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꽃집 여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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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5월28일 00시00분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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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여자 (1)
류 현옥
 
리차드바그너 광장은 내가 출근하는 통과점이다. 새벽 55, 지하철을 타기 위해 그곳을 가로질러 지하철역으로 간다.
 
대도시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처럼 이른 시간에 교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고된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광장의 모퉁이에 자리한 술집 주인은 밤을 새운 마지막 단골손님을 쫒아내고 창문을 열어 제치고 청소를 한다. 저녁시간에 다시 문을 열 때까지 문을 닫고 철제 커튼을 내리는 시간이다. 광장 한복판에 문화재 기념물로 보호를 받는 오래된 작은 집, ‘공중화장실이 있다. 밤을 새우며 들어부은 액체를 비우고 나와 잠시 벽에 기대며 앉았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술꾼을 본다. 바로 거리 저편에 있는 지난 세기에 건축된 구청은 이곳이 독일 역사에 한몫을 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이 화장실이 같은 스타일로 지어졌다.
 
그곳에서 흘러나와 행인들의 코를 스치는 배설물 냄새가 그곳이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릴만큼 참하게 지어진 작은 집이다. 얼마 전부터 그 화장실 폐기 문제로 구청의 책임자들이 골치를 앓고 있다.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만으로 이 광장을 장식하는 역사물인 화장실을 없애 버릴 수도 없어 결정을 미루고 있다.
 
오토주어 알레와 리차드바그너 거리가 교차되는 곳에 자리한 작은 마당을 내가 광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이런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광장의 이야기는 나 혼자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요일이면 폴란드 보따리 장사들이 화학섬유로 소재의 원색적인 싸구려 옷이나, 잡동사니 플라스틱 살림 도구를 진열하고 퇴근길에 지나가는 손님들을 유혹한다.
 
샬로텐부르그의 구청 방향으로 연결되는 광장의 끝에 서면 바로 베를린시의 각 곳으로 연결되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내가 십여 년을 오르내린 시멘트 계단은 베를린에 있는 무수히 많은 지하철 역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리차드바그너 지하철역이다. 역내 기둥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장면들의 벽화가 붙어있다. 작가 미상의 비잔틴 스타일의 모자이크는 1903년 포츠담거리의 오랜 바이런이라는 레스토랑에 있던 것을 옮겨 붙였다. 독일인들의 예술에 대한 정성이다. 자국의 자랑스러운 세계적인 음악가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 이름을 붙인 지하철역을 장식하여 보관하는 것이다.
 
나는 십여 년을 드나들면서 전시장의 구석구석을 살폈기에 역내부를 내 집 거실만큼 잘 알고 있다.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몇 분을 역의 벽에 붙은 흑백 그림을 감상하며 그 그림에 맞춰 떠오르는 바그너의 음악을 머릿속에 불러오며 잠시 눈앞의 세상을 잊을 수가 있었다. 유명한 그의 오페라 장면이 흑백으로 그려져 오히려 감동적이다. 그림들로 꾸며진 역의 구내는 작은 박물관이나 예술인들이 드나드는 카페 같은 분위기다. 때로 구걸하는 가난한 음악가가 그곳에서 트럼펫을 연주하여 웅장하게 역내를 음악홀로 변모시키기도 했다.
 
역과 광장을 연결하는 계단이 잠시 차단되었던 곳에 오른쪽 벽을 따라 베트남 꽃집이 자리하고 있다. 손바닥만 한 공간에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는 온갖 꽃들 사이에 가냘픈 베트남 여인이 꽃을 팔고 있다. 그녀는 끊임없이 주문받은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작은 꽃집이라 온갖 꽃들을 담은 그릇들이 입구의 벽을 따라 놓여 있다. 그녀의 작업실은 손님이 오면 만들던 꽃다발을 잠시 올려두는 작은 상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갖가지 꽃들 속에 파묻힌 그녀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온갖 꽃들 사이에 선 그녀는 표정 없이 주문대로 꽃을 엮어 팔았다. 꽃을 사는 사람들의 시선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손과 꽃다발에 집착할 뿐이었다. 꽃을 파는 여자가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계절에 맞춰 선보이는 꽃들을 몇 송이씩 사서 거실에 꽂는 것 이외는 그녀와 연결하는 게 없었다.
새봄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나보다 십여 년 연하인 듯, 그녀는 정원사 장갑을 끼고 꽃줄기와 장식용 나뭇가지들을 가위질하고 있었는데 얼굴 표정은 꽃과는 달리 어둡고 애잔함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월초면 홀란드에서 자란 튤립이 둥근 그릇에 담기기 시작하는 데 온실에서 자라 화물차에 실려 온 꽃은 나에게 알 수 없는 비현실적 인공물로 보였다. 바깥 날씨가 밝아지고 따뜻해지기 시작하여 가로수 가지에 연둣빛이 감돌기 시작한 후면 햇볕을 받고 자란 자연산 튤립이 꽃집을 장식한다.
 
이날 전시된 튤립에 유혹되어 꽃집 안으로 들어섰다. 열 송이씩 묶어놓은 튤립을 노란색과 붉은색 두 묶음을 골라서 들고 들어서는 나를 보며 미소를 머금고 일어서는 그녀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친 것이다. 미소를 짓는 얼굴의 애수가 나의 마음에 와 닿았다. 왠지 내 마음 속을 흔들어 놓았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만이 가진 동심이 전달되어 마음을 저미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채소를 넣은 쌀국수를 먹고 있었다. 냄비를 상위에 내려놓고 일어설 차비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냥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하고 잔돈을 그냥 가지라고 하자 순간적으로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내게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슬픔이 아직 떠나지 않은 채였다.
 
초여름에 접어들었다. 얼마 전 부터 층계를 오르내릴 때면 무릎이 시큰거렸다. 아픈 것을 참으며 근무를 다녔다. 극도로 피로한 몸을 전철에서 끌어내려 잠시 벤치에 앉아 벽화중의 오페라 한 장면을 보면서 다음 층계를 오를 준비를 했다. 영웅 지그프리드가 바위꼭대기에 올라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가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릎이 아프고 피로한 날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한 후 밤새 앓으며 깊은 잠을 못 잔다고 하시던 어머니다.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억제하고 울지 않으려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꽃집밖에 진열된 꽃들을 본다. 갖가지 장미꽃이 튤립을 대치하여 온갖 색상으로 꽃집을 장식하고 있다. 그녀가 채소를 넣어 끓인 가는 쌀국수를 먹다가 나를 보고 일어섰다. 맛있게 보이지는 않는 국수를 보며 다시 어머니가 떠올랐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말한다. “내 딸이 이제 막 갖다 주어서 먹고 있어요.” 딸이 끓여다준 국수를 먹는 어머니는 행복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 국수를 삶아본 적이 없고 나의 두 딸도 나를 위해 국수를 끓인 적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알 수 없는 연민이 전해오는 얼굴이다. 그렇다고 정다운 얘기를 나눌 처지는 아니었다. 그런 순간은 몇 분간의 여유일 뿐 집에 돌아오는 대로 남은 하루를 준비하기 바쁘다. 그래도 초여름이 되고는 꽃집 앞을 지나면서 온실 밖에서 자란 꽃들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즐기는 마음이 생겼다. 탁상의 튤립이 꽃잎을 떨구며 힘을 잃은 가지가 밑으로 쳐졌다. 시든 꽃을 치우고는 첫 들장미가 도착되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나는 친밀감이 깊어지는 꽃집연인에게 는 지나갈 때 마다 손을 흔들어 주었고 국수를 먹고 있는 그녀에게 맛있게 먹으라며 몇 마디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녀와 사이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겼다. 나는 근무가 오후번이라 여유 있게 누워서 소설 속에 빠져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고등학교 교사로 퇴근길에 육교 위를 지나다가 육교에서 뛰어내리려는 젊은 여성을 극적으로 구하여 집에 데려다 준다. 그 일로 생긴 마음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해, 다음날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간다. 햇볕이 강한 지중해 쪽으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담고 혼자 심각한 생각에 잠겨 그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학교에 연락도 잊었다. 나도 그와 같이 남쪽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주인공 옆에 앉아 창가에 지나가는 경치의 자연 속에 빠져 들어 갔다.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다. 남편이 근무를 가면서 열쇠를 집에 두고 갔단다. 내가 집에 없었다면 분명히 문을 잠그기 위해 열쇠를 찾았을 것이라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한다. 근무처의 탈의실 열쇠마저 같은 뭉치에 붙어 있기에 가운을 갈아입을 수가 없어 동료한테 빌려 입고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내 근무처로 열쇠를 가지러오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없을까 물었다. 나 역시 열쇠 때문에 내 근무처로 그가 와서 나를 찾는 것을 꺼렸고 그렇다고 내가 그의 근무처까지 가는 일도 싫었다. 그의 근무처까지 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두 시간 일찍 집에서 나와 전철을 타고 이곳으로 오면서 소설을 읽으면 되잖아?!”
그는 내가 소설 속에 빠져 들어가면 같이 사는 사람도 잊는다고 종종 불만을 토로를 했는데 지하철에 앉아 소설을 읽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는 일로 자기를 도와주는 꿩 먹고 알 먹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나는 소설을 읽으며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을 즐겼다.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풍경을 즐기며 눈의 피로를 풀었다. 강물이 흐르고 숲이 흐르고 들판이 지나가는가 하면 작은 마을도 지나간다. 지하철에 앉아서는 이런 즐거움이 없고 불안한 독서시간이다. 신문의 뉴스를 건성으로 읽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나는 열쇠를 지하철 입구에 있는 베트남 꽃집에 맡기는 방법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나가게 될 꽃집에 들려서 열쇠뭉치를 찾아오면 피로한 퇴근길을 더 길게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다. 집 열쇠 하나만이 아니고 여러 중요한 열쇠가 한 뭉치로 된 것을 신분을 모르는 꽃집여자를 믿고 맡긴다는 데 대해 잠시 고민이 따랐다.
 
새벽에 집을 나가 거의 11시간 후에 귀가하는 데 지나가는 꽃집에 잠깐 들려 열쇠를 가져오면 편하지 않겠느냐는 나의 주장으로 그를 설득시켰다. 나는 두꺼운 종이봉투에 열쇠뭉치를 넣어 봉한 뒤 내 이름을 썼다. 그날 근무처에서 동료들과 쉬는 시간에 먹으려고 싸둔 군만두를 꽃집여자에게 주기로 했다. 꽃집여자는 여전한 미소로 나를 맞았고 나의 부탁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는 대머리인 남편의 얼굴을 안다고 했다. 그 역시 그의 매일 꽃집 앞을 지나간다고 했다. 남편은 오는 길에서 사가지고 간 초콜릿을 선물하고 열쇠뭉치를 받았다.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장갑을 벗고 손을 보여주었다. 손가락 사이사이가 벌겋게 헐어 있고 손등어리에 붉은 반점이 있었다. 장갑을 끼고 일을 하지만 점점 더 심해진다고 했다.
 
의사에게 가봐야겠는데요... ”
의사는 꽃에 뿌리는 약품알레르기라고 했어요.”
그랬군요... 어떻게 치료를 하래요?”
장갑을 끼고 일을 하라는 데 장갑을 끼면 땀이 나서 더 심해지고 밤이면 가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연고나 약을 처방 받았나요?”
받아온 연고도 다 떨어지고 더 심해졌기에 다시 의사한테 가봐야 하는 데 시간이 없어요. 꽃집 주인한테 말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얼굴에 공포의 모습이 나타났다. 손님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녀는 장갑을 다시 끼었고 나는 리하트 광장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서 그녀에게 작별의 손짓을 했다.
 
2.귀국여행
 
이제 우리나라에도 없는 게 없으니까 아무것도 가져 오지 말라고 국제 전화로 동생이 신신당부를 한다. 오히려 세상에서 좋다는 것은 다 들어와 있다고. 속옷과 양말도 국산이 더 좋으니 와서 사서 입으면 된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속옷과 양말을 특별히 잘 만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짐을 싸면서 무게를 계속 점검하면서도 혹시 빠진 게 없나 살핀다. 내 집에 가면서도 뭐가 빠질까봐 걱정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되었다.
 
정말 핸드백 하나 들고 가도 될 친정집이 아닌가? 짐을 싸는 스트레스 한 달 동안 있게 되면 이리 저리 받은 물건들로 돌아올 때 마다 많아진 짐 때문에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빈 가방을 가지고 가도 될 것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짐 싸는 스트레스를 사서 한다. 이미 내 집도 아니고 내 친정도 아니고 여행자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재인식하는 일이다.
 
헬싱키에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떠나면 한동안 못 볼 것이라 생각하여 지하철 꽃집에 들렀다. 언제가 본적이 있는 그녀의 딸이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어머니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어 제가 맡았어요.”
손때문인가요?”
두 손에 염증이 더 심해져서 그만두었어요.”
의사한테 가봤어요?”
피부과에 입원해야 한다는 데 형편이 안 돼요. 의료보험이 없거든요.”
 
내가 여행을 가기에 당분간 베를린에 없다는 말을 어머니께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급하게 돌아왔다.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남편에게 꽃집 여자 이야기를 전했다.
 
당신 이제부터는 당분간 이곳 일은 잊어 두고 길에서 물건 잃어버리지 않게 해요. 내가 지나는 길에 꽃집 여자를 보게 되면 물어보지요.”
 
고국여행은 나의 몸과 마음을 휘저어 놓아 사소한 작은 일도 첨가되면 민감한 자극제가 된다. 휴가로 쉬기 위해 간다는 것은 헛소리에 가깝다. 내가 없는 동안 급속도로 발전한 고국사회는 조금도 쉬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나는 도착하는 그날로 헐레벌떡 나의 부재중에 생긴 간격을 줄이기 위해 뒤쫓아 다녀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고국 사회 속으로 뛰어 들어가 헤엄을 치듯 허우적거리며 내가 몸담아 살아온 다른 세계의 냄새를 풍기며 만나는 친지와 친구들의 무언의 요구를 아는 척 모르는 척 무조건 부딪친다. 그들 역시 나의 예민한 부분을 사정없이 건드린다. 인사말부터가 자극제다.
 
, 너 살 많이 쪘다.”
너 버터를 많이 먹어서 그렇지?”
나는 지난 40여 년간 빵에 버터를 발라 먹은 적이 없다. 아침식사를 빵으로 한다는 것만으로도 적응하기 어려운 일인데 지방덩어리 버터를 발라서 먹을 수가 없었고 지금까지 그대로다.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필수적인 에너지를 다른 음식으로 섭취해야했다. 외국생활을 시작한 그날부터 온몸을 감싼 그 이전에 알지 못했던 심신의 피로를 해소해줘야 할 수면마저 나를 괴롭혔다. 불면증과 더불어 살았다. 귀국여행은 쌓아온 온갖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것이건만 도착하는 날부터 다른 피로가 쌓이는 곳이다.
 
귀국하신다고요?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며 호강하고 오세요.”
당부하던 하는 베를린 친구들과 정반대다. 영원한 이국인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그렇게들 원하는 호강하고 오라고 하는데, 그 뜻인즉 조국 땅에서 내말하며 내 몸에 맞는 음식으로 포식하고 오라는 것이다.
 
베트남에 파견되어서 사장을 하는 사촌이 형제자매를 사이공으로 초대하여 비행기를 탔다. 유럽에서 가보지 못한 최고급 호텔 로비에 앉았다. 검은 유리창으로 뜨거운 햇살과 현지 노동자들의 시선을 차단한 리무진이 3대나 동원되어 우리 형제들을 해변의 레스토랑으로 모셨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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