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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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4월10일 00시00분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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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30)
유분자
 
나는 아직도 소망한다 소망동산의 꿈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7)
 
저녁 식사를 마치고 향 좋은 커피를 내렸다. 하루 종일 바삐 다니다 보니 커피 한 잔 편안하게 마실 시간이 없다. 하루를 마감하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예쁜 잔에 갓 내린 커피를 담아 들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커피의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은 소중하고도 행복한 나의 일상이다. 일상의 행복이다.
 
저녁에 커피를 마신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놀란다. “그 시간에 커피를 마시고도 수면에 지장이 없으세요?” 하며 의아해 한다. 물론 사람들의 질문에는 한 가지가 빠졌다. ‘그 연세에?’라고 해야 온전한 질문이 될 것이다. 50대만 되어도 오후에 커피 한 잔 마시면 잠을 못 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나이 여든인 지금도 커피를 하루에 너덧 잔씩 마시지만 잠자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11시나 12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이면 거뜬하게 일어난다. “참 건강하시네요. 그렇게 건강이 좋으시니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으시지요.”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그 반대라는 생각이다. ‘그 많은 일을 다 하다 보니 건강이 좋아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1968년 미국에 와서 근 50, 돌아보면 잠시도 쉰 적이 없다. 언제나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며 살아왔다. 아플 새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이렇게 나를 쉴 틈 없이 달리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꿈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소망이 있으니 살아가는 목적이 뚜렷하고, 달려가서 도달할 목표가 분명하니 매순간 활기차게 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처음 와서는 이 땅에 뿌리 내리는 것이 소망이었다. 먼저 우리 가족의 정착이었다. 간호사로서 미국 의료 시스템 속에 정착해 경력을 쌓고,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 남매 잘 기르며 우리 네 식구 미국이라는 나라에 굳건히 뿌리 내리기를 바랐다. 다음은 넓은 의미의 가족들의 뿌리 내리기였다.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이민 초청하고 싶었다. 몹시도 가난하던 한국에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조국을 위한 길이자 본인을 위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뿌리 내려 번창하기
70년대 중반 시민권을 취득하자마자 본격적으로 이민 초청 작업에 들어가 1973년 어머니를 초청하면서부터 나를 기점으로 시작된 유씨 일가의 미국 뿌리 내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규모가 커져 갔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유씨 일가의 가족 친척들은 더 이상 누가 누군지도 모르게 확산되었다.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후손들이 뿌리 의식을 갖게 하고 일가로서의 결속감도 다지게 하는 행사를 기획한 때는 1999년이었다. 딸 캐롤이 미국 이민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유씨 일가 뿌리 지도를 만들며 전국에 흩어진 일가친척들에게 연락해 모임을 주도했다.
그해 크리스마스, 부에나팍 더블트리 호텔에는 87명이 모였다. 필라델피아, 시애틀, 샌호세,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모여들었다. 처음 서먹하던 가족들은 하루 이틀 지나자 매일 보고 지낸 사람들처럼 친해졌다. 특히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이 가까워지는 데는 채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핏줄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1년 유씨 일가는 다시 한 번 가족모임 행사를 가졌다. 역시 크리스마스 때 이번에는 LA의 옥스포드 팰리스 호텔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이번에는 75명이 모였다. 1차 때보다 더욱 친밀해진 분위기 속에서 한국, 중국, 파라과이로 이주해 살던 가족들도 합류했다. 2년 사이에 뿌리지도에는 10여 명의 식구가 새로 추가되었다. 이후로 얼마나 많은 가족이 더 늘었는지, 유씨 일가 가족모임을 그 후로 계속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50년 전 소망이 뿌리 내려 번창하기였다면 지금의 나의 소망은 잘 내려놓고 떠나기이다. 뿌리 내리고 가지 뻗고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며 잘 살아온 삶, 이제는 모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세상 떠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떠남을 생각하면서도 내게는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 소망이 있다. 소망의 동산을 만드는 일이다.
 
나이 들어서 같이 노년을 보내고 같이 생을 마감하는 공동체 생활에 대한 꿈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처음에는 양로원을 직접 운영하는 구상까지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들면서 그 부분은 접었다. 지금 생각은 LA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시골에 아담한 부지를 마련해 뜻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여생을 보내고 죽으면 재가 되어 한곳에 묻힘으로써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소망동산에 모여 아름다운 마무리를
나이 들면서 이런 생각이 구체화한 것은 노년의 삶이 어떤지를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평생 열심히 일해서 여생을 풍족하게 살 만큼 은퇴 준비를 해놓아도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외로움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이나 넉넉한 사람이나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문제는 고독이다. 특히 배우자와 사별하고 나면, 이따금 자녀들이 방문하고 친지들과 여행을 한다 해도 그때뿐 결국은 혼자 남는다.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나 길다.
 
소망동산이 있다면 그곳에 함께 모여 혈연과는 무관한 또 다른 의미의 가족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텃밭에서 유기농 농사도 짓고, 각자의 재능에 따라 음악 하던 사람은 음악을, 서예 하던 사람은 서예를, 그림 그리던 사람은 그림을 가르치며 취미 생활을 하고 함께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산책하고 대화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는 그림을 그려 본다. 노년은 고독이 아니라 충만감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웰 에이징이자 소망소사이어티의 아름다운 마무리 운동의 일환이다.
 
소망에 동참해 온 회원들, 봉사자들, 기부자들다시 말하면 소망을 통해 인연을 맺은 소망의 가족들이 노년을 함께 보내도록 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동산구상이다. 살아서 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함께 할 수 있는 동산을 만들고 싶은 꿈이다. 대부분 소망유언서를 쓰고 화장을 하기로 결정하신 분들이니 공간이 특별히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화장 후 재를 한곳에 묻거나 뿌리고, 1년에 한 번씩 추모 예배도 드리고 추모 음악회도 열었으면 좋겠다. 마땅한 부지를 몇 곳 물색해 보기도 했다.
 
기금이 많이 드는 일이니 그 소망이 내 생전에 이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 생전에 이루지 못한다면 누군가 이 꿈을 이어 받아 대신 실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땅에서 함께 소망의 사역에 헌신하다가 노년이 되면 함께 생활하고 함께 묻히는 동산,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고 외롭지도 않을 아늑한 동산, ‘소망동산이 내 생애 마지막 소망이다. 그 소망을 생각하면 나는 쉴 수 없다. 부지런히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면서 여전히 소망을 가지고 달릴 수 있는 내 삶에 감사한다.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골로새서 3:17) 하는 자세로 나는 나의 새로운 10, 80대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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