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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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4월17일 00시00분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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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31)
유분자
 
길이 길을 열고
 
2007년 나는 32년 동안 운영해 온 프렌차이즈 외식업체 비지비(Busy Bee)를 양도했다. 한창 사업이 번창할 때는 한인 종업원만 마흔일곱 명이나 되고,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14호까지 나올 정도로 성공적인 사업이었다. 오랜 세월 공들여 키운 사업체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 부문 일을 하는 아들은 외식 사업에 뜻이 없다고 했다. 딸 부부는 따로 사업을 하고 있으니 비지비에 물론 관심이 없었다. 딸은 엄마도 이제 나이가 있으시니 사업체를 정리하고 편안하게 쉬시라.”고만 종용했다.
 
은퇴, 갑자기 찾아든 한갓진 날들
딸이 앞장서서 밀어붙이는 대로 따르며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업체를 정리하고 은퇴했다. 그리고 다음 해 금융 위기가 닥쳐 미국은 장기적 불경기에 시달렸다. 그때 딸의 말을 듣고 사업을 정리한 일은 행운이었다.
 
사업에서 손을 떼고 나니 평생 처음 할 일이 없는, 아무 일도 하지않아도 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돌아보면 평생 일, , 일의 연속이었다. 1955년 대전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 병원을 거쳐 미8KSC 병원에서 근무했고, 이어 대한적십자사에서 근무하다 1968년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텍사스 주의 댈러스를 거쳐 남가주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비지비를 창업해 한동안은 밤낮을 쪼개며 일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들이 쓰나미처럼 밀려들고 일에 파묻혀 일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 일흔이 넘어 있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삶을 돌아보니 인제는 쉴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한가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뭔가 할 일을 찾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 꼭 필요한데 아무도 하지 않는 어떤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노년을 바칠 의미 있는 일
사업체를 정리하고 뭔가 노년을 바칠 만한 일을 구상하던 중 점점 확신을 가지고 다가오는 일이 죽음 준비운동이었다. 나이 일흔이 되면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남은 삶을 잘 살까, 어떻게 하면 후회 없이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수십 년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동년배 한인 이민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막연하게 생각만 할 뿐, 죽음에 대해서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는 인식은 한인 사회에서 거의 없었다.
 
죽음에 대비한 사전 지시 없이 환자가 덜컥 사망하면서 남은 가족들이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모습, 뇌사 상태의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 장치에 매달려 식물인간으로 생의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는 모습, 그 와중에 자녀들은 연명 장치를 떼자니 죄책감이 들고 그대로 두자니 환자의 상태가 너무 가슴 아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나는 많이 보아 왔다. 평생 자녀들의 존경을 받아 온 부모가 생의 마지막을 병상에서 의식도 없이, 아들딸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수년씩 보내면서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마침내는 짐스러운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를 볼 때 정말이지 가슴이 아팠다. 소중한 삶을 그렇게 마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지만 사전에 의료 지시를 해 두지 않으면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품위있는 죽음계몽에 나서다
한생을 아름답게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사실 오래 전부터 해 왔다. 1990년대 중반, 환갑을 넘고 나니 나도 이제 늙는구나싶어지며 노후의 삶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있는 삶의 마무리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젊어서보다 나이 들어서는 더욱 품위 있게 살고 품위 있게 생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웰 에이징과 웰 다잉이다.
나는 교우들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마무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죽기 전에 유언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계몽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19983월이다. 이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유언서 작성을 권유했는데 별 반응이 없던 한인 사회가 2006년 무렵부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6월 내가 참석하는 세리토스 연합감리교회의 60대 이상 여성 교우 모임인 한나 여선교회 주최로 아름다운 삶과 마무리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러고 나니 윌셔 연합감리교회의 원로 목사회가 초청해 다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여러 교회들과 오렌지카운티 건강정보 센터 등 단체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유언서 쓰기 운동을 펼쳤다.
 
생각은 점점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갔다. 한인 사회를 대상으로 사전 유언서 작성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확신은 소망소사이어티 창립으로 이어졌다. 20078월 소망소사이어티를 설립하고 920일 캘리포니아 당국에 비영리 기구로 등록했다. 그러고는 20082월 창립총회를 열면서 소망소사이어티는 공식적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프리카서 펼친 소망의 사역들
시작은 소망유언서쓰기캠페인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마무리운동은 장기/시신 기증 캠페인, 죽음 준비 세미나, 치매 예방 및 환우 가족 모임, 사별 가족 모임, 호스피스 교육, 장례 절차 간소화 운동 등으로 계속 가지를 뻗어 나갔다.
 
이 사업들과 자연스럽게 병행한 일이 기부 문화 확산 운동이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은퇴를 하고 삶을 마무리할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면 더더욱 그러하다. 가진 것을 나누고 싶은 선한 욕망을 자연스럽게 분출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주는 것이 기부 문화 확산 운동이다.
그런 나눔의 정신이 소망소사이어티의 본래 사업인 죽음 준비 운동을 넘어 생명 살리기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아프리카 차드 벽촌 주민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는 소망우물 사업, 어린이들에게 배움을 통해 꿈을 갖게 해주는 소망유치원 건립 사업이다. 201021차 원정에서 첫 우물을 판 후 근 3년 만인 2012112차 원정대를 이끌고 다시 가 보니 동네가 변해 있었다. 주민들의 삶은 여전히 곤궁했지만 동네엔 전에 없던 활기가 넘쳤다. 물이 생명이었다.
 
그리고 1년 후인 201311,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 공항에서 나는 감회에 젖었다. 깨끗한 물을 마신 후 눈빛이 바뀌고 표정이 바뀐 아이들과 주민들을 다시 볼 생각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소망소사이어티의 우물파기 사역으로 그들의 삶이 바뀐 것 못지않게 소망의 사역으로 나의 삶도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생각도 못 하던 일들을, 생각도 못 하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아무 것도 없던 곳에 길을 내니 길이 길을 열며 새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도 모르던 이 길들을 내가 어떻게 갈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 이끄신 것, 지금도 이끄시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시편(375~6)의 말씀에서 나는 오늘도 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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