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우리 역사속의 독도 인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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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11월27일 00시00분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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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속의 독도 인식 (2)
우산국이 와해된 11세기 중반 이후 울릉도-독도 지역은 우산국이라는 매개체가 사라져, 고려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파악이 필요한 곳이 되었다. 고려의 관원이 파견되고, 원간섭기 울릉도의 벌목작업 등을 거치면서, 고려 중앙정부의 독도에 대한 인식이 가능해져 갔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고려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는 독도는 아직 고유한 명칭을 갖지 않은 채 옛 우산국의 영토로서 본도(本島) 울릉도에 딸린 하나의 속도(屬島)로서만 파악되었던 듯 하며, 그 지리적 정보도 모호했던 듯 하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왕조로 이어지는데, 태종 12(1412) 강원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유산국도(流山國島) 사람 백가물(百加勿) 12명이 고성(高城) 어라진(於羅津)에 와서 정박하여 말하기를,‘우리들은 무릉도(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의 인호(人戶)11호이고, 남녀가 모두 60여 명인데, 지금은 본도(本島)로 옮겨 와 살고 있습니다. 이 섬이 동에서 서까지 남에서 북까지가 모두 2() 거리이고, 둘레가 8() 거리입니다. 우마(牛馬)와 논이 없으나, 오직 콩 한 말만 심으면 20석 혹은 30석이 나고, 보리 1석을 심으면 50여 석이 납니다. ()가 큰 서까래 같고, 해착(海錯)과 과목(果木)이 모두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망하여 갈까 염려하여, 아직 통주(通州)고성(高城)간성(杆城)에 나누어 두었습니다.󰡓하므로, 태종은 의정부에 유산국도민의 처리 방안을 의논하게 하였다.(태종실록23, 태종 124己巳條)

위 기록에서 백가물 등이 말한 本島 , 유산국도는 바로 울릉도를 말한 것으로 봐야 한다. 조선초에 중앙정부에서 울릉도는 무릉도로 불려 지고 있었다. 그러나, 위 기록에서의 무릉도는 오늘날의 댓섬(죽도) 정도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울릉도 현지민들에게 울릉도는 아직 우산국도 즉 우산국의 섬혹은 우산국섬이라고 인식되고 있었으며, 본토에서 울릉도를 호칭했던 무릉도가 우산국도(于山國島) 혹은 우산도(于山島)라는 호칭과 혼용되거나, 주위의 작은 섬의 명칭으로 사용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이는 고려중기 이래로 계속된 인식의 변화, 즉 우산국의 무릉도 혹은 우산도로의 변화과정 속에 나타난 과도기적 상황을 말해 주는 것이다.
 
태종 16년에는 삼척사람으로 만호(萬戶)를 지낸 김인우(金麟雨)가 무릉 등지의 안무사(武陵等處安撫使)로 임명되는데, 김인우는 이듬 해 2월 토산물(土産物)과 함께, 섬의 거주민 3명을 데리고 왔으며, 섬에는 15, 남녀 86명이 있다고 보고했는데, 실록에는 김인우가 于山島에서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태종실록32, 태종 169庚寅條, 33, 태종172壬戌條)
여기서 무릉등처라는 것은 옛 우산국 지역인 무릉도 등 모든 섬을 말하는 것이고, ‘우산도라는 것은 옛 우산국을 하나의 섬으로 표현한 것이다.
태종 172월에는 우산 무릉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육지로 옮기고, 섬을 비우는 쇄출정책(울릉도-독도에 대한 海禁政策)을 확정짓게 된다.(태종실록33, 태종 172乙丑條) 그리고, 세종 710월에는 김인우가 우산무릉등지의 안무사(于山武陵等處安撫使)로 파견되어, 주민 20명을 데리고 나왔다.(세종실록30, 세종 710乙酉條) 우산무릉등처우산 지방의 무릉도 등 모든 섬(김병렬, 위 책(1997). 165)’으로 볼 수도 있고, ‘우산도, 무릉도 등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임영정은 이 우산무릉등처라는 직함은 동해상에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도가 존재하며, 이 우산도가 울릉도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공도화 정책 시행대상이 될 만큼의 규모로 중앙에서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 하였다.(朝鮮初期 鬱陵島獨島經營,현암 신국주박사화갑기념 한국학논총, 1985, 152)
 
아무튼 우산국을 하나의 정치체가 아닌 단순한 섬들로 파악해가는 과정 속에서, 울릉도의 부속도서 중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독도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파악되어 가게 된다. 그런데, 조선전기까지는 우산국의 옛 땅이었다는 인식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어, 가장 큰 섬인 主島 울릉도를 우산이라고 파악하기도 하고, 무릉 혹은 울릉이라고 파악하기도 해,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와 크기 및 명칭에 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로 분리되어 두 개의 섬으로 파악되고, 이 두 섬이 우리의 영토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과정을 조선전기에 편찬된 대표적인 관찬 지리지들을 대상으로 확인해보자. 1432(세종 14)에 편찬된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의 울릉도·독도에 관한 기록이다.(이 내용은 1454(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그대로 실리게 된다)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칭했으며, 울릉도라 하기도 했다.(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 (세종실록153, 地理志 江原道 三陟都護府 蔚珍縣條))”라는 이 기록에서 날씨가 맑으면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두 개의 섬은 울릉도와 독도밖에 없으니, 이것은 곧 독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울릉도와 독도의 지리적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섬들을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했고, 울릉도로 통칭하기도 했다는 것을 명료하게 말해 주고 있다.
 
1451(문종 원년)에 편찬된 고려사지리지에는 울릉도가 (울진)현 정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에는 우산국이라 칭했고, 무릉, 우릉이라고도 한다. ... 일설에는 우산 무릉은 원래 두개의 섬으로 거리가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有鬱陵島 在縣正東海中 新羅時稱于山國 一云武陵 一云羽陵 ... 一云于山武陵本二島 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高麗史58 地理3, 東界 蔚珍縣條))”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우산국을 울릉도로 통칭하고, 무릉, 우릉이라고도 불렀다는 것은 독도를 굳이 별도의 섬으로 명기할 필요가 없었던 고려시대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일설에는 우산 무릉이 원래 두 개의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는 내용은 고려후기이래의 독도에 대한 인식과 이 지리지가 만들어졌던 당시의 지리적 정보를 반영한 것이다.고려사지리지의 관련기록은 자연스럽고 정확하다고 하겠다.
 
이후 1530(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우산도 울릉도, 무릉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릉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두 섬은 (울진)현 정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 세 봉우리가 높이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날씨가 맑으면 봉우리 위 나무와 산 아래 모래톱이 역력히 보인다.

1052호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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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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