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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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4월17일 00시00분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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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류 현옥
나의 직장 요한재단은 스판다우의 포레스에 자리하고 있었다.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에서 두 번 째로 큰 사회단체로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다. 경찰서와 세무서를 제외한 모든 각종 기관과 학교와 호텔은 물론 상점, 빵집, 세탁소 그리고 정원사 등이 있다. 재단 내에 있는 책방은 기독교 전문서적을 살 수 있는 전문서점으로 베를린 시내에서 책을 사기위해 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였다.
 
요한재단은 1858년 비헨(Wichern) 목사님이 비스마르크로부터 당시 100만 독일 마르크를 후원받아서 설립했다. 병자, 장애자, 노인, 고아들을 위한 사회기관이 그 목적이었다. 중심에 선 교회를 둘러싸고 천년을 약속하는 붉은 벽돌건물이 작은 시가지를 구성하고 있다. 잡목 숲 뒷편 경계로 한 후면으로 내가 근무하던 기독교 병원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몇 채의 노인정과 호스피스 건물이 있다.
 
나는 15년을 재단 안의 가족 아파트에 살았다. 시간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스판다우 포레스트 자연농장으로 달렸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동독으로 연결되는 작은 돌다리가 있다는 것을 독일 통일 전까지 몰랐다. 그 다리는 분단된 동서 베를린시를 연결하고 있었기에 금지구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갈라진 두 독일의 국경선을 잠정 차단한 것과 다름없었다.
 
다리 앞에서 50m 전에 이미 길이 왼쪽으로 꺾이면서 버려진 늪 사이의 들길로 연결되었고, 길은 다리가 시작되기 전에 차단되어 있었다. 몇 십 년을 자라서 뒤덮은 온갖 관목들이 다리를 숨기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접어든 들길을 따라 흐르는 좁은 수로마저도 덤불에 덮여 보이지 않았기에 눈에 띄지 않았다. 수로 건너 쪽은 정치체제가 다른 동독 땅이었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돌다리의 반은 서독에 속하고 있었지만 원래 다리의 역할은 건너가도록 되어 있는 데 차단된 것이다.
 
수로를 봐서 돌다리의 존재를 짐작할 수도 있었으련만 이 근처는 급히 도망가듯이 빠르게 지나가야 할 경계였기에 사고능력을 차단한 지도 모른다. 수면을 볼 수 없을 만큼 온갖 잡목이 수로를 따라 우거져있고, 건너 편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높게 지은 동독 경비 초소가 잡목사이에 서 있었다. 초소 안에는 망원경으로 이쪽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는 동독 군인을 볼 수 있었다. 초소 앞으로 넓게 나있는 모래길 위를 훈련된 동독 군견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서 도주자의 바지자락을 물어뜯기라도 할 듯이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고도 철조망이 이중으로 쳐 있었다. 지형상 시멘트 장벽을 세우기에 어려웠던 곳이다.
 
스판다우의 포레스터는 지구 역사상 빙하기의 유적으로 남은 늪지대로 200여 년 전 물을 빼고 말려서 자연 공원을 만들고 요한재단을 지었다고 한다. 거미줄같이 이리저리 연결되는 숲속 수로만은 정치적으로 선을 그을 때도 손을 대지 않았다. 얼른 보기에는 좀 넓은 고랑 같은 것이지만 상당히 깊다고 들었다. 둑을 쌓아 산책하는 사람들이나 발을 헛디뎌 빠지지 않도록 한 곳도 있었다. 개간을 하지 않고 방치하여 자연적으로 이뤄진 숲속은 원시림을 연상케 한다. 봄이면 어디에서 겨울을 지났는지 모르는 천둥오리들과 백조가족이 찾아와 물위를 떠다니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통일된 독일은 금지구역 동베를린을 따라 세워진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 위를 아스팔트를 깔아 역사적인 장벽길로 명명하였다. 이 길은 서베를린을 둘러싼 것이기에 베를린 지도위에 새겨진 역사적인 길이 되었다. 하나가 된 독일은 장벽을 없애고 아스팔트로 숲길을 바꾸면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다 죽은 젊은 용사들의 유증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웠다.
 
20여년을 이곳에서 살면서 스판다우의 포레스트 숲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 집 뒷뜰처럼 드나들면서도 자유를 찾아 철조망을 넘어오다 죽은 사람의 피가 스며든 자리인 줄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국경선 앞에서 왼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지점이 유독 가팔라서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초소 안에서 노려보는 동독 군인의 위협을 느꼈다. 그때마다 다리 저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곤 했다. 실제적으로 그 다리의 존재가 부각된 것은 통일이 되던 해 스판다우 구역에서 다리를 보수하고 개통식을 한다는 플래카드를 보고서야 알았다. 각 단체마다 낙성식 잔치에 참석하고 돕는 준비를 하는 바람에 이루어진 일이다.
 
60여 년 동안 그 다리 위를 건너간 사람도 없고 차량도 지나가지 않은 돌다리는 통일을 기다리며 다리로써의 존재가치를 고수해온 것이다. 구청은 돌다리를 없애고 철제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역사를 지켜온 다리의 역할을 높이 기렸다. 무용지물의 다리를 파괴하지 않고 보호하며 참고 살아온 동독인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했다.
 
드디어 다리 낙성식 날이 되었다. 온 천지가 초록으로 새 옷을 갈아입은 5월의 숲속을 부드러운 봄바람이 스쳐가고 있었다. 그날은 온 베를린 시민이 봄나들이를 스판다우로 나온 듯 숲길을 메웠다.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200m 전 지점부터 온갖 시민 단체에서 가지고 나온 예술품들을 길가에 진열했다. 스판다우의 지역 관현악단이 다리 이쪽에 자리를 잡고 서서 하늘을 향해 연주를 시작했다. 나는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그날 처음으로 10m 도 채 안되는 짧은 새 다리를 건너 동베를린 땅에 발을 디뎠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를 보존하며 통일을 기다린 쉔발드 시민들 역시 이날 온갖 것들을 다 들고 나와 자연 경계선이 이루고 있었던 수로 위의 동네길을 장식했다. 뜻 깊은 다리낙성식을 위해 초대된 브란덴부르크의 유명 관현악단이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연주를 했다. 지휘자끼리 약속이 되어 한쪽이 쉬는 시간이 되면 다른 쪽에서 바톤을 이어받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길가의 카페에 앉았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된 몇 개의 기사 역시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 이 작은 돌다리를 사이로 지척에 살고 있었던 죽마고우가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마음 놓고 끌어 앉은 후 술잔을 부딪치며 지난날들에 대한 회한을 풀 수 있었다고 했다.
 
스판다우의 지역 신문 편집장을 한 분은 다시 만난 옛 친구에게 아끼던 자동차를 선물했다.
새 차는 아니지만 내가 타던 것이니 더 큰 의미가 있지! 자네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제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점검을 받았어. 앞으로 2년을 보장한다는 자동차 관리청의 스탬프를 받았거든!”
 
언제든지 와서 필요한 거 있는 지 찾아봐. 지하실에 보관한 물건들이 많아.”
 
기사는 이런 이야기들을 정감 있게 기록하였다. 친척, 친구, 지인은 물론 이날 옷깃을 스치다 알게 된 사람들까지 대화를 나누며 땅거미가 드리우도록 다리 위를 몇 번이나 걸었다.
 
무명의 이 다리는 자연적인 경계선 역할을 한 수로를 가로질러 두 세계를 연결하고 원래의 다리의 기능을 다시 시작했다. 60여년을 두절된 두 세계를 연결하고 있었지만, 그 존재조차도 잊어진 작은 다리가 재생하여 인간들의 관계를 맺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게르만 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반세기 동안 역할을 못하는 다리를 그곳에 은둔시켜 그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키게 한 셈이다. 100년이 훨씬 더 지나서 보잘것없는 돌다리는 결코 무용지물이 아니었다.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았지만 침묵으로 역사를 지킨 더 큰 역할을 한 것이다.
 
2012년 이곳에 세 그루의 나무들이 심어졌다. 동독을 상징하는 소나무(Kiefer), 서독을 상징하는 너도밤나무(Buche), 통일을 상징하는 독일참나무(Eiche)들이다. 나무는 환경보호를 하는 중요한 것이라는 독일 여수상 메르켈의 아이디어로 이루어졌지만 이 세 나무는 다리를 지키고 서서 역사의 의무를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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