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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6월05일 00시00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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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ia) 8일 여행 – (5)
황만섭 (재독한인총연합회 자문위원)

 
(2017. 1. 22 ~ 1.29)
오늘은 여행 4일째로 그라나다(Granada)를 구경하는 날이다. 그라나다는 호텔에서 130km 떨어진 곳으로, 30km를 달리면 피카소가 태어난 말라가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100km 정도를 동북쪽으로 바르셀로나가 있는 방향으로 더 달리면 지중해에서 가까운 내륙에 있는 인구 25만의 도시다. 그라나다는 그라나다 주의 주도(州都)이며, 1492년 이사벨 여왕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지막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곳이기도 하다. 그라나다는 석류를 뜻한다. 그래서 그라나다에는 석류나무가 많고, 석류열매, 석류꽃 모양을 넣은 문양이 이 도시의 상징으로 시내 구석구석에 널려있다. 도로표지석도 석류문양이고, 가로등의 기둥에도 석류모양이 그려져 있으며, 심지어 도로변의 쓰레기통에까지 석류가 그려졌거나 새겨져 있었다. 어떤 집은 지붕 위에도 석류 모양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 그 많은 석류를 보면서 시내를 돌다 보면 입안에 신맛이 돌 정도다.

아랍인들이 구축한 알람부라성에서 멀리 보이는 눈으로 덮인 산이 네바다 산맥이다. 가이드의 설명은 “2~ 3월경에는 해발 3천미터~ 35백미터가 되는 네바다 산맥에서 스키를 타고, 30분만 차로 이동하여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25도 이상 나가는 따뜻한 지중해 바닷물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세계 어딜 가도 스키와 해수욕을 하루 동안에 즐길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라고 발등 깨어지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높은 곳에 위치한 함부라 궁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아랍인들의 솜씨를 한눈에 느낄 수가 있었다. 알람부라성은 각이 져 있었고, 냇가에서 가져온 돌로 길바닥에 오밀조밀 박은 정성 말고는 내 안목이 짧아서인지 예술적이거나 아름다움을 음미할 만한 가치를 찾지 못했다. 이미 둘 째날 백색마을에서 그런 돌들과 무늬들을 봤고, 또 시장님들이 부정으로 줄줄이 감옥에 갔다는 그 마을 골목길에서 눈이 아프도록 봤으며, 말라가 관광 때도 계속해서 보았기 때문인지 무덤덤했다.


미안하지만, 처음에 볼 때 신기하지, 두세 번 보면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수공업일 뿐이구나라는 느낌뿐이었다. 그게 아랍문화의 특징이고 약점인지도 모른다. 돌에는 표정이 없으니,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이슬람사원에 들어가면 나뭇잎, 꽃잎 또는 똑같은 무늬들로 반복해서 그려진 그림이나 글자들, 조형물에는 슬픔도 웃음도, 고뇌도, 은근함도, 소망도, 희망도 들어 있지 않았고, 그래서 감동으로 가슴이 설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처음 볼 때 놀라고 그 뒤론 놀라는 일이 거의 없다. 이슬람문화는 노골적인 형태의 사람 모습을 그리는 것이 금지 되어 있다. 비너스나 모나리자 같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더군다나 누드를 그린다는 것은 유서를 미리 써놓고 나서 생각해 볼 일이다.
 
높은 곳에 자리잡은 함부라 궁전 뜰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보기가 좋았다. “40km 떨어진 네바다 산에서 끌어오는 물이라고 했다. 알람브라성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윗부분에는 함부라 왕궁이 있고, 다른 아래쪽 한 줄기 길게 뻗은 높은 언덕으로는 알람브라 성의 요새가 튼튼하게 지어져 있다. 왕궁 뜰에 서면 건너편에 요새가 내려다 보인다.
 
왕궁을 둘러보고 다시 걸어 내려와 요새쪽으로 들어가면, 알라신전들을 산따 아나교회산 베드로와 산 빠블로 교회등 새로운 이름을 붙여 사용하고 있는 건물들이 있다. 건물의 겉모습은 이슬람 사원인데, 그 안에서는 미사를 보는 교회로 용도가 바뀐 것이다. 그밖에도 성 안에는 고고학- 민족학 박물관, 엘 바뉴엘로 욕장, 병사들이 살았던 옛 집터 등이 옛이야기를 말해준다. 미완성이지만 웅장한 칼(카를) 5세 궁도 알람브라성 안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5세는 16세기경에 왕가, 공국, 교회 지배층의 일반화된 새로운 예술양식이었던 고전주의에 알맞은 장식으로 일신시켜 그 당시 건축 중이던 그라나다 건축에 결정적인 제국의 위용을 구축한 사람이다. 스페인도 15세기 초까지는 많은 나라들이 으르렁거리며 싸웠으나, 15세기 말 경에 이르러서 어느 정도 정리(합병)가 되어, 이베리아 반도에는 포투갈, 카스티야, 아라곤 이렇게 세 개의 왕국이 남게 되었고, 카스티야의 이사벨 1(1451-1504)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디난도 2(1452-1516)가 결혼하면서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새로 생겨난다. 이 두 사람은 1492년 그라나다에서 마지막 무어족을 축출함으로써 800년 동안의 아랍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했고, 같은 해(1492)에 이태리 지중해변의 제노바 출신 콜럼버스를 지원해 인도 탐방을 보낸다. 콜럼버스는 실수로 아메리카를 발견했고, 새로 찾은 신대륙에서 엄청난 부를 스페인에 안겨주어 스페인은 벼락부자가 되었으며, 왕 부처는 멕시코와 남아메리카에서 정복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에 이슬람교도가 총과 칼로 무슬림화했던 것처럼 아주 잔인하게 인디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카를, Karl)5세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여기서 스페인 역사를 대강 짚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1세와 부르군트(베네룩스 3국과 리옹, 디종까지 걸친 땅을 가졌던 나라)의 마리아 공주가 결혼하면서 부르군트라는 나라를 혼수감으로 오스트리아에 바쳤고, 그 뒤 이 부부(막시밀리안, 마리아) 사이에서 낳은 천하의 미남 펠리페 왕자가 스페인 공주 후안나와 결혼하면서 스페인을 통째로 오스트리아에 혼수감으로 가져왔다. 후안나는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 여왕과 아라곤 페르디난도 2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 딸이 천하의 미남 펠리페가 바람을 피웠다며, 자기 남편을 독살했고, 그뒤 바람을 피운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후안나는 미쳐버렸고, 남편의 시체를 끌고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닌다. 현재 그라나다 왕실교회(Capilla Real)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필레페와 후안나의 영묘가 있다. 이 필레페와 후안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칼5세다. 5세는 독일 보름스의 종교재판에서 마틴 루터를 심판했던 사람이다. 5세의 아들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면서 그라나다는 쇠퇴하고, 세비야와 마드리드가 번창한다. 위와 같이 혼수감으로 가져온 나라들을 합쳐서 오스트리아는 대국이 되었지만, 독살 당한 필레페의 후손들은 스페인에 머물면서 통치를 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 왕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의 왕이 되어버렸고, 그 결과는 오스트리아 왕들이 스페인에 와서 처가살이를 한 꼴이 되었다. 어쨌던 한 때 오스트리아가 유럽의 사분의일을 차지했던 종이호랑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함부라 궁전과 알브라함 성에서 여러 한국인 단체관광객들과 가족여행 하는 사람들, 배낭여행 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개인 여행하는 한국 학생들이 성 안에서 고양이들이 여행객들로부터 먹이를 얻어 먹는 모습을 찍느라 열심이기에 내가 찍어 줄까요?”라고 말을 걸었다. 나의 한국 말에 젊은이들이 놀라며 반가워한다. 전체의 구도를 잡아 고양이와 학생 그리고 뒷배경으로 역사적인 건물과 주위에 서성거리는 유럽인들까지 넣어 스페인 여행임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구도를 잡아 멋진 사진을 두세 장 찍어주었더니, 내 솜씨에 젊은이들이 놀라며 감탄했다(여기서는 자화자찬이 필요한 대목임). 가족여행팀들도 서너 팀을 만났고 그럴 때마다 난 먼저 안녕하세요말을 걸었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런 일들은 전부 자선사업이거나 선행에 속한다. ‘모든 선행은 자비라는 말이 있다. 후에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자선사업과 선행을 반복한다.‘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를 묵상하면서 ‘11을 습관처럼 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알브라함 성벽은 계곡 건너편에까지 뻗어 있었고, 가이드가 그 성벽 아래 멀리 보이는 마을을 가르치며 다음 코스는 그 알바이신마을를 구경한다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하겠다고 앞장을 섰다. 알바이신 마을은 대문사이로 집안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 옛날 아랍인들의 시절에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었다. 골목엔 여기저기 개똥들이 눈에 띄였고, 길바닥은 돌로 여러 무늬들를 정성껏 만들어져 있었다. 가이드 설명은여기선 개똥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이 500유로이지만, 주인 없는 떠돌이 개들이 싼 똥은 벌금을 물릴 곳이 없다며 한탄한다.
일행 중 독일 노인 한 사람이 길을 잃어 40분 가까이 늦게 오는 바람에, 다음 순서인 시내관광 출발시간이 늦어졌다. 시내 중심가로 이동하는 도로변의 가로수는 오렌지 나무와 만다리네 나무가 많았고, 가지마다 휘어지도록 열린 과일들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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