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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4월10일 00시00분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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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정여사가 들려주는 세상이야기(1)
황혼이혼 말고 ‘졸혼’?
 
1998년 한국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있었다. 70대 할머니가 90대 남편을 상대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요구하며 이혼소송을 신청한 것이다. 초기소송에서는 법원에서도 기각을 했지만 결국 2005년 대법원 최종판결에서 승소했다. 최초로 한국사회에 황혼이혼이란 화두를 던진 사건이었다.
 
황혼이혼이란 결혼생활을 20년이상 지속해온 50대이상의 부부가 헤어지는 것을 뜻한다. 사실 중년 후의 이혼은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특히 황혼이혼은 재산분할로 노인빈곤을 불러올 수 있고, 자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함께 다 늙어서 주책이라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작년에 한 원로배우가 방송에서 “40여년의 결혼생활에 대해 졸혼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그의 아들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졸혼 소식에 큰 감흥이 없었다고 말하며 두 분이 싸우는 모습을 오래 보고 살다가 그 모습을 안보니까 오히려 편하다는 반응이다.
 
졸혼이란 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것으로, 나이든 부부가 이혼하지 않으면서 각자 자신의 삶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생활방식을 일컫는다. 물론, 부부 사이의 불화로 이혼하고 싶지만 여러 제약이 따르고 조건이 여의치 않아 별거하는 부부도 있고, 소위 쇼윈도 부부’ (무늬만 부부)처럼 남보다 못한 부부의 속사정은 철저히 숨긴 채 정상적인 부부처럼 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졸혼은 법적인 혼인관계를 파기해 남이 되어버리는 황혼이혼과는 달리 주로 자녀들이 독립한 후에도 집안 대소사를 같이 돌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서로의 일상생활에 간섭하지는 않고 각자의 생활을 따로 하는 일종의 합의된 별거이다. 그 동안 결혼의 의무와 가족부양으로 인해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했던 부부가 당당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2004졸혼을 권함이란 책이 일본에서 소개되며 최초로 졸혼이란 말이 한국에도 알려졌다. 책 속에서 저자는 결혼은 부부나 가족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대신에 상대를 견제하거나 양보하는 것으로 구속해버린다. 또 서로를 의지하게 되어 서로가 없으면 불안하며 우울해지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인생의 후반부에 많은 손실이 불가피한 이혼을 하지 말고 졸혼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결혼생활을 끝내는 이혼과는 달리 따로 살든지 함께 또 각자의 공간을 구축해 한 공간에 살면서도 독립된 사생활을 약속 받고 서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상담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졸혼과 비슷한 부부유형이 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고 지적한다. 일 때문에 따로 살아야 하거나 배우자의 주거 취향이 너무 달라서- 남편은 시골에 살고 부인은 도시에서 일하는 것- 떨어져 살기도 하고, 또 배우자가 외국에 자주 머무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생활 기간도 늘어날 수 밖에 없어 심한 갈등상황 속에 있는 부부라면, 졸혼이 향후 노년기에 이혼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결혼생활은 아니지만, 각자의 행복을 위해 서로의 노력을 바탕으로 졸혼이라는 새 길을 열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쇼윈도부부와 다를 게 없고 배우자의 묵인 하에 이루어지는 불륜을 조장한다는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배우자 뿐만 아니라 자녀의 이해와 지지가 기반되지 않은 일반적인 졸혼은 사회적인 지탄 속에서 자칫 이혼이란 종착역에 이르는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이다.
 
그럼 졸혼을 선택한 부부들의 반응은 어떨까?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졸혼부부나 한국의 졸혼부부들 대부분이 만족도가 높으며, 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좀 더 긍정적이라고 한다. 또 졸혼을 가장 많이 선호하는 시기는 은퇴 후라고 한다.
 
아시아 대륙에서 시대를 앞서가며,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나라로는 단연 일본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부국인 일본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일본여성의 인권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가부장적인 사회의 속박아래 순종적으로 살던 일본의 전업주부들이 남편의 정년퇴직과 함께 이혼신청을 해서 황혼이혼을 유행시켰다. 그 후 졸혼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더니 몇 년 전부터 사후이혼에 대한 설명회라는 독특한 세미나를 개최해 눈길을 끈다고 한다.
 
사후이혼이란 이미 죽은 배우자와 이혼을 하는 것으로 배우자 쪽 가족, 친척과의 관계를 끊기 위함이다. 주로 부인들이 남편 가족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기 원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시부모부양과 친인척관계에서 오는 부담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친정가족들, 결혼 후에는 시댁 가족들의 굴레 속에 살다 죽은 후까지도 시댁가족들과 함께 같은 묘지에 묻혀야 하는 전통적인 일본여성의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죽으면 자연스럽게 모든 관계가 소원해지는데 사후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비록 아내는 남편의 부모 형제에 대한 부양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관행적인 압박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핵가족시대의 자녀 수의 감소에 따라 자신의 부모 봉양도 해야 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남은 생이나마 자신에게 투자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이혼은 배우자가 이미 사망해 실제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척관계종료 신청서를 해당 관공서에 제출해 법적 관계를 정리해 이혼과 동일한 효력을 얻을 수 있다. 사후 이혼은 오직 남은 배우자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 할 수 있고, 다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야흐로 인생 100시대이다. 100세 시대에 삶의 조건은 인생 60~70’ 시대와는 여러모로 다르게 진행 될 것이다. ‘황혼이혼졸혼’, 더 나아가서 사후이혼100세 시대가 탄생시킨 사회문화적인 현상이며, 가족해체를 넘어 새로운 가족 개념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러니,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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