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세계의 정원 스위스 ➀ - 제 15차 봄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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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6월26일 00시00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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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정원 스위스 ➀ - 제 15차 봄나들이 -
진경자
길든 짧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게 될 때면 며칠 전부터 마음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한다. 하물며 오늘은 세계의 정원이라 불리는 알프스를 향하여 떠나는 우리 일행들 마음은 나이도 잊은 채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잠까지 설친 우리는 약속 장소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했다. 서둘러서 약속 장소인 중앙역에 도착하였으나 출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도 약속 장소엔 버스도 와 있지 않았고 이번 여행을 추진하고 인솔할 하영순 회장님도 보이지 않았다.
 
중앙역 주변에는 언제나 많은 인파가 몰려 혼잡스러운 그들 틈에 우리 일행들이 미리 와서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안부를 주고받는 그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아는 분들이 많았지만 처음 보는 얼굴들도 여럿 섞여 있었다. 출발 시간 몇 분 남겨 놓고서야 기다리던 버스 한 대가 우리 일행들 앞에 와서 서더니 이마가 훌렁 벗겨지고 어깨가 떡 벌어진 운전기사가 내렸다. 곧이어 승용차 한 대가 서더니 하 회장님과 하노버에서 Fernbus 를 타고 와 새벽 5시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 했다는 김순복씨와 김숙자씨 두 사람이 내리고 멀리 스웨덴에서 어제 비행기로 날아왔다는 김문정씨가 내렸다. 그들은 차에서 여러 개의 짐들을 손에 바리바리 들고 내렸다.

우리는 가방을 버스 짐칸에 실은 뒤 모두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인원을 점검해 보니 쾰른에서 오는 두 분과 프랑크푸르트에 사시는 한 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출발 시간이 넘었지만 좀 기다리기로 하였다. 한참 후에 쾰른에서 온 두 분이 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두 분은 이미 한 시간 전에 프랑크푸르트 역에 도착 했는데 엉뚱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금융의 도시이며 사방팔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은 약속이 어긋나면 찾느라고 서로 헤매게 된다. 그러나 20분이 지났는데도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한 분은 안 오고 말았다. 연락도 없는 한 사람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우리는 그냥 출발하기로 하였다.
 
운전기사는 독일 말을 할 줄 아는 코아치온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지난 번 여행 때에는 독일 말이 통하지 않는 기사여서 서로 의사소통에 힘이 들었었다.
 
만남의 기쁨으로 여전히 술렁거리는 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어느새 5번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달리는 차창 밖 들녘에는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밀밭과 한 뼘쯤 자란 옥수수가 가랑비를 맞으며 다소곳이 서 있었다. 지금 제 철을 만난 스파겔 밭은 농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채소 중에서 가격이 가장 비싼데도 이곳 유럽인들이 즐겨 먹는 식재료인 스파겔은 66일부터 624일까지가 가장 맛있고 독이 없어 요리로 즐길 수 있는 적기라고 한다. 스파겔은 두 종류가 있는데 흙속에 묻혀 있어 박속 같이 흰 것과 햇볕을 받아 초록색인 것이 있다. 흰 것이 초록색에 비해 값이 두 배 정도 비싼데 초록색 스파겔에 비해 흰 것이 부드럽고 맛도 좋지만 동이 트기 전에 캐야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한 시간쯤 달려서 도착한 곳은 Lorch 주유소였다. 그곳에는 Worms에 사시는 네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 분을 더 태우니 원래 계획했던 인원 29명이 되었다.
 
일찍 나오느라 아침식사를 대충 먹었는데 김말자씨가 새벽에 일어나서 만들어 보내준 말랑말랑한 떡과 김순복씨가 만들어 온 호두과자로 요기를 했는데도 점심때가 가까워 오자 모두 시장 끼가 들었다. 12시에 야외에서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달렸다. 드디어 해가 나자 우리는 때를 한참 비낀 후에야 늦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오늘 점심메뉴는 한식이었다. 햇볕이 쏟아지는 휴게소 야외 식탁에 준비해온 음식으로 한 상을 차렸다. 하회장님이 정성으로 담근 맛깔스런 얼갈이김치, 부추김치와 멸치볶음, 한국에서 공수해온 짭짤한 무장아찌까지 등장하고 김순복씨가 챙겨온 위스키 반주로 입맛을 돋우었다. Worms 고영자씨가 가지고 오신, 아직도 따뜻하여 부드럽고 매코롬한 닭 강정까지 곁들이니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우리 모두는 밥통이 바닥나도록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들밥이 맛있다고 밥을 퍼가지고 나가 울타리 밑에 앉아서 먹는다더니,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감칠맛 나고 칼칼한 한식으로 식사를 하면서 우리 모두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스테이크가 아무리 맛있다고 하고 프랑스 요리가 어떻다고 한들 오늘 우리가 먹은 이 꿀맛의 한식과는 깨임도 안 될 것이다.
 
허기를 달래고 나니 우리는 모두 기분이 좋아져서 버스 안은 달리는 노래방으로 변신하였다. 노래는 어느 한 사람이 선창하면 모두 따라 부르며 메들리로 이어졌다. 분위기 메이커인 쾰른의 김정자씨가 앞에 나오면 박수 소리가 더욱 요란해진다. 여러 단체장을 거치면서 봉사를 하고 있는 분이다. 노래 부르고 손뼉 치며 지루한 줄 모르고 웃고 떠드는 사이 버스는 취리히에 도착하였다.
 
취리히까지 오는 동안 몇 개의 터널을 지나며 스위스에 온 것을 실감하였다. 취리히는 스위스 최대의 도시이며 경제, 문화, 정치도시이다. 또한 세계 열째 안에 드는 유명한 대학이 있다. 강과 호수로 아름다운 도시 취리히는 500년 종교개혁이 시작된 도시이며 관광명소인 GrossmünsterFraumünster가 있다. 15세기에 재건축된 Fraumünster 에는 신약성서가 새겨져 있는 샤갈의 작품인 창문 5개가 유명하다.
 
스위스의 하늘은 솜털 같은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었고 만년설로 하얗게 덮여 하늘에 맞닿은 높은 산과 호수가 아름다웠다.
 
어느 도시나 출퇴근 시간에는 차가 많이 밀린다. 관광지인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루체른에 도착한 우리는 예약된 식당을 찾아 가는데 차가 밀려서 식사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버스기사는 무엇 때문인지 저기압이었다. 오후 7시 이후에는 운전을 못한다며 우리를 애 먹였다. 자기 회사 규정이라며 툴툴거렸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현지 가이드를 맡은 차현숙씨와 하회장님의 속을 태웠다. 7시가 넘어 식당에 들어가니 밥상위에 미역국을 곁들인 비빔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르르 몰려 들어간 우리는 옆에 누가 앉았는지도 모를 정도였고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이 입안으로 정신없이 밥을 퍼 넣었다. 15분도 채 안 걸린 초특급 스피드 식사였다.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 사람이기에 가능했지 이곳 유럽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기사의 비위를 건드릴까봐 친절히 배웅해주는 식당 주인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서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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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었지만 다행히 우리 일행은 아무 탈 없이 차 한 대가 겨우 비낄 수 있는 좁디좁은 산길을 꼬불꼬불 돌고 돌아 사방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하늘만 빤한 Melchtal 계곡에 자리한 Juhui라는 숙소에 당도하였다.
 
우리가 이틀간 쉬어갈 이 집은 오래된 목조건물로 푸른 산자락에 고즈넉이 서 있었다. 숙소 앞 작은 공터에는 보라색 라밴들이 은은한 향기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수녀원에서 관리하고 하고 있다는 이 숙소는 집 전체가 비어 있었다. 넓은 회의실과 부엌이 단체로 온 여행객들에게는 편리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일반 호텔과 달리 이불호청도 직접 우리가 끼워야 하고 나갈 때는 빼 놓아야 하며 화장실이나 사워장도 모두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어 불편한 점도 많았다. 다만 가격이 저렴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한 점도 있었다. 세계의 정원이라 불릴 정도로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스위스는 사시사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라 값도 값이지만 호텔 잡기도 수월치 않고 물가 또한 엄청 비쌌다. 화장실 사용료를 2 유로나 받아서 기절할 뻔하였다. 해발 1500 미터 높이에 있는 Melchtal 계곡은 기온이 낮아 한기가 느껴졌다. 망종이 지난 고국에서는 땀 흘리며 보리를 수확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밀, 보리가 겨우 한 뼘 남짓 자랐다. 기온이 10도 밖에 안 되는 이곳은 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릴 뿐,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이곳은 잔디는 푸르지만 올려다 보이는 높은 산꼭대기는 흰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하루 종일 버스 여행에 모두들 피곤하고 지쳐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각 방에서 나와 커다란 방에 둘러앉았다. 재치가 넘치는 하회장님의 우스꽝스러운 코주부 춤과 하노버 댁들이 가져온 환상적인 색상의 화끈한 브랜디, 임금행씨 자매가 가져온 아몬드와 과자를 안주 삼아 환담을 나누면서 여흥을 즐겼다. 알프스의 첫 날 밤은 감미롭게 깊어만 가고 있었다.
 
꿀맛 같은 단잠에서 깨어나니 맑고 청명한 공기 덕분인지 머리가 가볍고 기분도 상쾌했다. 밤이슬로 세수한 나무와 풀들은 매혹적인 초록을 자랑하고 산꼭대기 만년설은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식사 당번인 몇 분은 일찍부터 내려와 아침식사 준비를 다 해 놓았다. 심심산골 알프스 계곡에 진하고 구수한 커피향이 우리를 유혹하는 아침이었다. 부지런한 몇 분은 벌써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오늘 우리의 첫 번 방문지는 호숫가에 위치한 Melchtal Hergiswil 유리 공장이었다. 모든 것이 기계와 컴퓨터로 만들고 있는 지금, 옛날 방식 그대로 수공업을 고집하고 있는 유리공장이다. Glasi Hergiswil (1817 bis 2017) 공장은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공장이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니 열기가 후끈하게 느껴졌다. 빙 둘러 가면서 여러 개의 불가마에서는 벌건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펄펄 끓는 불가마 속에서 유리 액체를 찍어내어 모형을 만들고 있는 인부들의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들은 입으로 불고 손으로 돌려가며 여러 형태의 그릇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불가마의 온도가 자그마치 800도 내지 1000도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해맑은 물 컵, 와인 잔, 접시, 꽃병, 촛대, 인형 등 아름다운 생활 용품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 요즈음 접하기 쉽지 않은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값진 체험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Aare강이 도심을 관통하는 스위스의 수도이며 그림같이 아름다운 도시 Bern 이었다. Bern을 향해 가는 2 차선 도로에는 독일차가 지나가기도 했으며 제법 넓은 평지에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고 굴뚝이 올라간 공장들도 눈에 띄었다. Bern 이란 도시 이름은 곰을 뜻한다. 기념품 가게는 물론 어디를 가나 이 도시의 상징인 곰 인형이 많았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흐르고 있는 Aare 강의 물빛은 옥빛으로 빛나고 푸르다. 옛날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즐겨 사용하시던 옥빛 비녀도 저토록 고운 빛깔이었을까?Aare 강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에는 이름이 새겨진 수천 개의 벽돌이 박혀있었다. 벼랑에 만들어진 이 산책로 다리를 만드는데 십시일반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우연히 내려다 본 벽돌 하나에는 KIM이라 쓴 한국 이름도 새겨져 있었다.
 
강 건너 언덕에는 빨간 지붕들의 멋진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철창을 두른 다른 쪽 강변 뚝 에는 곰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모두 4 마리라는데 그들 중에는 그 육중한 몸집을 나무 밑에 누워 오수를 즐기는 놈도 있었고 한가로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놈도 있었다. 우리는 Aare강이 내려다보이는 국회의사당 뜰을 산책하고 나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 점심식사도 한식이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다 그렇듯이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식당을 찾아가는데 주차할 곳이 없어 운전기사가 애를 먹었다. 아리랑이라 적힌 간판이 정겹게 다가왔다. 들어간 식당 안에는 현지 사람들이 많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메뉴는 소불고기, 돼지불고기와 비빔밥이었는데 특히 살라트를 곁들인 불고기가 아주 맛이 좋았다. 바쁜 중에도 식당 사장님은 친절하고 빈틈없는 서비스로 우리를 더욱 기분 좋게 대해주셨다.
 
다음으로 우리를 태운 버스는 Rigi 산을 향하였다. 호수를 끼고 달리는 길이 그림같이 아름다웠고 호수에는 많은 보트들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었다. 그들은 미풍에 몸을 가볍게 흔들며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듯하여 애처롭게 보였다.
어디를 가나 푸른 초원에는 말이나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산 밑에는 그림엽서에서 보았던 목조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도시인들이 스트레스를 말한다면 이곳에는 오직 평화만이 존재할 것만 같았다. 몇 시간을 달려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호숫가에 위치한 Vitznau 라는 작은 마을 이었다. 이곳에서 리기산에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고 한다. 호수에 접한 이곳에서도 유람선이 떠나고 있었고 아름드리 고목 칠엽수가 서 있는 주변에는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향신료인 로즈마리, 페퍼민츠와 살바이가 길가에 심어져 있었다.
 
오후 515, 저녁 햇살을 받으며 우리는 예약되어 있는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줄에 매달려 가는 작은 곤들이 아니고 객실 두 칸을 연결한 미니 기차에 가까웠다. 우리 일행은 한 칸을 전세 내어 모두 차지하고 마음껏 떠들고 웃고 환호하며 30여분 후에 산 정상 해발 1748 미터에 위치한Rigikulm 이라는 종착역에서 내렸다.
 
심호흡을 하면서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호수며 아름다운 집들이 모두 내 발 아래 있어 가슴이 확 트이고 기분이 상쾌했다. 우연히 정상에서 마주친 수염이 귀여운 젊은 남자가 안녕하세요?” 하는 바람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는 몇 마디 밖에 한국말을 할 줄 몰랐지만 스위스 산꼭대기까지 와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날로 번영하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국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오늘 저녁 메뉴는 스위스 대표 음식인 FondueRaclette였다. 두 음식 모두 치즈가 주 재료인 메뉴였다. 식당은 정상에서 자갈이 깔린 좁은 산길로 한참을 내려간 곳에 있었다. 식당 가까이 가니 시골 농촌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들어가는 입구에 외양간이 보이기에 들여다봤더니 소가 여러 마리 들어 있었다. 이 외진 곳까지 손님이 많이 오는지 커다란 식탁 주위로 많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소를 키우며 함께 지내는 이들은 여기서 직접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들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깍두기처럼 썬 빵을 기다란 쇠꼬챙이에 꿰어 흰죽처럼 끓고 있는 치즈 냄비에 여덟팔자로 둥글려서 호호 불면서 먹는 Fondue 는 동양인에게는 보기 드문 별미였다. 와인까지 곁들이니 한 없이 먹게 되어 일어날 줄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사방이 어둠에 쌓여 있었고 열사흘 상연달이 높이 떠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좀 젊은 층은 종착역 대합실까지 걸어서 올라가고 나머지는 식당주인이 승용차로 실어다 주었다. 의자가 찢겨있는 고물자동차는 70년대에 나왔을 것 같은 아주 낡은 토요타였다. 밤이 되니 밖은 더욱 추웠다. 10시 반에 출발하는 막차를 기다려야 했다. 우리는 모두 대합실에 들어가 차가 올 때까지 김순복씨와 프랑스에서 오신 박순희의 건강강의를 들으며 지루한 줄을 몰랐다. 여러 단체장을 두루 거친 김순복씨는 한방 치료로 중풍에 걸린 의사 남편을 고친 능력과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늙으면 양로원에 가는 것이 당연시 되어 있는 유럽에서 97세이신 시어머니를 한집에서 모시고 있어 주변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늦은 시간이라서인지 케이블 기차 안에는 우리 일행들뿐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더 신이 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요를 합창하며 우리들은 모두 세상풍파를 안 겪은 사람들처럼 행복해하고 있었다.
 
알프스 깊은 계곡의 아침은 더욱 청명하고 싱그러웠다, 골짜기에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풍경이 마치 강원도 어느 산골짜기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햇빛이 흥건하게 쏟아져 내리는 길가에 나오니 아름다운 이 자연을 한 점이라도 더 눈 속에 담아가려는 듯 몇몇은 벌써 나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 오래된 공장으로 보이는 목조건물이 있기에 가까이 가보니 치즈 공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건물 한 모퉁이에는 작은 우리에 낳은 지 며칠 안돼 보이는 귀여운 돼지 새끼들이 서로 엉켜 놀고 있었다. 앞마당에는 트랙터 한 대가 서 있는데 사람은 안 보이고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운전대에 올라 앉아 졸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여유 있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9시가 넘어서 출발하였다. 식사당번들은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일행이 먹을 오늘 점심식사를 준비하느라고 분주했다. 하회장님이 지명한 식사담당은 비교적 젊은 측에 속하는,60대 초반의 (조상희씨, 박우인씨, 임완자씨) 세 분이었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김문정씨와 송윤자씨 임금행씨 외 여러분이 나서서 봉사를 자청하시니 분위기는 한층 화기애애하고 기쁨이 배가 되는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스웨덴에서 온 김문정씨는 스웨덴 교민 사회에서 유명인사이시다. 한국에서 스톡홀름에 오는 손님은 모두 김문정씨를 찾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번 독일에 오신 분이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비행경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도 행사 때마다 와서 다방면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 이번 여행에도 밥 당번을 맡아 수고해주었다. 말수 없고 온화한 자태에서 부잣집 맏며느리 같은 후덕함이 풍겨난다.
 
68,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 관광지인 Rheinfall을 보러 Schaffausen으로 차를 몰았다. 알프스의 산줄기를 벗어나 평지인 3차선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면서 하회장님은 앞앞이 원고지를 나눠준 후 <마지막 나들이>를 넣어 6행시를 짓도록 하였다.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을 써 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실력들이다.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세 분을 뽑아 시상하였는데 3등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오신 임완자씨, 2등에 베를린에서 오신 김광숙씨, 영예의 1등에는 Worms에 사시는 김영래씨가 차지하였다. 일등을 수상하신 김영래씨는 70을 넘긴 나이에도 앞에 나와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끝까지 막히지 않고 암송을 하시는 것을 보니 나이를 먹어도 문학소녀는 늙지 아니함을 보여주었다. 2등을 수상하신 김광숙씨는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우리와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베를린에서 입양아를 위하여 많은 일을 하셨고 여러 단체장을 하면서 교민사회에 봉사를 많이 하신 분이다.
 
커다란 가방에 크고 작은 다양한 상품을 가득 챙겨 오신 하회장님은 6행시 수상자는 물론 수고하신 분들도 일일 챙겨주며 고마움을 전했고 지금까지 봄나들이 15차 중 9 번을 다녀오신 마인츠의 하민자씨와 본에서 오신 이양순씨는 개근상으로 멋진 롱샴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마지막 여행지인 Schaffausen Rheinfall 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서 폭포까지 내려갈 수가 없어 위에서만 내려다 봐야 했다.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하이델베르크 한인회장을 맡고 있는 정귀남씨가 오늘 일진이 안 좋았던가 보다. 강가에서 남의 부탁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던 중 핸드폰이 흐르는 강물 속으로 떨어져 버렸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당황하여 애를 태우며 건지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어느 남자가 물속에 들어가서 건져 주었다고 한다. 너무 고마워서 사례를 하고 왔다는 정귀남씨는 많이 피곤해보였다. 독일 속담에 Ende gut Alles gut 이라는 말이 있다. 흐르는 강물 속에서 핸드폰을 건져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 모두는 다행이라며 기분 좋게 버스에 올라타고 출발 할 수 있었다.
 
봄나들이는 여름, 가을, 겨울, 언제 가던지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봄나들이다. 하영순 회장님은 이번 15회 여행이 봄나들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몹시 아쉬워하였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버스 안은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다가 모두들 입을 모아 그럴 수는 없다며 봄나들이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억지를 피웠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20015월에 오스트리아로 시작된 봄나들이는 2017년 올해까지 유럽 여러 지방과 한국은 물론 미국, 홍콩 마카오며 터키 이스탄불까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15회의 기록을 세웠다. 지금까지 여행을 함께한 연 인원이 348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 분들 중에 9번을 간 분이 두 분, 5번 다녀온 분이 두 분, 4번을 다녀온 분이 8, 3번 다녀오신 분이 한 분, 두 번 다녀오신 분이 6분이나 된다. 그 분들 중 3 분은 유명을 달리하셨고 그 때마다 화환을 장만하여 가시는 길을 애도하였으며 앞으로도 봄나들이를 함께 가셨던 분이 세상을 뜨시면 꼭 화환을 해 드리겠다고 하신다. 필자도 이번까지 4번이나 참여하였는데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함께 여행하는 이들을 한 분 한 분 지성으로 챙기며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그 긴 세월 동안 누가 시킨다고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봄나들이 갈 때마다 여러 번 참여한 분들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에 굳이 설명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저는 한 분 한분 떠올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15차 봄나들이는 23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시간으로 치면 54시간을함께 한 셈이었지요. 우리 일행 스물아홉 분이 같은 공간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많이 웃고 박수치고 노래하며 서로 덕담을 나누며 정이 오가는 추억에 남을 시간들이었습니다. 마지막이기에 더욱 아쉽고 소중한 여행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염색약으로 백발을 감추고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안경 탓을 할망정 우리들 마음만은 알프스의 저 푸른 언덕처럼 여전히 싱그럽고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하고 조용합니다. 어제일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가사도 또렷한 어릴 적에 불렀던 동요를 부르며 우리는 세월의 강을 훌쩍 뛰어 넘어 행복해 하지 않았던 가요! 우리 모두 건강 잘 돌보며 지내다 보면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살아요. 시냇가의 작은 조약돌처럼 동글동글 모서리 없이 살면서 누군가가 그리워 질 때면 추억의 방에서 스위스의 이야기들을 한 편씩 꺼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끝으로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하영순 회장님께 지금까지 보여주신 사랑과 헌신에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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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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