 회장 허승우목사) 회원교회 성도들은 이른 아침을 깨웠으리라. 협의회 회원교회는 현재 아홉 교회이다.

 

남부지방한인교회(김태준목사), 뉘른베르크-에얼랑엔 한인교회(허승우목사), 뒤셀도르프한인교회(김재완목사), 라인란트지방한인교회(김동윽목사), 라인마인한인교회(강민영목사), 베를린기독교한인교회(조성호목사), 복흠교회(추용남목사), 프랑크푸르트영락교회(김인기목사). 함부르크한인교회이며 협의회 산하의 복지위원회(서기: 김재승장로, 회계: 서금자권사)는 회원들의 노후와 복지를 위해 활동하는 기관이다.

매년 1회 회원들이 모여 주제를 가지고 수련회 형식을 가져왔으나, 3년 전부터는 의미있는 유럽의 지역들을 방문하여 신앙과 친교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 왔다.

 

첫 날(528, 월요일).

첫날의 목적지는 모임 장소인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인터라켄(Interlaken)에서 있는 해발 1000m의 작은 마을 Beatenberg 작은 신학교(Seminar für Biblische Theologie)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부터 인터라켄까지의 600Km의 대장정은 임대한 단체 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슈투트가르트-취리히-루체른-인터라켄으로 이어졌다(라인마인교회, 남부지방교회). 함부르크교회와 베를린교회 성도들은 비행기와 기차로 긴 여정을 하며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하였다.

 

숙소는 너무 너무 아름다운 산자락에 자리잡은 50년 전통의 복음주의 신학교였다. 기숙사를 개조하여 물가가 비싼 스위스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교회 단체들에게 제공하였다.

 

저녁 7. 모두 모여 첫 저녁식사를 하였다. 모두 48명이 참석하였다.전통적인 스위스 음식을 먹으며, 반가운 대화로 첫 날을 시작을 하였다. 이어 20시에 여는 예배를 드리고 참가자들의 소개와 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스위스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명환목사(취리히 한소망교회, 베른한인교회, 바젠한인교회 담임목사)가 멀리 취리히에서 이번 스위스 종교 개혁지 안내를 위해 함께 자리를 하였다. 그리고 69일 임직식을 앞 둔 라인마인교회 강민영목사도 함께 참석하여 회원들에게 첫 인사를 나누었다.

 

둘째 날(529, )

730분 아침식사. 스위스 빵과 계란, 풍성한 산채들로 가득한 식탁을 기쁘게 마치고, 점심식사를 대신 할 빵과 과일을 준비하였다.

 

9. 쯔빙글리(1484-1531)가 종교개혁을 한 취리히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숙소에서 120Km 북쪽에 있는 취리히로 가는 길은 큰 산을 넘어야 했다. 아름다운 오두막 집(Wildhaus)들과 풀을 뜯어 먹는 소들, 초목지대들이 잘 어울려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12. 취리히 리마트 강가에 도착. 쯔빙글리의 동역자가 사역한 교회를 지나, 취리히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공원에 도착하였다. 취리히의 아름다운 정경을 보며, 준비해간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였다.

 

13. 리마트 강가로 내려가, 유아세례를 반대하다가 리마트강에 수장된 제세례파(Täufer) 지도자 세 사람의 비극적인 현장을 보았다. 그리고 강을 건너 쯔빙글 리가 151911일부터 설교하기 시작한 그로스뮌스터(Großmünster)를 방문하였다.

 

148411일 태생인 쯔빙글리는 루터보다 7주 늦게 태어났다. 바젤에 있던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받은 그는 글라루스(Glarus)에서 10년 간 사제로 사역하다, 취리히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카톨릭교회의 교회법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신앙의 척도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로스뮌스터에 오자마자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루터의 95개 면죄부 반박문과 비교되는 67개 조항의 신학적 주제들을 발표하였다. 쯔빙글리는 1532년 독일어로 취리히 성경을 번역하여 루터 성경보다 2년 더 빨리 출판하기도 하였다.

 

김명환목사와 사모되는 권성종목사(취리히대학 박사과정)가 그로스뮌크터 옆문에 묘사된 스위스 취리히 종교개혁의 현장을 설명해 주었다.

 

오후 3. 다시 버스에 올라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에 Luzern을 방문하였다.

루체른에서는 스위스 용병들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자상"을 방문하였다.

아름다운 호수와 햇살과 알프스가 어울려 감탄을 자아게 하는 도시였다.

1830분 저녁을 먹고 자유롭게 마을을 산책하며 자유의 시간을 가졌다.

 

셋째 날(530, )

아침 식사를 하고 두 번째 종교개혁지인 제네바(겐프)를 향하여 출발했다.

 

숙소에서 남쪽으로 230Km. 먼 거리였다. 김명환목사의 박식한 명강의 덕분에 즐거운 여정이 되었다. 1230.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1509-1564)의 무덤이 발견 된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칼빈은 자기의 무덤이 우상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덤을 남기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그래서 오래동안 칼빈이 어디에 묻혀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J C 두 알파벳이 있는 작은 돌비석을 발견하여 그곳이 칼빈의 무덤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칼빈은 153627세에 제네바로 오게 되었다. 그는 그의 평생의 역작인 "기독교강요"을 바젤에서 출판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바젤에서 엄격한 종교개혁을 단행하다, 마찰을 일으켜 스트라스부르크로 쫓겨 가게 되었고 3년 뒤 1541년에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 156455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

 

칼빈이 목회한 교회는 제네바의 언덕에 있는 상 피에르 교회였다. 이 교회에서 칼빈은 성경 대부분을 설교하였다. 칼빈은 155950세의 나이에 신학교육을 할 수 있는 제네바 아카데미를 개교하기도 하였다. 바스티옹 공원에는 파렐, 칼빈, 베자, 녹스의 거대한 조각이 세워져 스위스 제네바 종교개혁자들을 기념하고 있다. 이곳들을 순례하고, WCC 건물을 지나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간단한 평가회를 가졌다.

 

넷째 날(531, )

짧은 여정을 마치고, 지역교회로 귀환하는 아침이다. 아쉬움과 함께 9시에 버스로 기차로 귀가길에 올랐다. 12시에 떠나는 함부르크 성도들은 산정상인 Niederhorn에 올라 남은 자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2019년 새로운 종교개혁지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며 작별을 하였다.

 

기사제공: 허승우목사(뉘른베르크-에얼랑엔 한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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