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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11월13일 00시00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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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화가 황수잔의 명화산책
‘돌아온 탕자’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집을 나간 탕자 아들이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미리 받은 유산을 모두 탕진하고 돌아와서 아버지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죄를 뉘우치며 무릎 꿇은 채로 울고 있다. 그를 사랑과 용서로 따스하게 포옹하는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온 탕자에서 표현하고 있다. 삭발한 아들의 얼굴은 반쯤 가려져있고 낡고 헤어진 옷과 신발, 굳은살이 박힌 발을 볼 때 그가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버지의 무표정한 모습과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은 실명 상태처럼 그려진 그림을 통해서 아들이 돌아오기까지 지난날의 고통과 슬픔의 감정을 억누르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를 포옹한 한 손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강함을 한 손은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뒤에 서있는 첫째 아들, 그의 굳은 표정은 현재의 상황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뻣뻣하게 서있다. 거의 어둡게 처리되어있는 그의 얼굴에서 시샘, 원망, 분노가 보인다. 뒤에 어둡게 묘사된 사람들은 아버지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시기와 죄악을 상징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하다. ‘돌아온 탕자작품의 주제는 신약 누가복음 1511-32절 말씀이다.
 
렘브란트는 돌아온 탕자에서 특유의 명암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사이의 용서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빛의 신비를 추구한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는 너무나 유명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다. 이 그림은 러시아 상트페테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려고 방문한다.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아 변화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성직자이며 예일 교수인 헨리나 우웬도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아 변화된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친밀감, 붉은 망토의 온화함, 소년의 겉옷에서 반사되는 황금색의 아늑함, 그리고 양쪽을 한꺼번에 휘감고 있는 신비로운 광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라고 그가 고백했다.
 
렘브란트 생애와 작품
렘브란트는 바로크시대 17세기 최대의 화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유럽회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사람이다. 렘브란트는 1606년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제분업자 아들로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613-1620년 까지 엄격한 칼빈 학교에서 라틴어, 성경, 고전, 수사학을 공부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미술에 재능이 있는 것을 알고 화가의 길로 가기를 원했다. 14세 어린 나이로 대학에 들어갔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1621년 레이덴 역사화가 Jacob van Swanenburch 에게서 역사화, 건축회화, 지옥을 사사했다.
 
지옥 그림에서 빛과 어둠을 그리면서 빛의 신비를 추구한 화가가 되었다. 암스테르담 Pieter Lastman 화가에게서 3년 동안 사사했다. 당시 렘브란트가 활동하고 있었던 암스테르담은 경제, 사회, 문화, 정치등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무역을 기반으로 최고의 부를 누리는 풍요로운 황금시기였다. 상류층에서 트렌드로 미술 작품들을 구입했다.
1625년 레이덴으로 돌아와서 개인 화실을 열었다. 3년 후 에칭 동판화를 시작했고 화가 수련생 학생들을 가르켰다. 유화, 에칭, 소묘, 종교화, 초상화, 풍경화, 풍속화, 정물화등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1629-1630년 영국왕실에서 주문한영국왕관(Englische Krone) 2점 작품을 완성했다. 렘브란트는 급속도로 유명하게 되었고 많은 화가들이 렘브란트 그림들을 모방해서 그렸기 때문에 수집가들에게 진품을 가리는데 혼란을 가져왔다. 1631년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으로 이사 갔다.
 
그가 유명하게 되자 미술 수집가들에게 고가로 작품들이 많이 판매되었다. 1634년 부유한 무역상인의 딸 사스키아와 결혼해서 풍족하게 살았다. 렘브란트는 Lukasgilde 회사를 경영하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판매했다. 그는 최고의 명성과 부를 누렸다. 처가 유산으로 거액의 40.000Gulden을 받고 멀리는 인도까지 이국풍의 진귀한 예술품들을 구입하는데 모두 소비했다. 렘브란트는 순식간에 성공한 유명한 화가로 수많은 작품들이 판매되었고 교사로, 회사 경영인으로 거액의 수입이 있는데도 생각 없이 다 써버리는 낭비벽이 무척 심했다.
 
1638년 첫째딸 코넬리아를 낳았는데 1640년 죽었다. 1939년 유명한 그리스도의 수난시리스(Passionszyklus)작품을 완성했다. 1641년 아들 티투스를 낳았다. 1년후 부인 사스키아가 죽었다. 딸과 부인을 잃은 그는 비탄에 젖어 한동안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다. 유명한 야간순찰(Nachtwache), 백 개의 금화(Hundertguldenblatt)를 그렸다. 아들을 위해 젊은 보모 헨드리케를 두었는데 연인으로 지내면서 딸 코넬리아를 낳았다. 이름이 첫째딸과 같은 코넬리아이다. 그는 계속된 낭비 때문에 파산했고 채권자들은 빚을 받기 위해 그를 법정에 세웠다. 경매를 통해 모든 재산을 잃었다.
 
자식들과 아내 사스키아가 죽었고 1663년 마지막 연인 헨드리케가 죽었다. 1666년 아들 티투스마저 젊은 나이에 죽었다. 말년의 렘브란트는 가난과 외로움으로 힘들게 지내다가 1669년 암스테르담에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는 한사람의 가족도 없이 외롭게 숨을 거두었다.
 
성서 속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은 돌아온 탕자그림은 그가 죽기 2년 전에 그린 그림으로 재산이 많았던 30대의 탕자, 렘브란트 자신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최고의 명성과 부를 누렸던 그는 재산을 모두 탕자처럼 탕진해버리고 가난과 외롭게 지내는 말년에 그가 회개하면서 그린 돌아온 탕자는 세계인들이 그림을 보면서 변화케 하는 영혼의 빛을 그린 감동의 명작이다. 당시 렘브란트 집은 렘브란트 박물관(Museum Het Rembrandthuis)으로 운영되고 있다.
 
1) 렘브란트, 자화상
2) 돌아온 탕자
3)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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