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 작가 백운희의 문학 기행//
HOME 회사소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뉴스플러스 > 기고/연재
2018년05월07일 00시00분 198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 작가 백운희의 문학 기행//
7편: 보르헤스의 <<죽지 않는 인간 (El Inmortal)>>

아르헨티나 출생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1899-1986)20세기 남미 문학에서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소설의 통념을 깨는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표작 중 하나인 <<죽지 않는 인간>>을 소개하고 싶다.
다음의 이야기는 루신지 공녀가 <<일리어드>>책 갈피에서 발견한 원고이다. <<일리어드>>19296월 스미르나의 카르타피루스라는 사람이 런던에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으로서 포프의 1715년 판이었다. 공녀가 원고를 발견한 것은 카르타피루스가 죽은 후의 일이다. 그 원고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로마의 호민관으로 종군한 마르코 플라미누스 루프스는 죽지 않는 인간들이 산다는 신비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기로 결심, 200명의 병사와 함께 모험의 길을 떠난다. 뜨거운 사막의 강행군에 시달린 병사들은 탈주와 반란을 시도한다. 나에 대한 살해 계획을 듣고 나는 서너 명의 병사를 데리고 야영지에서 도망쳐 나온다. 나는 사막의 모래바람과 어둠에 일행을 잃는다. 크레타인의 화살을 맞고 부상당한 몸으로 며칠을 헤매다가 야수와 같은 인간들에게 포로로 잡힌다. 이 야만족은 언어가 없고 뱀을 잡아먹는다는 토로구로규타에족이다. 나는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리며 어떤 흑탕물 같은 냇물을 마시는데 바로 이것이 불사의 물이다. 나는 죽지 않는 인간들을 보고 싶다는 열망과 동경에 밀려 그 성시를 향하여 걷는다. 토로구로규타에족이 알아챘는지 두세 명이 따라온다. 밤이 되어서야 처음 성벽의 그림자를 밟는다. 성에 들어선 나는 이 불규칙하고 괴상한, 미로로 가득한 건물에 공포심을 느낀다. 이 적막한 공간을 내가 간신히 빠져나오자 나를 따라왔던 토로구로규타에 족의 한 사람이 나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야만인에게 아르고스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노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아르고스에게는 언어가 없으므로 그는 모래 위에 끊임없이 기호 같은 것을 쓰고 지울 뿐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아르고스와 나는 몇 년을 동고동락한 모양이다.
 
뜨거운 사막에 어느날 비가 내린다. 빗줄기에 몸을 맡기며 감동하여 나는 아르고스, 아르고스 하고 외친다. 이때 아르고스는 비와 눈물로 젖은 얼굴로 아르고스여, 율리시즈의 개여. 썩은 새 위에 웅크리는 이 개여.’ 라고 더듬거리며 말한다. 내가 오딧세우스에 대하여 아느냐고 묻자 마지막의 1장을 아주 조금만. 어쨌든 내가 그것을 지어낸 지도 벌써 천 년이나 지났으니까요. ’ 그때 나는 깨닫는다. 바로 토로구로규타에족이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들은 불멸의 도시를 세웠다가 파괴하고는 그 자재로 엉성하고 괴상한 건축물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그 도시를 떠나 동굴로 달아나 야만인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후 나는 몇 세기를 살며 온갖 여정을 걷는다.
 
< ……나는 새로운 왕국을, 새로운 제국을 차례로 편력하였다. 1066년 가을 스탬퍼드 다리에서 싸웠다. 사마르칸트의 감옥 안뜰에서 곧잘 장기를 두었다. 비카네르에서의 직업은 점성술사였다. 1638년 나는 콜로즈바르에 있었지만 다음에 라이프치히로 옮겼다. 1714년 아바단에서 포프의 일리어드’ 6권을 예약했다. 1729년경 나는 유명한 수사학 교수를 하고 있었다. 1921104일 내가 타고 있던 봄베이행 선박인 바트나호는 에리트리아에 기항했다. 나는 배에서 내렸다. 거기서 나는 홍해로 향하면서 그 옛날의 아침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로마의 호민관이었다…… >
 
나는 에리트리아에 기항하여 언제나의 습관대로 냇물을 마시고 둑으로 올라오다가 관목의 가시에 찔린다. 그때 피가 응고하는 것을 보고 나는 더 이상 불사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서의 나는 마르코 플라미누스 루프스가 아니라 카르타피루스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카르타피루스는 죽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깨닫고 루신지 공녀에게 첫머리에서 언급했듯이 <일리어드>를 헌정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나온 원고가 바로 호민관으로부터 카르타피루스 (나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적당한 이름을 썼을 것이다)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을 적은 회고록인 것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핵심이 호머의 <<오딧세이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자신이 불사의 물을 마시고 2000년을 살면서 겪는 이야기 자체가 오딧세이아를 방불케 하며, 주인공은 자신이 바로 호머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기억은 시적 추상과 뒤섞여 그 자신과 별개의 인물이 호머라는 인물로 융화된다.
 
<……종말이 가까워질 때 추억의 이미지는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언어 뿐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예전에 나의 존재를 명확하게 제시한 것과 몇 세기 동안을 나에게 따라붙어 왔던 운명을 나타낸 여러 모습을 혼동했지만 그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다. 내가 바로 호메로스였다. 이윽고 나는 저 율리시즈처럼 인물이 될 것이다. 나는 죽을 것이다. >
 
독자는 위의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보르헤스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말하면 픽션과 형이상학의 조합이다. 난해한 것이 사실이나 철학적 사념과 세계관, 뛰어난 언어의 총체인 그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나름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대체로 단편소설을 많이 썼고 장편소설에 전혀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마르케스의 작품이 남미를 떠나지 않는 반면 보르헤스는 고향인 아르헨티나를 벗어나 이국을 배경으로 하여 쓴 것도 많다. 그는 작가의 편협한 지역성을 거부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다분히 천재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죽지 않는 인간>> 외 단편소설 중 <<원형의 폐허>>, <<바빌론의 제비>>, <<신의 필적>>, <<분기의 정원>>, <<기억력이 뛰어난 푸네스>>, <<남부>>등은 필자가 개인적으로도 강추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작가 백운희: 소설가/ 재독문인회)
 
107317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기고/연재섹션 목록으로
[기고/연재]터키 보드룸(Bodru...
[기고/연재]상냥한 정여사가 ...
[기고/연재]내가 운전면허를 ...
[기고/연재]정원교의 중인환시...
[기고/연재]상냥한 정여사가 ...
 

이름 비밀번호
[1]
다음기사 : “기고” 소리의 향연 ‘Frühlingsstimme’ (2018-05-07 00:00:00)
이전기사 : 5월에 쓰는 편지(그러나 받을 사람이 없다.) (2018-05-07 00:00:00)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제 27회 겨자씨 모임
뒤셀도르프 소망교회 대강절 성...
사)재독한인간호협회 제26차 정...
향군창립 66주년(지회 창립 8주...
도르트문트 한글학교 40주년 학...
자동차퍽치기 당하다!?
책&삶에서 독일 소식을 전해줄 ...
한글로망 자랑스런 한글 세계화
    답변 : 한국을 한국이라 말...
독일의사들 선운사에서 한국기공...
피해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Damenmode bis 80% Duesseldorf-...
아름다운공간
CoOpera 가이드 모집공고
총신대 한국어교원양성과정과 함...
[중소기업진흥공단 SBC] 2019년도 해외민간네트워크 ...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포럼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