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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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09월12일 00시00분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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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5)
유분자
노인과 어르신
나이가 여든이 되면서 나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나이 여든이면 분명 노인인데 나는 아직도 내가 노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나이 들어도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을 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젊어서는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나이든 분들이 그저 하는 말이려니.’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백번 이해한다. 정말이지 마음은 시간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젊은 줄 안다. 내 마음이 그렇다고 청춘은 아니다. 하지만 노인도 아니다. 여전히 마음은 의욕에 넘쳐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일도 많다. 일을 보면 나이를 잊어버리고 내가 앞장서게 된다.
 
언젠가 집으로 우송되어 온 미국은퇴자협회(AARP)의 뉴스레터를 뒤적이다 시니어 시티즌에 대한 글을 보았다. 읽어 보니 요즘은 예순다섯 살 이상 연령층을 올드 피플(Old People)’이라 하지 않고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부른다며 나이든 시민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자는 내용이었다.
 
글에는 시니어 시티즌이라는 용어의 유래도 소개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시작이었다. 1938년 대통령 선거 당시 루즈벨트는 노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시니어 시티즌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고 한다. 노년층은 시민 중에서도 상급의 시민 즉 존경받을 만한 시민이라고 해서 이런 용어를 지어냈다고 한다. ‘지혜와 경륜을 갖춘 존경의 대상이라며 노년층 표심을 적극 공략하는 캠페인을 펼침으로써 그는 압도적인 표차로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
 
그는 공약대로 소셜 시큐리티 연금 제도를 만들어 은퇴자들이 기본적인 품위를 갖고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이때 근로자의 은퇴 연령 기준을 예순다섯 살로 정하면서 예순다섯 살 이상이 시니어 시티즌이 되었다.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보았다. 우리 식으로 하면 올드 피플은 노인, ‘시니어 시티즌은 어르신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올드 피플 즉 노인이라는 말에는 나이가 강조되고, 시니어 시티즌 즉 어르신에는 품격이 강조된다. 한마디로 노인은 그저 세월 따라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되는 것, 어르신은 세월 속에서 경륜과 지혜를 얻음으로써 고매한 인품을 갖춘 사람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 인구가 늘어난 때문일까, 한국에서도 노인과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인터넷이나 카카오톡으로 그 이야기들이 미주 한인들에게도 전달된다. 2년 전 소망소사이어티 송년 모임에서 유태윤 홍보대사가 노인과 어르신의 차이점을 설명하셨는데,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그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항상 배우며 스스로를 가꿔 가는 사람은 어르신, ‘이제 다 살았다하며 그저 세월만 보내는 사람은 노인이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며 남을 내리누르려 드는 사람은 노인, 열린 생각으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포용하는 사람은 어르신이다. 누구에서건 무엇이든 받기만 좋아하면 노인, 두루두루 베풀기를 즐기면 어르신, 그래서 노인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 고독하고, 어르신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여 들어 늘 활기찬 것이 차이점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노인과 어르신의 앞에 놓인 여생은 질적인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이다. 노인의 삶은 불쌍하고 어르신의 삶은 복되다.
 
불쌍한 노인’, 존경받는 어르신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근본적으로 여생을 보는 시각, 죽음을 보는 시각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은 노인을 만들고,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은 어르신을 만드는 것 같다. 어차피 삶은 얼마 남지 않았고 삶이 끝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면 애써서 뭔가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때울 뿐이다. 하지만 죽음 너머 그 이후의 삶을 꿈꾼다면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의 차이는 소망이 있고 없고가 만들어 내는 차이이다.
 
롱비치 남쪽 실비치에 있는 레저월드를 가끔 방문한다. 남가주 최대의 은퇴 커뮤니티인 이곳에 친지들이 살고 있어 개인적으로 방문하기도 하고 그곳 한인들을 대상으로 소망 세미나를 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그곳에 갈 때마다 감탄한다. ‘, 이래서 미국을 노인 천국이라 부르는 구나싶다. 드넓게 펼쳐진 골프장에서 한갓지게 골프를 즐기는 노인들을 보나, 클럽하우스에서 활기차게 댄스를 즐기는 노인들을 보나, 노년의 삶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다. 256만 평의 광활한 대지위에 골프장은 물론 극장과 경마장, 도서관 등 각종 레저 시설이 완벽하게 들어서 있다. 주민 42000명의 삶이 쾌적하도록 각종 시설과 주변 환경을 보살피는 종업원만 1000여 명에 달한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는다면 노인들에게 그만하면 지상낙원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고 있는 친지가 들려 준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여럿이 어울려 정겹게 골프를 치고 즐겁게 춤을 추고 합창단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노인들이 있는 한편으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다시 말해 조용히 죽어 가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은퇴 커뮤니티가 일반 동네와 다른 점은 주민들 중에 젊은이나 아이들이 없다는 것. 동네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떠들고 하며 만들어 내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없어 항상 조용하다. 그래서 언제 보나 평화롭고 잔잔한 풍경이 이어지는데 그 고요함이 느끼기에 따라서는 적막감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은퇴한 노인들만 모여 사는 조용한 그곳이 마치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정거장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 살던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평소 가깝게 지내던 다른 노인도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 옮는 전염병도 아닌데 말이다. 특히 배우자가 죽으면 남은 한쪽은 상실감에 빠져 극도로 건강이 악화되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원인은 남은 삶에서 희망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삶의 마침표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본다면 석양에 걸린 삶은 허무와 절망일 뿐이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나는 죽음을 삶의 쉼표로 본다. 우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듯이 이생을 마치고 나면 하늘나라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곳에 또 다른 삶, 영생이 있다고 믿으면 절망 대신 희망이 찾아든다.
죽음은 삶의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먼저 떠난 사랑하는 가족, 친구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의 삶도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다.
 
이제 나이 여든, 나도 어르신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 태양이 황혼에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것처럼, 경륜과 지혜로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욕심을 부려 본다.
 
<99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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