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작가 채길순이 만난 서유럽에서 희망을 노래한 개척자들 ④ <이복남>(상)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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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09월29일 22시32분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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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채길순이 만난 서유럽에서 희망을 노래한 개척자들 ④ <이복남>(상) 편
채길순(소설가 /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이복남 여사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지만, 독일 생활 25년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출산 장려 및 자연분만 유도 홍보 관련 일을 하는 특이한 경우이다. 필자가 이복남 여사를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났다. 전에 만났던 구면이어서 서로 반겨 맞이했다.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지요?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보다시피 다리에 기운이 좀 빠져서 그렇지 건강해. 아직 외부에서 강의 초청이 오면 가끔 가고.
 
먼저, 독일은 언제 가셨지요? 그 이야기부터 들려주세요. 독일에 사는 분들이 보는 신문에 나오는 기사라니, 간단히 말씀드릴게. 나는 19457월 서울청파여학교 수료하고, 19477월 전주도립의원 간호부양성소를 졸업했어. 194810월에 한국 최종 조산원 국가고시가 있었는데 최연소자로 합격했지.
 
1956년부터 독일 가기 전인 19717월까지 전주에서 조산원을 운영했어. 서독 연방정부초청으로 독일에 들어가 처음에는 duisburing vincenz hospital 분만실에서 근무하다가 1975년에 노트라인 베스트화렌 주정부 조산원 전형에 합격해서 198710월부터 199510월까지 Stadtkrankenhais Soest 분만실에서 근무를 했어.
 
기억이 정확하게, 일사천리네요. 먼저 독일에 들어가게 된 사연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안 아프거나 덜 아프고 애기를 낳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이 문제를 늘 고민하며 살았지. 그러던 중에 정부의 간호사 인력 서독 수출 사업이라는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했어. 의학이 발달한 서구에는 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나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해 1971727, 3남매를, 이제 갓 돌이 지난 딸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훌쩍 독일로 떠나버렸지.
 
독일 생활 정착 과정에 대해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빈센츠 가톨릭 병원 분만실 근무를 맡았어. 그러던 어느 날 인턴 의사가 거꾸로 나오다 머리가 걸린 아기를 붙들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게 됐지. 나는 반사적으로 쫒아 들어갔어. 오른손 손가락을 입에 넣고 턱을 당기자 아이가 거짓말처럼 툭 튀어나왔어. 그렇다고 이는 위험이 따르는 모험이 아니었다.
 
한국 조산원 할 때부터 수없이 받아본 거꾸리였던 것이다. 그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 뒤부터 난산(難産)은 항상 프라우 리몫이 되었다. 어떤 때는 산모 배 모양만 보고도 태아의 성별을 맞혀 독일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지. 나는 독일에 있는 동안 늘 그렇게 생각했어. 개인 프라우 리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직업에 따른 사명감도 중요하다고.
 
처음 독일 생활에서 어려움이라면요? 의사소통이 안 되는 답답함이지. 매일 1시간씩 독일어 강습을 받으며 거의 독학으로 말과 글을 익혔어. 병원의 산실에 성미 고약한 늙은 선배가 일부러 마구 흘려 쓴 글씨로 환자들의 서류를 작성해 놓고 정리를 시키고……언어가 서툴렀던 당시로는 시달릴 수밖에 없었지. 고약한 선배를 주눅 들게 한 사건이 있었어. 앞에 이야기와 좀 비슷하지만, 어느 독일의 임산부가 아기발이 질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어. 골반 위 정도였기 때문에 내가 해낼 자신이 있었는데 내게 일을 맡기지를 않는 거야.
 
그때 독일 의료진들이 1kg나 되는 모래주머니를 아이의 발에 매달아 놓고 기다리다 안 나오니까 점심시간이라고 나가버리는 거야. 내가 보다 못해 진통촉진제를 투입하고 천천히 진통에 맞춰 잡아당기다 머리가 나오질 않아 손가락을 아이의 입에 넣고 바짝 가슴속으로 잡아당겨 결국 자연분만을 하게 했지. 의료진은 물론 병원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지. 그 뒤부터 병원에서는 내가 있는 한 골반 위는 수술을 않게 되었지.
 
독일에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요? 그 사건이 있은 뒤부터 각고의 노력 끝에 조금씩 언어도 소통하게 되었고, 실력을 인정을 받아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14개월 된 막내딸을 남겨두고 혼자 독일에 와서 생활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었지. 1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보내온 남편의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면서 독일 생활의 외로움 달래고 어려움을 이겨냈어. 그 때 흘린 눈물도 한바가지지.
 
한국에 남았던 가족들은 언제 들어왔어요? 5년 세월이 흐르니까, 기다리다 못한 남편이 애들 들쳐 업고 독일로 왔지.
 
독일 생활을 하면서 독일 사회에서 각별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요? 가난한 나라에서 온 내게 선진국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정말 부러웠어. 이런 천국 같은 세상도 있구나 싶었지. 그 중에서도 애 낳는 여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가장 부러웠어.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수없이 건의 했지. 그 덕분에 개선 된 것도 있고.
 
한국에 다시 들어오시게 된 동기는요? 어느 날 집에 놓인 한국 신문의 기사제목을 보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어. ‘제왕절개 세계 1!’라는 기사 때문이었지. 내가 태어난 조국에서 마지막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거지. 25년 독일 생활을 접고 1996년 훌쩍 귀국하게 됐지.
 
먹고 사는 걱정은요? 그건 돌아보지도 않았지. 뭐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고.
 
한국에 들어오셔서 뭘 하셨어요? 귀국해서 자연분만과 출산장려 홍보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왔어.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게 좋은 일 아닌가?
 
지금 사시는 곳은요?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화죽리. 시골에 들어와 집 짓고 사는데, 처음에는 작은 마을에서 텃새를 부리는 거야. 그래서 동네 사람들 밭에 가서 일도 해주고 그랬지. 생각해봐. 일 안하던 사람이 일을 하니 손 여기저기 부르트고 온몸 안 아픈 데가 없어. 그래도 악착같이 일 했지.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감동 먹고텃세가 점점 사라지더만. 뭐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오고 하니까, 또 알아주기도 했고.
 
생애가 정말 당차게 보여요. 당차고 야무졌던 어린 시절에 대해 들려주세요. 순창에서 태어나 소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라갔어. 일제 시대였던 당시 남녀공학이던 학교에는 일본 아이들이 반 이상이더라고. 촌년이라고 무시하는 일본 년들한테 니들은 섬 년들이니 너희 나라로 가라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적이 있었어.
 
그때는 교장 선생님에게 꾸지람이나 듣고 말았는데, 기어이 사달이 났어. 일본 년들 꼬라지가 맘에 안 들어서 학교 때려치울 각오로 그해 여름방학 때 흠신 두들겨 패주고는 집으로 도망을 내려와버렸지. 집으로 돌아온 딸을 보고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랐지.
 
당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여자들을 무작정 잡아다 위안부로 넘기던 시절이었지. 나는 그날 밤으로 어머니의 지인이 있는 남원 도립의원으로 피신했어. 적십자 마크를 달고 있으면 잡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지. 1년 뒤 광복을 맞아 전주 도립의원 간호원양성소(현 전북대 간호대)에 입학하여 고등교육 과정을 마쳤어. 내가 졸업할 당시에는 간호 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어.
 
그렇다면 적십자 완장을 차고 있으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소문을 때문에 2년제 간호학과에 들어가신 거네요. 그런 셈이지.(다음 호에 계속)
사진: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이복남 여사. 지금도 온갖 출산 장려, 자연분만 유도 홍보활동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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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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