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내 얘기 좀 글로 써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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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3월05일 00시00분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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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 좀 글로 써 줘요..
전성준 (프한사)

이른 아침.
 
간밤에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보는 바람에 잠을 설친 탓인지 뒷머리 골이 찡하니 몸이 개운치 않았다.
 
라이브방송이 아니고 경기의 하이라이트만 골라 재방송하는 프로에 이미 승패가 결정 난 경기인데도 시청하는 동안 손바닥에 땀이 나게 하는 쇼트트랩 경기는 언제나 봐도 긴장감이 넘치는 경기다.
 
창밖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금년 겨울에 눈을 구경 못하고 지나칠 줄 알았는데 간밤에 눈이 내린 것이다.
눈길을 걷고 싶은 작은 충동이 생겼다. 주섬주섬 외투를 껴입고 눈길에 넘어지지 않게 굽이 있는 신발을 찾아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벽에 걸린 전광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걸어 온 걸까? 그냥 못 들은 척 지나칠까 했으나 핸드폰이 아닌 유선 전화벨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돌아섰다.
 
요즈음 유선전화 호출은 독일이 아닌 한국이나 다른 곳에서 오는 전화가 많다. 혹시 긴한 내용이 아닐까하는 직감에 불현듯 가벼운 불안감이 겹쳐 왔기 때문이다. 성큼 성큼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낯설은 한국 여인의 목소리다.
 
글 쓰시는 프한사 전선생님 댁이십니까?” 처음 듣는 목소리다.
네 그렇습니다. 누구신지요?”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 전화를 해서 미안해요. 하나우에 살고 있는 프라우 김이라 합니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어 전화를 했습니다. 교포신문에서 프한사를 거쳐 간 사람들이란 글을 감동 깊게 읽고 제 이야기도 전선생님께서 좀 써 주십사하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상대방을 안중에 없이 자기 할 말을 거침없이 내 뱉는 행동이 약간 거칠고 성깔이 있게 보였다.
 
마침 마땅한 소재가 없어 글쓰기를 중단하고 있던 터라 반갑기도 했지만 의식적으로 슬쩍 사양하는 것도 수순의 일부다. 아무튼 프한사(프랑크푸르트 한인 사랑의 쉼터)까지 알고 있고 교포신문에 올린 글까지 기억하고 있다면 그냥 관심 없이 흘러 지나칠 수는 상대가 분명했다.
 
그래요 그러나 저 보다는 기사를 잘 쓰는 교포신문 기자분이 계신데 저한테 특별히 부탁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이런 경우에는 무례한 상대를 향해 한 자락을 깔며 슬쩍 사양하는 척 내숭을 떠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그렇치 않아요! 기자분들이 쓰기 보담 전선생님께서 이 글을 써 주시면은 많은 분이 동감 할 것 같아서 어려운 부탁을 드림니다.” 이분 역시 말솜씨가 보통은 넘었다. 내 말에 직답을 피하고 너스레를 떠는 그분 말에 귀가 솔깃했고 싫지 않았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로 상대의 나이를 짐작 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꽤 듬직했고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마지못한 척 그분의 사연을 귀 담아 듣게 되었다.
 
모처럼 눈길을 산보하겠다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두터운 방한 외투와 투박한 등산화를 신은 채 그 분의 말을 들었다.
 
며칠 동안 생각을 거듭하다 용기를 내어 어렵게 나를 찾아 전화를 하게 되었다는 첫 말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1970년대에 독일에 온 파독 간호사이며 2010년 오펜박흐 시립병원에서 정년퇴직한 한국 간호사 김선애(가명)씨였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혼자 몸이 된 그 분은 여섯살 아들과 네살짜리 남매를 친정집에 맡기고 돈을 벌기 위해 독일 땅을 선택한 그녀는 오직 남매를 위해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억척 같이 일을 했다 한다.
 
계약 기간 3년이 지났으나 귀국을 미룬 채 친정집에 맡긴 남매를 독일로 데려 왔다한다. 휴가 기간에도 일자리를 찾아 근무하면서 남매한테 가정교사까지 붙여 독일어 특별지도를 하는 등 남매 사교육비는 절대 아끼지 않았다 한다. 다행히 남매가 대학 과정을 마치고 귀국 아들은 국내 유수한 회사에 취직 이사직에 오르고 건축학을 정공한 딸도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유명한 건설회사 설계사로 들어가 착실한 남편을 만나 결혼 오붓한 생활을 할 만큼 고생한 보람을 느꼈다한다.
 
오직 자식들을 위해 4십여년의 긴 세월을 한 병원에서 젊은 청춘과 인생을 다 바친 그 분은 65세 나이에 정년퇴직 연금생활에 들어가자 성공한 아들딸이 살고 있는 고국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났다 한다.
 
처음 귀국 후 아들 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검소한 독일 생활이 몸에 밴 그 분한테 아들 집 생활은 언제나 불만투성인데다 고부간에 갈등이 심해 결국 아들 집을 뛰쳐나와 딸과 같이 살았다. 그러나 사위가 하는 건축사업이 위기에 처해 곤궁에 빠지자 자신의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위기를 면하게 했다. 그러나 도저히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다시 독일에 돌아 와 이곳저곳 끼웃거리며 살아오다 결국 무의탁 생활 보호대상자로 헤쎈시립 양로원에 입주했다 한다.
 
양로원에는 무의탁 남녀 노인 3십여명이 입주해 있는데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이용한 사람이 남녀 다섯이고 거동이 불편해 침상에 누워만 있는 남녀 노인이 여섯. 그리고 약간의 치매증상과 현실을 파악 못한 채 황홀한 옛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조현병 증세의 노인이 대부분이라 했다. 그분은 젊은 시절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이곳저곳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후유증으로 무릎 관절이 상해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녀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시립 양로원에는 동양인은 오직 한 사람 자신뿐이라 했다.
 
병원 간호사 출신이라 처음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으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자 양로원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극단적인 말을 서슴없이 했다.
 
나이를 먹으며 행동이나 생각이 어린애 같아 남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는 미덕은 사라지고 오직 자신만을 위하고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이라고 왕따를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다반사라 한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는 없지만 정신은 말짱하고 말이나 표현 행동이 건전한 그분한테 양로원 생활은 많은 고통이 따른 것이다.
몇년 동안 고국에 돌아 가 한국 음식에 입맛이 길들어진 그분한테 양로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늘 불만이라 했다.
 
아침에 사과 한 알에 빵과 요구르트 부어스트 치즈 그리고 커피 또는 우유가 전부이고 점심은 야채 아인톺프에 감자. 보리빵에 오렌지 한 알 커피와 요그르트, 저녁은 보리빵과 싱켄, 요그르트와 차 등.
 
매일 매일 비슷한 음식에 겨우 하루에 한 시간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밖을 산책하는 것이 그녀의 생활 전부라 했다.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닐 때는 1주일에 한차례 잠깐 외출도 하고 한국 음식도 맛 볼 수 있고 1년에 두어 차례 한국에서 아들이 다녀가고 딸은 조금만 참고 기다리며 어머니를 모셔 가겠다고 하더니 마음대로 거동을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되니 아들은 전혀 소식을 끊고 딸한테만 가끔 연락이 온다고 했다.
 
유일한 낙은 가끔 찾아오는 근처 한국 교회에서 가져 오는 교포신문과 김밥 몇 줄을 기다리는 것이라 했다.
 
그런 단조로운 양로원 생활에 한 가닥 희망이 찾아 왔다고 했다.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재독한인간호협회 남부지역에서 복지를 담당하는 프라우 이경자라는 분이 찾아 와 가끔 한국 식품을 보내 준다고 했다.
 
라면과 햇밥. 과자와 김. 즉석 우거지국 짜장면등 다양한 한국 식품이 헤쎈 시립 양로원에 도착하는 날은 대축제가 벌어진다고 했다.
 
평소 이방인이라고 왕따를 당하던 그분은 사랑의 선물이 도착하는 날에는 그 주변에 많은 노인들이 모여 든다고 했다. 외부 음식 반입을 절대 금지하지만 양로원 관리측에서도 사랑의 선물은 눈을 감아 준다고 했다.
 
양로원에 사랑의 선물이 도착하는 날에는 노인들이 함께 모여 같이 먹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고 자리를 마련 해 준다고 했다. 그분은 조리사한테 조리 방법을 설명 해주고 준비한 음식을 30여명 양로원 식구가 나눠 먹으며 즐긴다고 했다.
 
딱딱한 브뢰친과 버실 버실한 보릿 빵 부어스트 아인톺프만 먹어 오던 양로원 노인들한테 가끔 한 차례씩 조금씩 서로 나눠먹는 얼큰한 라면과 김과 햇밥 등 한국 음식에 환호 했고 그 일로인해 눈 길 한번 주지 않던 노인들이 미소를 띠며 아는 척 인사를 하는 등 요즈음 사랑의 선물로 분위기가 바뀌어 답답하고 지루한 양로원생활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그중 컵 라면은 인기가 대단하다했다. 매콤한 맛에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걸신들린 사람마냥 좋아 하는 그들을 보면 사랑의 선물을 보내준 재독 한인간호사협회에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언제 어느 때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는 등 삶과 주검이 수시로 바뀌는 한 치의 앞도 예측 할 수 없는 무겁고 답답한 양로원 생활에 사랑의 선물로 인해 웃음꽃이 피고 있다한다. 특히 젊었을 때 모델을 했다는 바이엘뮌센 출신 사브리나는 늘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고 음식을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는 야만인이라고 모욕적인 말을 서슴없이 해되며 못 견디게 굴던 그녀가 컵 라면 맛을 알고부터는 “schmackhaft!!" 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고 했다. 그 일 이후 사랑의 선물 때문에 양로원 가족이 자신을 대하는 뭇 시선이 부드러워져 한결 양로원에서 지내기가 편해졌다한다.
한인간호사협회에서 보내준 사랑의 선물로 인해 자신이 겪은 감동적인 사연을 나를 통해 교포사회에 알려 널리 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리고 자기가 활발히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파독 한인간호사협회란 단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명예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모여 자리싸움만 하는 그런 단체로 비아냥거리며 지내 온 세월이 너무 야속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의지 할 곳이 없고 가족에 소외 된 불우한 파독 간호사를 찾아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는 간호사협회의 고마운 손길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소설 한 권을 써도 부족한 기구한 사연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는 그분은 양로원 공중전화라 길게 통화 할 수 없어 아쉽다고 했다. 강인한 척 또박 또박 하고 싶은 말을 이어 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아삭아삭 씹히는 총각김치를 먹고 싶다는 말에는 결국은 울먹거렸다.
 
나는 그분의 진솔한 말씀에 가슴이 찡하니 격한 감동을 받았다.
 
생각 같아서는 도시락에 밥과 총각김치와 통배추 김치를 싸들고 당장 달려가 그분이 다 못한 남은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싶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전화로 들은 이야기만 간단하게 소개하기로 했다.
 
담담한 마음으로 작은 사랑의 선물에 감동을 받은 그 분의 사연을 소개 했지만 그 분이 열악한 시립 양로원에서 겪은 현실은 그분만의 일 아니고 우리세대가 머지않아 이곳 독일 땅에서 겪어야 할 현실이며 우리 주변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눈이 내린 거리를 산보하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생활습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이국 생활에서 늙을 말년 나한테도 닥쳐 올 현실을 상상해 보니 눈앞이 캄캄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마지막 가는 길에 겪어야 할 현실이고 풀어야 과제가 아닌가 싶다.
 
얼핏 보이는 창밖에는 가는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106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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