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19)
HOME 회사소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뉴스플러스 > 문화
2017년01월09일 00시00분 131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19)
유분자

이 세상 작별 리허설, 팔순 잔치
 
지난해 초여름부터 딸의 성화가 심해졌다. 201510월이면 내 나이 여든이 되는데 잔치를 어떻게 할 건지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팔순 잔치를 어느 규모로 할지 어디서 할지를 정해야 장소를 예약할 수 있으니 빨리 결정을 내려 달라고 재촉했다. 가족끼리 조촐하게 하고 말 것이라면 모를까 친척, 친구, 지인들을 초청하려면 장소가 커야 하는데 그럴 만한 장소는 적어도 몇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솔직한 심정은 아들딸네 가족들과 조용하게 저녁 한 끼 먹고 끝내고 싶었다. 나이 많이 먹은 것이 자랑일 것도 없고, 거창한 잔치를 할 만큼 내가 대단한 존재는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까운 가족들은 초청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언니 동생 등 내 형제들과 그 직계 후손들만 해도 수십 명이다. 가족 잔치로 해도 쉽게 100명은 넘으니,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다.
 
그렇게 한두 달 지나는 사이 소망소사이어티 식구들이 나섰다. 소망의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나의 팔순 잔치는 마땅히 소망소사이어티가 주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간호협회 후배들이 연락해 왔다. ‘간호사 대모의 팔순 잔치는 간호협회가 앞장서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가족끼리 조촐하게!’ 를 고집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팔순 잔치는 아주 거창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인 부분은 초청할 손님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지난 수십 년 내가 설립도 하고 이끌기도 하며 관여한 단체가 많다 보니 어느 선까지 초청을 할지 선별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그때 내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소망소사이어티와 간호사회가 팔순 잔치를 주관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선선히 받아들인 까닭도 이 생각 때문이었다. 팔순 잔치를 장례식 리허설이라고 생각하자, 이 세상 떠나는 작별 파티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죽은 후 장례식보다는 살아서 환송식을
나는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않게 할 것이다. 그 대신 내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 이 장례식을 환송식이라고 불러 주면 좋겠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듯이 나는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지 않더라도, 죽음이 갑작스럽게 닥치지 않는 한, 내가 언제쯤이면 세상을 떠나리라는 것, 적어도 언제쯤에는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죽음을 앞두고 한 달 전이든 반년 전이든 내가 아직 정신이 또렷할 때, 내가 아직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이 유지되고 있을 때, 나는 파티를 열고 싶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가 상처를 주었던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꼭 들려 드리고, 오래 못 만나서 보고 싶었던 분들에게는 따듯한 정이 담긴 이야기를 건네고, 내게 고맙게 해 주신 분들, 내가 존경하는 귀한 분들, 나와 막역하게 잘 지냈던 분들에게는 그동안 받아 온 사랑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참석자 전원에게 이제 저는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하고 온 마음을 다해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아끼던 물건들을 작은 것이나마 한분 한분에게 선물하고 싶다. 반지, 브로치, 전화 고리, 지갑, 핸드백, 집 안 곳곳에 두고 보던 장식품 등이 될 것이다. 대개 죽은 사람의 물건은 안 받고 싶어 할 테니 죽기 전에 내가 평소 즐겨 입던 옷들도 원하는 분이 있으면 미리 나눠 주고 싶다. 내가 키우던 화초들도 나눠 주고, 내가 소장한 책들은 도서관에 기증하고 싶다. 내가 죽고 난 후 딸이나 아들이 특별히 짐을 정리할 필요가 없도록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정리해서 내주고 나눠 주고 싶다.
 
환송식에 초대한 손님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나의 지난 삶의 모습을 편집한 DVD 영상 같은 것을 5분 정도 틀어 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 ‘Amazing Grace’와 소망 주제곡, ‘아름다운 삶 위하여를 피아노곡으로 연주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마지막 작별 파티를 하고 나면 나는 거기에 참석했던 분들에게 우송될 수 있도록 각각 주소를 적은 편지봉투들을 마련해 둘 것이다.
 
내 장례식은 따로 하지 마라. 다만 내가 죽거든 내가 죽었다는 부고 기사나 부고 광고를 내고 내가 언제 떠났다는 알림장을 내가 마련해 둔 봉투들에 넣어 우편으로 부쳐 다오.”
이런 생각을 사실은 몇 년 전부터 해 오고 있던 중이다. 죽은 후가 아니라 죽기 전에 이 세상 떠나는 작별 인사 겸 마지막 파티를 하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침 팔순 잔치를 하게 되었으니 이참에 그 리허설을 한번 해 보자 하며 추진한 것이 팔순 잔치였다.
 
소중한 인연들을 가슴에 품으며
장례식 리허설이라 생각하니 하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을 때, 마음부터가 달랐다. 그렇게 귀하고 반가울 수 없었다. 팔순의 삶을 감사하는 예배를 시작으로 각계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지고 동영상을 통해 지난 80년 나의 삶이 소개되었다. 주로 미국에 온 후부터의 사회 활동을 녹화한 것이니 반백년의 생애가 담긴 기록물이다. 내가 봐도 쉴 틈 없이 달려온 50년이었다. 간호사 한 사람이라도 더 RN 시험에 합격하게 하려고 발 벗고 뛰었던 70년대, 고 이태영 박사를 만나고 LA에 가정상담소를 발족시켰던 80년대, IMF 사태로 한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배곯는 아이들을 먹이는 일이라도 하자며 나라사랑어머니회를 결성했던 90년대, 소망소사이어티를 발족하고 머나먼 아프리카를 찾아가 그 참담한 현실에 눈물 흘렸던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50년 세월이 동영상으로 보니 잠깐이었다.
 
마침내 내가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서니 감격의 눈물이 솟았다. ‘이 생애를 내가 이분들과 함께했구나. 굽이굽이 내 삶의 여정에 이분들이 동행해 주었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느냐고 감탄하는 분들에게 나는 내 평생의 모토를 말했다. “누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고, 내가 하면 지금 하고, 지금하면 기쁘게 한다는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대외적으로도 인정을 받은 걸까. 팔순 잔치 자리에 생각지도 못한 분들이 와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었다. 한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캘리포니아 주하원에 입성한 영 김 주하원의원, 나와 인연이 수십 년이 되는 마이크 앵 몬테리팍 시의원 겸 변호사 그리고 피터 김 라팔마 시장이 참석해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한 노고를 치하한다며 감사패를 수여했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혹시라도 이런 게 내 자랑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럽고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팔순 잔치를 마치면서 나는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 나의 장례식 리허설에 참석한 그분들을 가슴에 품으며 말했다.
 
여러분, 감사해요. 사랑해요. 함께 해요. 끝까지
 
100923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문화섹션 목록으로
[문화]4월의 추천도서 『...
[문화]김대웅의 서양미술...
[문화]스페인 안달루시아...
[문화]<동화> 하늘높이 ...
[문화]여성, 그리고 1990...
 

이름 비밀번호
[1]
다음기사 : 음악 이야기 (20) (2017-01-16 00:00:00)
이전기사 : 슈투트가르트 지역 2017년 상반기 가야금 수업 안내 (2017-01-09 00:00:00)
제33회 전독 한인골프대회
제22회 한우리한마당체육 문화행...
에쎈한인교회 - 소말리아 어린이...
재독한인간호협회 문화행사 및 ...
Ruhrgebiet(루우르지방)볼링 동...
자동차퍽치기 당하다!?
책&삶에서 독일 소식을 전해줄 ...
한글로망 자랑스런 한글 세계화
    답변 : 한국을 한국이라 말...
독일의사들 선운사에서 한국기공...
Damenmode bis 80% Duesseldorf-...
아름다운공간
CoOpera 가이드 모집공고
총신대 한국어교원양성과정과 함...
성명서
2016학년도 재외동포 국내초청교육(모국수학) 과정 수...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포럼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