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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01월09일 00시00분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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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부문 수상작: 구두병원의 네스커피 아저씨
강정희
 언젠가 독일 근로기준법이 바뀌어 본인이 원하면 65세 정년을 채우지 않아도 조기 연금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시간제로 근무할 수 있는 그런 법을 염두에 두고 만 60세에 정년퇴직을 했다. 40년 이 넘게 한곳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 근무를 하다 보니 직장과 가정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생활과 직접 연결이 되어 근무처 어느 한 곳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싫증이 날만도 했으나 우직하리만큼 나는 그것을 지켰다.
 
우리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 정년퇴직을 하면은 평소 그토록 가고 싶던 고국 땅을 찾아 이곳저곳 여행도 하며 남은 인생을 즐기려니 서로 계획을 세우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우린 2~3년에 한 차례 고국을 찾는다. 작년 10월의 이야기다.
 
이모! 독일에서는 구두를 닦지 않는 모양이지. 명품 구두 같은데 모양새가 어찌 이리 꾀죄죄하지!”
 
외출했다 돌아온 언니 막내딸 영아가 현관문 앞에 벗어 놓은 내 구두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신발을 자주 닦지 않는다. 도로 사정이 좋아서인지 쉽게 더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처럼 노상에 구두를 닦는 상점도 없다. 그 때문에 내 구두는 누구도 아닌 내가 닦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집은 예외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은 신발장에 들어있는 신발을 몽땅 꺼내서 닦는다. 마치 결혼 전 작성한 노동계약서처럼 우리 집에서 신발을 닦는 일과 유리창을 닦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여자들이 유리창을 닦는 일이나 신발을 닦는 일은 힘이 드는 일이라며 결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남편이 자청해서 하는 일이다.
 
4주일간의 한국 휴가를 작정하고 여행 짐을 챙기면서 휴가에 신고 갈 구두를 고르다가 마침 크리스마스 특별보너스를 받아 큰 맘 먹고 사신은 BAILY 상표가 붙은 구두를 택했다. 7.8년 오래된 구두지만 아직 새 구두 다름없고 유행을 타지 않은 명품 구두인지라 특별한 자리에 초대받을 때마다 신는 고급 구두였다. 바닥이 두꺼운 통가죽이라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밟으며 걷는 구두가 아니라 포장된 길 실내에서 사푼사푼 걸을 때 신는 고급구두였다. 그래서 별도 수리비를 주고 앞부분과 굽에 고무바닥을 붙인 구두다. 남편은 언제나 깨끗이 닦아 비닐봉지에 별도 보관한 구두인데 젊은 조카 눈에는 꾀죄죄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서독에 간호사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전 그때는 큰길가 곳곳에는 구두를 닦는 구두 닦기가 많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큰길을 배회하며 구두를 닦는 슈산보이 구두 닦기가 눈에 띠이지 않았다. 다음 날,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에 초대를 받고 가는 길에 영아가 말한 4호선 000 전철 출구 앞 구두병원을 찾았다. 구두를 수선하고 구두를 닦는 곳을 가리켜 구두 병원이라 했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르다 보니 구두수선, 닦기도 전문 직업이 되어 병원이라는 간판을 붙여 부르다니 싱거운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구두병원 원장일까? 알루미늄 철판으로 지은 작은 임시 건물 유리문에는 구두병원이라는 붉은 페인트 글씨가 눈에 확 들어 왔다. 늦은 가을인데도 작은 선반 위에 선풍기가 돌고 있었다. 출입문을 열자 구두 광택제 파라핀의 역한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그 냄새 틈새로 향긋한 커피 향이 묻어 왔다. 구두를 닦다 말고 고개를 들고 날 반기는 그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모자를 깊이 눌러 써 나이를 짐작 못 했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칠순을 넘어 팔순이 가까운 늙은이였다. 저런 분이 구두를 수선하고 구두를 닦는 일을 하다니.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수선 중인 구두와 가방, 흙이 묻은 구두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가죽을 꿰매는 재봉틀도 있었다. 재봉틀 위에는 금방 마시다 놓은 듯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종이 커피, 잔이 눈에 들어 왔다.
 
구두를 닦으러 왔는데 지금 닦아 줄 수 있는지요?”
그럼요. 이 구두 금방 끝내고 바로 닦아 드리지요.” 하면서 옆에 놓인 슬리퍼를 내밀었다.
 
나무뿌리처럼 앙상한 손에는 새까만 구두 광택제가 온통 범벅되어 맨살을 볼 수 찾아볼 수 없었다. 구두를 닦는 일에도 도수 높은 안경을 콧등에 걸치고 일하는 모습이 전혀 삶의 고단한 흔적이 보이지 않은 달맞이꽃처럼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벗어 놓은 내 구두를 보더니 대뜸 외국에 사느냐고 물었다. 한국 구두가 아니란다.
 
! 독일에서 왔습니다
독일요?” 구두에 광택제를 바르던 그는 일손을 멈추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움칠했다. 무슨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럼 혹시 간호사로 독일에 가셨는지요.”
! 그런데요?”
실은 제 누이동생도 70년도에 서독 간호사로 갔지요.” 쉴 사이 없이 구두를 닦으면서 띄엄띄엄 늘어놓은 사연은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암울했던 1970년 스무 살 처녀 나이에 서독 간호사로 간 누이는 아버지가 친구 빚보증으로 남의 손에 넘어갈뻔 한 집을 되찾아 주었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혼하고 1982년에 캐나다에 이민을 떠나 행복하니 잘 살아가는가 싶더니 십여 년 전 췌장암으로 두 남매를 놔두고 세상을 떠났다 한다. 죽기 전에 고국을 자주 방문하고 형제간에 정이 두터웠으나 누이가 죽고 나서 풍문에 듣자하니 혼자 된 누이 남편이 재혼했다 한다. 그 때문인지 전혀 왕래가 끊기고 남이나 다름없이 되었다 한다.
 
아저씨가 구두를 닦는 동안에 난 비좁은 작업장 안을 살폈다. 벽면 한쪽 유리 액자 속에 굵직한 글귀가 눈에 들어 왔다.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하고 많이 감사하자.>
 
난 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고국에 휴가를 나가면 평소와는 다르게 처음 만나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호감을 느낀다 싶으면 계속 대화를 이어 가는 버릇이 생겼다. 고향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린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몇 년을 구두 닦기를 하셨나요? 어디에 사시나요? 자제분이 몇이나 되나요? 등등
 
그는 시시콜콜 뭘 그렇게 다 알고 싶어 하느냐는 눈초리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거리낌 없이 순순히 답변해 주었다. 의정부에 살고 매일 2시간 이상 전철을 타고 여기에 도착한다고 했다. 아내가 새벽 일찍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 준 보온병을 들고 정확히 아침 7.30시에 떠나 이곳에 9.30시경에 도착해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서서히 일을 시작한다. 커피만은 독일제 네스커피를 꼭 마신다고 했다. 누이가 처음 휴가차 고국을 방문했을 때 선물한 네스커피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후 누이가 이국땅에서 이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부터 더욱 누이를 생각하면서 독일 산 네스커피를 구해 마신다고 했다. 힘들게 살다간 누이를 생각하면서 마시는 네스커피는 아침을 여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온 간호사라는 내 말에 솔직히 고백한다고 귀 뜸을 했다. 한때는 종업원 십여 명을 두고 기성화 구두를 만드는 공장 사장이었다 한다.
 
그러나 IMF 사태로 경제적인 혼란이 일어나 자신이 운영하던 종로구 창신동 구두 공장이 하루아침에 폭삭 망해 빚에 넘어가고 거리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한다. 자살까지 결심한 그를 살린 사람이 누이라고 했다. 캐나다에 사는 누이가 남편 몰래 만오천 불을 도와줘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다. 왜 꼭 이곳이냐고 물었더니 이곳 000 사거리 전철역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오가고 직장인들도 꽤 많아서 단골손님이 많다고 했다.
 
한때는 아내가 근처 사무실과 복덕방을 찾아다니며 단골 분들의 구두를 모아 오면 자기는 열심히 구두를 닦았다 한다. 이렇듯 부부가 같이 고생한 보람으로 비록 평수가 작은 아파트도 하나 사고 남매가 대학을 졸업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했다. 요즈음에는 구두보다 운동화를 신고 다닌 사람이 많아 옛날 같지 않다고 했다. 나이를 먹어도 할 일이 있고 직업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엄격한 출퇴근 시간은 손님들과의 약속이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출퇴근 시간을 지킨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대학 교육까지 마치도록 했으니 부모의 도리는 다했다고 했다. 자립은 자식들의 몫이라고 힘주어 말을 했다. 인터뷰하듯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고 귀찮게 질문을 해도 그는 싫어하는 기색 없었다.
 
독일에서 살다 온 간호사라는 내 말에 그는 죽은 누이 생각이 떠올라 그랬을까 맡겨 놓은 구두를 찾아가는 손님을 보내 놓고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는 나도 번쩍번쩍 광택이 나게 닦은 구두를 신고 일어날 줄 모른 채 그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직업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일하고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 하면은 집사람과 같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가서 집사람 손을 꼭 잡고 로맨틱한 올레길을 걷고 노란 유채꽃 밭에서 활짝 웃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더욱 여유가 있으면 누이가 간호사로 일했다는 쾰른이라는 도시 독일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새까만 손으로 타 주는 네스커피를 한 잔 얻어 마셨다. 그리고 구두 닦은 수고비 오천 원을 받지 않겠다는 것을 가까스로 자리에 놓고 구두병원을 나왔다. 그 뒤 고향을 다녀오고 여행을 다니다 보니 밤늦게 언니 집을 찾고 불 꺼진 구두 병원 앞을 지나 그를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나는 조카 영아를 통해 한 장의 엽서를 그 아저씨한테 보냈다.
 
네스커피 아저씨!
 
인생에 공짜가 없고 모든 것이 거저 오는 게 아니라지요. 씨를 뿌려야, 꽃과 열매를 만날 수 있듯이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높은 점수를 드립니다. 두 분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저씨의 바람과 소원하신 행복한 제주도 나들이가 꼭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독일에도 오시고.
 
다음 한국에 휴가를 가게 되면 아저씨가 좋아하는 네스커피 많이 가지고 가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저도, 될 수 있으면 많이 감탄하고 많이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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