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정원교의 중인환시(衆人環視)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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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3월26일 00시00분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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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교의 중인환시(衆人環視) (9)
모차르트의 결혼식
1756생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는 독일 요한 세바스찬 바하(Johan Sebastian Bach)의 아들인 크리스찬 바하에게서 지휘와 작곡법을 배웠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가 26세 때인1782, 모차르트는 호적청에서 그들의 결혼을 알리는 공고문 (公告文)도 없이, 부모의 허락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독일여성 콘스탄쩨 (Constanze) 와 결혼식을 올려 버렸다.
 
독일에서는 신랑신부의 결혼이 합법적인 것인지를 주민에게 확인시키고 널리 알리자는 뜻에서 호적청 게시판에 일정기간동안 주민들의 결혼일정을 공고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부친은 독일 아욱스부어크(Augsburg) 출신이다.
 
모차르트는 콘스탄쩨 가족을 독일 만하임(Mannheim)에서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첫째 딸 알로이시아(Aloisia) 를 좋아 했었다.
 
그러나 작곡가 베버 (Weber)의 딸인 알로이시아는 모짜르트에 관심이 없었고 그의 청혼마저 거절했다.
 
그러던중 우연한 기회에 독일 뮌쉔(München)과 오스트리아 빈 (Wien)에서 둘째 딸인 콘스탄쩨(Constanze)를 만나게 되면서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콘스탄쩨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모차르트는 그녀의 부모에게서 결혼승락을 받아 내려고 여러 번 노력해 보았지만 매번 거절만 당하자 결혼증명서를 내밀면 부모님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결혼식부터 올려 버린 것이다.
 
모차르트는 가족생계를 위해서 결혼 이후에도 총각 때 그랬던 것처럼 9년동안이나 작곡과 연주활동으로 가족과 자주 떨어져서 살아야만 했다. 그 와중에서도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두 아들만이 살아남는다.
 
귀재단명이라고 했던가!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4살 때부터는 작곡을 하여 음악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는 179136세라는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791년의 한국은 정조 13년째이며 홍국영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해 가고 있었으며, 미국에서는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ton)이 당선되었다.
 
일반적으로 모차르트는 상당히 가난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아 장례식 때에 인부도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였고, 눈바람의 추위에 시신을 운반하던 사람들조차 수고료를 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허허벌판에 시신을 그냥 버리고 돌아옴으로써 오늘 날까지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빈(Wien)에서는 물론 영국, 독일, 이태리, 불란서 등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작곡과 연주의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쪼들리는 살림살이가 아니었다.
 
그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쓴 편지가 남아 있기는 해도, 이는 그의 생활이 가난해서 호구지책으로 지인들에게 항시 돈을 꾸러 다닌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차르트의 그림을 보면 언제나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붉은색 의상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차려입은 거지가 얻어먹기도 잘 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화려한 옷은 생활의 윤택에서 온 것이다.
 
아직까지 그의 무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가 묻혔던 묘지가 좁아지자 이를 확장하느라고 몇 번 이전하는 과정에서 손실된 것이라고 한다.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과부가 된 콘스탄쩨(Constanze)는 남편과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 할 자신과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추모음악단을 조직한 후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들을 정리해서 지방 순회 공연을 다니면서 흥행에 성공을 본다.
 
콘스탄쩨는 모차르트가 사망하고 18년째가 되던 해에 덴마크 관료출신 니쎈(Georg Nikolaus Nissen) 과 두 번째 결혼을 하며, 모차르트의 생애에 관한 첫 자서전은 이 두 사람의 손을 거쳐 출판하기도 했으며, 184280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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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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