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독일의 6대 가도를 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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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3월19일 00시00분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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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6대 가도를 가다 3
독일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로맨틱 가도(2)

로맨틱 가도는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까지 이어지는 약 350에 이르는 낭만길이다.
뷔르츠부르크를 출발해 로텐부르크, 딩켈스불, 뇌르틀링겐, 아욱스부르크 등을 경유해
퓌센까지 가는 동안 여행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낭만적인 중세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뇌르틀링엔(Nördlingen)
딩켈스불을 지나 국도 25번을 따라 차량으로 약 30km를 달리다보면 아름다운 중세풍의 도시 뇌르틀링엔에 도착하게된다.
 
뇌르틀링엔은 독일에서 중세 성벽과 망루 등이 온전히 보존된 몇 안되는 도시로 구시가지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망루에 오르면 아래로 펼쳐지는 뇌르틀링엔 구시가지 전경은 관광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13세기초 뇌르틀링엔은 신성로마황제로부터 제국도시임을 인정받을 정도로 번성하였으며, 이후 구교와 신교 사이의 종교전쟁인 30년전쟁(1618-1648) , 구교와 신교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뇌르틀링엔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기에 뇌르틀링엔 도시만을 목적지로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은 도시이기는 하나, 로맨틱 가도의 여정으로 뷔르츠부크를 시작으로, 로텐부르크, 딩켈스불을 지나 아욱스부르크로 가는 국도에 위치해 잠시 들려 중시도시의 정취에 빠져보기에는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아욱스부르크(Augsburg)
바이에른 주에서 뮌헨과 뉘른베르크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아욱스부르크 시는 뮌헨 북서쪽 64km 지점, 독일 알프스 산지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레히(Lech)강과 베르타흐(Wertach)강이 합류하는 삼각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는
독일을 각지를 여행하다보면, 많은 곳에서 로마시대의 유적을 살펴볼 수가 있고, 2000년의 도시, 1500년 역사를 지난 도시 등 각 도시는 자신의 역사를 자랑스레 전하고 있다.
특히 트리어, 쾰른, 노이스, 마인츠, 아욱스부르크 등은 고대 로마시대의 건설된 도시로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잠시 이들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한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트리어는 사료에 의하면 기원전 30년 군사적 목적으로 로마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1105년 편찬된 전래 신화, 문헌, 전설 등을 엮은 책 “Gesta Treverorum”에 의하면 트리어는 아시라아의 Ninus 왕에 의해 건설되었고, 그 시기는 로마건국(기원전 756)보다 1300년 전이라 적고 있다. 이는 대략 기원전 2050년 경이다.
 
마인츠는 라인강변의 로마군단 주둔지로 사료에 의하면 기원전 32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노이스 역시 라인강변 로마군단 주둔지로 기원전 16년 건설되었다.
 
쾰른은 로마군대가 라인강을 따라 북진하면서 정복하여 노이스보다는 그 역사가 조금 앞설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추정이나, 정식 도시로 명명된 것은 기원후 50년이다.
당시 황제인 클라우디아 로마황제는 자신의 부인인 아그리피나(네로의 어머니)에게 헌정하면서 “Colonia Claudia Ara Agrippinensium” 이라는 도시 명칭을 부여받았고, 쾰른이라는 도시명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한편 아욱스부르크 도시의 기원은 기원전 15년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설정된 군단 주둔지가 된 데서 비롯되며, 도시의 명칭도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로마 시대에는 라에티아 지방의 주도(主都)였으며, 8세기에는 교구청이 설치되었고, 1276년 제국 직할도시가 되었다.
 
아욱스부르크의 발전
중세 이후에는 통상도시로서 알프스 북쪽 기슭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으며, 상업의 번영과 함께 양모공업마직물 등의 수공업도 활발하였다. 15세기 후반 이후에는 푸거가()벨저가 등의 재벌이 출현하여 유럽 각지의 상업금융업에 크게 활약해서 아우크스부르크의 번영은 절정에 이르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화의 중심지로 H.홀바인, H.부르크마이어 등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활동이 활발하였다. 17세기 전반에 건설된 시()청사는 독일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작이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제국의회가 열렸고, 1530년에는 신구 양교의 조화를 이룩하기 위한 아우크스부르크 회의가 열렸으며, 1555년 종교개혁의 결과를 알린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의도 이곳에서 체결되었다. 17세기 이래 대서양 항로의 발견으로, 상업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짐에 따라 쇠퇴하기도 하였으나, 근세에 이르러 다시 공업도시로 부흥하였다.
 
아욱스부르크의 유명한 축제로는 모차르트 페스티벌과 브레히트 연극제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본인도 비중 있는 작곡가였으며 이곳에서 태어났다. 모차르트 페스티벌은 전통적으로 5월에 개최되고, 레오폴트와 볼프강 아마데우스의 유명 작품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가족, 친구, 음악적 경쟁자와 적수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전달하고 있다.
 
브레히트 페스티벌은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연례 연극제이다. 이 도시가 낳은 브레히트를 기념하는 행사이다. 아우크스부르크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고 좋은 평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그들은 브레히트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를 위해 그의 생가에서 근사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화려한 분수와 시청사의 장려한 건축물 등으로 대표되는 르네상스양식의 건축물. 그리고 로코코양식의 화려한 귀족관 쇄츨러궁(Schaezler-Palais, 현재 시립미술관)등 현대 문화와 과거가 잘 조화된 아욱스부르크 시의 아름다움은 많은 관광객들은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세계 최초의 복지 시설 Fuggerei ‘노블레스 오블리주
푸거라이는 16세기 유럽 최고 부자였던 야콥 푸거(Jakob Fugger 1459-1525)1521년에 세운 빈민을 위한 주거단지다.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 시설로 꼽힌다. 현재 푸거라이에는 67채의 건물에 14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연간 임대료는 500년 전과 똑같은 0.88유로(당시 화폐 단위였던 1 Gulden의 현재가치)이다.
 
거의 무상 임대 수준인 푸거라이는 현대적 시각으로도 놀랍게 보일 만큼 격조 높은 복지개념이 실현된 곳이었다. 성당과 공동우물이 있으며 당시 수준으로서는 어느 서민 주택과도 비길 수 없이 위생과 복지시설이 갖추어진 시설로 존재하고 있다.
 
오늘도 이 시설은 과거의 기념물이 아니라, 중세기와 같이 노인들 중 무주택자들이 살고 있어 기념관이 아닌 그 기능이 살아있는 복지시설의 현장으로 남아있다.
 
푸거라이 안에는 8개의 골목과 7개의 대문을 비롯해 교회, 정원, 분수, 레스토랑 등 없는 것 없이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며, 도시 성벽, 성문, 돌로 된 백합 문장(紋章) 등도 있어 하나의 독립적인 도시를 방불케 한다.
 
1년 임대료(kaaltmiete)로 변하지않고 0.88 유로인 것은 비록 가난해서 여기에 살고 있더라도 집세를 내고 산다는 거주인들의 자존심을 키워주기 위한 사려깊은 배려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푸거 역시 중세인이기에 고리대금은 곧 지옥불로 이어진다는 교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입주자들에게 하루 성모경 세 번을 자신을 위해 바쳐 달라는 당부를 했고 이것은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독일의 푸거 가문은 복지의 개념도 없던 시절에 유럽 사회복지의 초석을 놓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푸게라이는 지금도 야콥 푸거의 후손이 운영하고 있는 푸거재단 소유다.
 
퓌센(Füssen)
퓌센은 알프스 기슭에 있는 관광도시로 로만티크 가도의 마지막 마을이다. 겨울 스포츠의 낙원이자 휴양지인 퓌센은 레히(Lech)강을 끼고 오스트리아 국경의 알고이 알프스 산맥의 동쪽 기슭에 있다. 주위가 온통 포르겐 호수 등으로 둘러 싸여 있는 이곳은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이 퓌센의 아름다움을 더욱 값지게 하며, 주위의 우거진 숲과 산, 호수로 그 명성을 더하고 있다.
 
350km의 화려한 로만틱 가도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우뚝 솟은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이곳에서는 특히 볼 만하다. 이 성은 Füssen에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바이에른 국왕인 루드비히 2세가 재권과 권력을 총동원한 로만틱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 밖의 유적으로는 1270년부터 1505년까지 건축한 아욱스부르크 주교들의 이전 여름 별장이었던 호에스 슐로스(Hohes Schloss)와 몇몇 바로크 양식의 교회가 있다. 또한 독일의 대표적인 인류 문화 유산으로 손꼽히는 비스교회(wieskirche)가 있는 데, 이 교회는 퓌센에서 약 3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슈타인가가르텐에 있는 것으로서 가치가 크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동화 속에 등장하는 궁전같은 환상적인 모습 때문에 월트 디즈니의 디즈니랜드 성의 모델이 되었고, 루드비히 2세 역시 동화속의 왕이라는 별명을 남겼다.
험준한 절벽 위에 백조 한 마리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것 같은 성채를 보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관광객들은 최악의 지형적 조건에서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성을 건설했는지 궁금해하는 한편 인간의 경이적인 힘에 놀라움을 표하기 마련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백색 도시인 '미나스 티리스'가 연상되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그 이미지대로 백조가 따로 없을 정도다.
 
이런 외적인 아름다움 못지않게, 이 성은 최첨단 방식으로 건설됐다. 1869년 시작된 공사는, 열악한 입지 조건과 천문학적 경비로 17년의 세월을 끌었다. 성 내부에는 현대식 중앙난방시설과 음식 운반용 선반 엘리베이터 등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신식인 기술들이 도입되어 있다.
 
퓌센에 가면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외에 호엔슈방가우 성(Schloss Hohenschwangau)도 반문할 것을 추천한다. 바이에른의 왕이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립한 루트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2세가 19세기 초엽에 개조를 거쳐 건축한 네오고딕 건축 양식의 성으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유럽 전통 성의 모습을 띠고 있다. 루트비히 2세도 이곳에서 자랐고. 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었던 루트비히 2세는 호엔슈방가우 성은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모두 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물들을 건설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이름에 새로운(neu)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게 된 것도 슈방가우 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편집실)
 
사진
1. 뇌르트링엔 구시가지
2. 아욱스부르크 시청사
3. Fugerei
4. 노이슈반슈타인 성
5. 호엔슈방가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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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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