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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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2월13일 00시00분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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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23)
유분자


간소해서 더욱 경건한 장례식
 
무소유정신으로 유명한 법정 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도 소박했다. 무소유의 정신 그대로였다. 20103월 봄이 올 무렵,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과 함께 장례 절차에 관한 보도가 이어져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장례식은 너무나 간결했다. “장례를 가장 간소하게 하라.”는 스님의 유언에 따른 것이었다. 스님은 평소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 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도 따로 마련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빈소에는 꽃 한 송이 없고 떡이나 과일 한 조각 없었다. 분향소에는 흰 벽을 배경으로 영정과 촛불, 향로가 단출하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조화나 부의금을 일절 접수하지 않았고, 수의도 관도 없이 평소 입던 옷 그대로 염습했고 평상 위에 가사를 덮은 채 다비식(화장 장례식)을 했다고 한다.
 
그 소박하기 그지없는 장례 의식을 보면서 나는 어떤 호화로운 장례식보다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을 받았다. 불필요한 것들을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의 삶에 가장 잘 맞은 마무리, 맑고 향기로운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가주에서 근 50년을 살다 보니 장례식에 참석할 기회가 많다. 장례식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은 장례 의식을 어떻게 하면 좀 간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장례 한 번 치르면서 거치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비용 또한 엄청나다. 장례식 예배만 해도 세 번이다. 입관 예배, 발인 예배, 하관 예배를 한 번의 장례 예배로 줄이고, 매장 대신 화장을 한다면 장례 절차는 훨씬 줄일 수 있다. 조화와 조의금을 받지 않고, 특별한 상복 대신 평상복을 입는다면 장례는 그만큼 더 검소해진다.
 
하지만 유가족이 나서서 장례식을 간단하게 치르겠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장례 의식에 물심양면으로 최대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례 간소화는 본인이 결정해 두어야 한다. 법정 스님처럼 생전에 분명하게 지시해 두면 가족은 심적인 부담 없이 그리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간소하게 장례식을 치를 수 있다.
 
본인의 장례 절차를 미리 지시해 두자
자신의 장례식을 꼼꼼하게 지시해 둔 분이 있다. 소망소사이어티의 홍보대사 3호 이범영(82) 씨다.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2013년 여름이었다. 우리 사무실을 처음 방문해 그날로 평생회원이 된 그분은 며칠 후 두 번째 방문하면서 두툼한 노트 세 권을 들고 왔다. 3년 동안 한 자 한 자 기록한 회고록이라고 했다.
 
후손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 주고 내 장례식을 어떻게 하라는 지침을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그중 장례 지침을 읽어 보고 참으로 꼼꼼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즉각 시신 기증 프로그램에 통보하고, 조의금과 조화는 받지 말라. 참석자는 가족과 최소한의 친지로 제한하고, 가족의 상복으로는 깨끗한 평상복을 입도록 하라. 장례식은 천국 시민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는 것이니 이를 축하하는 밝은 분위기가 되도록 하고, 장례식이 끝난 후 문상객이 퇴장할 때는 승전가와 베토벤의 천사의 합창CD로 틀도록 하라. 부고는 따로 하지 말고 장례식을 치른 후 교회 주보를 통해 알리라.”
 
그 외에도 여러 내용을 세세히 작성해 놓아서 간소한 장례식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매뉴얼이었다.
 
왜 이렇게 간소한 장례식을 원하느냐고 내가 물어보았다. 그분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장례식을 복잡하고 어수선하게 할 것이 아니라 경건하면서도 축하하는 의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세계적 진화생물학자인 옥스퍼드대의 리처드 도킨스 교수가 언젠가 TED 강연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 오페라 아이다에 나오는 웅장한 코끼리 행진곡을 틀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 까닭은, 승리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행여 뭔가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살아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승리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더욱이 지구라는 근사한 행성에서 살아왔으며, 내가 세상을 뜨기 전에 왜 이곳에 머물렀는지를 이해할 기회를 얻었노라 하는 승리감에 젖을 것입니다.”
 
장례식을 축하의 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유명한 무신론자와 독실한 크리스천의 생각이 묘하게 겹치는 것이 재미있다.
 
이범영 씨의 장례 지침에 대해 그의 아내와 자녀, 손주들은 서운해 했다고 한다. 특히 시신 기증 결정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대한민국 대령 출신이어서 죽으면 현충원 국군묘지에 안장된다. 그곳에 묻혀 후손과 국민들의 기림을 받을 터인데 그것을 포기하다니 너무나 안타깝고 아쉽다고 했다는 것이다. 시신을 기증하면 후손들은 어디 가서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추모하고 기리겠느냐며 반대도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생 올곧게 지켜 온 신앙생활의 연장선에서 시신 기증으로 인생을 끝맺음하려는 이분의 뜻을 가족은 꺾을 수 없었다.
 
천사는 가벼워서 하늘을 난다
장례식 간소화 차원을 넘어 시신 기증으로 몸까지 아낌없이 내주는 삶, 그리고 장례를 하나님 품으로 들어가는 축하 의식으로 바꾸는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웰 다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장례식이 너무 복잡하고 떠들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이 체면 때문에 조화를 보내고, 조의금을 내고, 음식을 먹고, 비싼 수의와 관을 준비하면서 경건해야 할 장례 의식이 허례허식으로 기울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장례식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서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사전 장례의향서를 작성하자는 캠페인이 조용히 전개되고 있다. 작성자가 자신이 죽었을 때 어떻게 장례를 치를지 미리 결정함으로써 유족들의 부담을 덜어 주고 허례허식을 탈피하게 하자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고인 중심의 장례 문화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사전 장례의향서를 통해 작성자는 부고를 널리 알릴지, 가까운 사람에게만 알릴지, 장례 후 알리지를 선택하고, 장례식은 전통문화 계승 차원에서 지켜 달라, 간소하게 치러 달라, 가족과 친지만 모여 치러 달라 중에서 선택하는 식이다. 그 외 부의금과 조화를 받을지 여부, 화장과 매장 등 장례 방식과 장소 등을 미리 작성해 두는 일종의 유언장이다.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까닭은 가볍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소유를 내려놓고 빈 몸으로 가볍게 하늘나라로 들어가려면 거창한 장례식은 맞지 않다. 장례식은 고인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조용하게 하는 의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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