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음악 이야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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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3월13일 00시00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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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27)
황만섭(재독한인총연합회 자문위원)
계속해서 에드워드 엘가(1857-1934)의 이야기다. 1888년에 캐로라인 앨리스 로버츠와 약혼을 기념하여 쓴 곡은 엘가의 작품 중에서도 초기의 것이다. 당시에 악보 매출은 많았지만, 엘가에게 들어오는 수입은 초라했다. 원래 엘가한테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이었던 앨리스는 엘가보다 8세가 어리다. 당시 엘가는 가톨릭, 엘리스는 개신교로 종교적인 문제가 두 사람에겐 걸림돌이 되었고, 그 이외에도 무명의 작곡가 엘가와 육군 소장의 딸 앨리스 사이에 존재하는 신분의 격차로 엘리스의 가족들은 줄기차게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에 엘리스가 39세가 되던 해에야 힘겹게 결혼이 성사된다.
 
'사랑의 인사'
비 내리는 거릴 좋아했었죠 우산 없이 나와 함께 걸었죠
다시 내리는 비에 그대 생각나 눈물 날 것 같은데
둘이 걷다 보면 나를 위해서 습관처럼 왼쪽 편에 세웠죠
내 여자라서 내가 지켜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했죠
 
좋은 사람 꼭 만날 거라 했는데 그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내겐 그대가 하나뿐이라 다른 사랑 못할 것 같아요
이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가슴에 멍드는 말을 하고서
지나가는 발소리 그대이기를 원하고 또 원하죠
 
사랑의 인사는 엘리스의 사랑이 너무나 고마워서 엘가가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다. 사랑의 인사는 단순하고 소박한 화성과 매력적인 벨칸토적인 멜로디로 원래는 바이올린 곡으로 작곡하였지만, 중후한 첼로 곡으로 더 많이 연주된다. 엘가가 작곡가로서 대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공이다. 그래서 그는 늘 아내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고, 그걸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사랑의 인사다. 사랑의 인사는 세레나데, 한숨, 아침노래, 밤 노래 등과 함께 살롱풍의 소품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곡이다. 멜로디와 세련된 기교에는 엘가의 천부적인 재능이 유감없이 녹아있다. 작품구성은 먼저 당김음을 리듬의 반주로 하여, 곡 전체에 걸쳐 일관성 있게 배열되어 있으며, 곡의 후반에는 코다에 들어가는 부분에서만 정상적인 리듬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당김음과 리듬으로 되돌아와 반주를 마친다.
 
곡은 크게 2개의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장조의 A 가락이 두 번 반복된 사장조로 바뀐 B가락으로 진행하면서 짧은 연결을 거쳐 다시 마장조의 A 가락이 나오고 후반의 가락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서 코다(종결부)로 치닫는다. 신고전 형식의 대표자인 엘가헨리 퍼셀이후로 가장 중요한 영국의 작곡가라고 대접한다. 처음에는 주로 대규모 관현악곡이나 합창곡으로 명성을 얻었다. 예컨대 수수께끼 변주곡’, 오라트리오 제론티우스 꿈등이다. 1920년 아내가 먼저 숨을 거두자 내가 이룬 것은 모두 그녀의 덕분이며, 지금 나는 늙고 병약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오선지를 치우고 작곡을 멈춘다. 부인의 사후, 14년을 더 살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았으며, 193477세를 일기로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저 세상으로 그녀를 찾아 기나긴 여행을 떠난다.
 
다음 이야기는 퍼셀이다.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은 영국의 작곡가다. 퍼셀의 대표 작품은 오페라,디도와 아이네아스(1689)이다. 퍼셀은 음악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5살이던 해에 아버지가 죽자, 궁정 예배당에서 일하고 있던 삼촌에게 맡겨졌고 10살이 되던 해에 궁정 교회의 소년 성가대에 들어간다. 퍼셀은 여덟 살 때부터 이미 가곡을 쓸 만큼 재능이 풍부했지만, 신변의 여러 어려운 사정으로 불가능했다. 왕실 소년성가대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그는 하프시코드를 조율하거나 악기를 손질하는 일을 도우면서 존 블로에게 사사했다. 바흐나 하이든이 변성 때문에 소년합창단에서 나왔던 것처럼 퍼셀 역시 변성기가 찾아오던 14살이 되던 해에 성가대를 나와 악기 관리인이었던 존 힝스턴의 조수가 되었고, 합창단의 지휘자였던 헨리 쿠크와 그의 후임자인 펠햄 험프레에게서 음악을 배우다가, 험프레이가 타계하자, 계속해서 존 블로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일반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오페라 디도와 아에네아스1689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영국은 음악의 변방이라고 할 만큼 기악곡 및 오페라에서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이 없던 초라한 시절이었다. 그나마 블로, 애비슨, 스탠리 같은 고만고만한 작곡가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썰렁한 때였다. 그런 와중에 퍼셀의 오페라는 빛나는 보석이었고, 전체 바로크 오페라 시대를 놓고 보더라도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치솟는 금자탑이었다.
 
그의 작품은 오르간과 트럼펫을 위한 곡을 작곡한 것들로도 유명하지만, 클래식 덕후(클래식 장르를 깊게 파고든 사람) 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기악곡은 없는 편이다. "뉴 그라운드" 같은 몇몇 건반 소품들이 알려져 있으며, 1997년에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장례식 때에 퍼셀의 곡이 연주되기 했으며, 그밖에 압델라자르(Abdelazer) 중 론도(Rondeau)가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나왔고, 훗날 벤저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에서 한번 더 그의 음악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의 곡은 귀족적인 우아함과 당당함의 선율을 통해 그가 이룬 음악성을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고 있다.
 
1677년에는 궁정의 상임 작곡가 및 지휘자가 되었고, 1679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왕실예배당의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하던 그는 격무에 시달려 36세의 젊은 나이로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쇠약해진 몸으로 죽는다. 퍼셀은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400곡이 넘는 다수의 교회 음악과 기악곡을 남겼으며, 이 밖에도 아더왕》 《요정의 여왕》 《인도의 여왕등의 오페라를 씀으로써 영국 바로크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퍼셀의 작품들은 기수(奇數)의 소절(小節)로 이루어진 주제(主題), 불규칙한 프레징(숨을 쉬는 것,- 쉼표(,)나 마침표(.)처럼) 박자와 리듬의 충돌 등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것들로서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은 메리 2세를 위한 장례 음악으로 연주되었다. 왕정복고(王政復古) 후의 영국음악은 그의 창작에 의하여 비로소 국제무대에 명함을 내놓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퍼셀(1659-1695)1659년에 태어나 영국 음악을 빛낸 이후로 198년 지난 후에야 엘가(1857-1934)가 태어나서 영국 음악을 다시 한번 국제무대에 이름을 날리게 하였으니, 참으로 오랜 세월 자랑할 만한 음악가를 배출하지 못한 영국의 침체되었던 음악사를 말해준다.
 
참조 : ‘세계음악기행’(김성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사진: 헨리 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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