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고(故) 이화선 목사 영결식 거행
HOME 회사소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뉴스 > 한인사회
2017년12월04일 00시00분 89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고(故) 이화선 목사 영결식 거행

프랑크푸르트. 재독 남서부지역 한인교우회 창립을 주도했던 이화선 목사 영결식이 1128() 오전1030Frankfurt-Friedhofskapelle Bornheim에서 엄숙히 거행하였다.


카펠레에서 진행된 영결식은 그의 생전헌신과 수고를 기리기 위해 교회장으로 부고했으며 라인마인교회 윤종필 목사와 Wartburg교회 Thomas Diermer가 주제하였다.
 
천국환송예배를 하는 카펠레에는 그를 애도하는 수많은 추모 화환 등이 놓여진 가운데, 테너 김영식(Oper Frankfurt 단원)의 독창 "주 여호와는 나의 목자 되시오니 (Psalm 23/김영식 작곡)" 입례송으로 시작되었다.
 
Thomas Diermer이화선 목사와 생전에 나누었던 대화들을 통해 신학에 대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윤종필 목사는 말씀에서 그의 생애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자 이화선 목사의 일대기를 요약하며 추모하고 희생한 삶에 대해 공유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화선 목사는 1926626일에 경남 통영군에서 23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형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소학교 졸업 후 일본 가와사키에서 전쟁 중 힘들게 학업을 계속하는 가운데, 가와사키에서 한인교회를 돌보던 일본인 고노에 목사는 어린 이화선 군을 가족처럼 돌봐 주었다. 1950418일에 한국 신학대학 제 1회 졸업생이 되었으며, 이는 우리나라 최초 신학대학 졸업생이 된 것이었다. 그가 신학을 공부하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과 형의 도움이 컸으며 이화선 목사는 친구들과 함께 한국의 신학을 수립하는 것이 졸업 당시 꿈이었다.
 
한국전쟁 후 교편을 잡은 시기에 인생의 스승인 칼바르트의 신학과 만나게 되었으며 1958년 목사 안수를 받고 한남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1961년 스위스로 건너가 바젤에서 신학을 연구하였다. 1963년부터 1970년까지 괴팅엔에서 칼 바르트의 제자인 오토 베버 교수와 1970년부터 72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한스 바르취 교수에게서 '신약의 스칸달론 개념과 노자의 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독일에서 교회를 시무하는 동안 태동기에 있던 재독 한인 교회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데 기여하고, 독일 교회와의 협력 속에서 외국인 목사 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재독, 재유럽 교민활동의 선구자였다. 1991년 은퇴 후에도 후학을 가르치며 평생의 화두였던 노자의 '복귀 사상'과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후학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박석일 장로는 기도의 시간을 통해 "이화선 목사는 독일 교포 사회에서 희생하고 한인교회를 설립하였으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어느 곳이든지 도움의 손길을 주었으며 남북통일 운동을 하였다"면서 아쉬운 이별이지만 주 안에서 평안하기를 기도하며 위로했다.
이어 라인마인교회 성가대가 찬양곡 "주는 산골짝의 백합", 하모니 앙상블이 "In mir klingt ein Lied (F. Chopin 작곡)- 내 마음의 노래"를 부르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한나, 정양후 권사, 이유진 팀, 김완호, 이사라의 추도사가 이어지며, 슬픈 작별에 오열하기도 했다.
 
특히 장녀 이한나는 추모편지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유럽 유학생활로 떨어져 살면서 느낀 외로움과 한국에서의 힘겨웠던 시절, 18살 때 아버지를 재회하며, 아버지와의 만남이 그녀의 사고능력과 자아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강조했다.
 
"1973년 어머니와 함께 독일에 도착하여 아버지 초창기 라인마인한인교회 목회 생활에 가족으로 동참하였지만, 아버지 신학적 소신과 입장에 의한 목회 방식은 가족 모두에게 어려움을 겪게 했다. 고통의 시절의 삶 속에서 아버지는 그녀에게 미래의 꿈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 채 45년간 독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살아생전 아버지의 큰 화두였던 '화해'는 그녀에게는 커다란 이념의 것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로 다가왔으며, 갑자기 떠나간 아버지가 그녀에게 많은 일거리를 맡겨 놓은 것 같아 무겁지만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마음을 전했다.
 
, 김완호는 추모시 <연어의 거역> 낭송을 통해 강직하고 신념이 강했던 그의 삶과 족적을 기렸으며 홀안을 울먹이게 했다.
 
기도와 축도 후 소프라노 김복실(Oper Frankfurt 단원)이 김영식 반주에 맞춰 "Bist du bei mir (J.S.Bach 작곡)-주님께서 함께 계시니"로 예배를 마친 후 Friedhofs Bornheim Frankfurt am Main에 장지 하였다.
 
지난 1119일 새벽1, 91세를 일기로 소천한 이화선 목사는 한국신학대학 1회 졸업생으로 한인이주 초기인 1969년 재독 남서부지역 한인교회 교우회 창립을 주도하고 이 모임이 전신이 된 라인 마인 지방 1인 교회에서1969년부터 1977년까지 초대 담임목사로 있었으며 이후 1977년부터 1991년까지 독일 헤센 나사우주 교회 소속 Wartburg교회(프랑크푸르트 소재)에서 사역 후 정년퇴임 하였다.
 
1979<기독교 통일 위원회> 초대회장, 1981<기독교 통일위원회> 주최로 <남과 북 해외동포의 만남>을 오스트리아 빈에서 최초로 개최하였으며 1981<기독교 통일 위원회>의 이름으로 해외 기독인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조의금은 고인의 뜻에 따라 한인교회 선교를 위해 기부된다.
 
105312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김미연 (my.areist@daum.net)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한인사회섹션 목록으로
[한인사회]고(故) 현영삼 요...
[한인사회]고(故) 이화선 목...
[한인사회]재독한인간호협회 ...
[한인사회]주본분관, “2017...
[한인사회]베를린 기독교한인...
 

이름 비밀번호
[1]
다음기사 : 고(故) 현영삼 요한네스 장례미사 (2017-12-04 00:00:00)
이전기사 : 재독한인간호협회 제24차 정기총회 (2017-12-04 00:00:00)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월남전참전자회 독일회...
대한민국 고엽제 전우회 신년 잔...
2017년 쾰른여성합창단 제25회 ...
쾰른 한빛 교회 성탄 음악회
UNIKATE 2017 in Duesseldorf
자동차퍽치기 당하다!?
책&삶에서 독일 소식을 전해줄 ...
한글로망 자랑스런 한글 세계화
    답변 : 한국을 한국이라 말...
독일의사들 선운사에서 한국기공...
피해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Damenmode bis 80% Duesseldorf-...
아름다운공간
CoOpera 가이드 모집공고
총신대 한국어교원양성과정과 함...
2016학년도 재외동포 국내초청교육(모국수학) 과정 수...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포럼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