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음악 이야기 (6)
HOME 회사소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뉴스홈 > 뉴스플러스 > 기고/연재
2016년09월12일 00시00분 680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음악 이야기 (6)
황만섭(재독한인총연합회 자문위원)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치 어떤 위트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개념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있으며, 음악은 바로 언어 저편의 언어다라고 설파한다.
 
다음 차례는 슈만이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Alexander Schmann 1810-1856)은 쯔비카우에서 태어나 18세 때에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찌히로 간다. 어느 날, 자기 고향출신 교수가 자기 집에서 하는 작은 음악회에 슈만을 초청했고, 거기서 피아노를 치던 9살짜리 소녀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사람이 클라라.
 
그 뒤 슈만은 클라라 아버지한테서 피아노를 배웠고, 클라라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클라라에게 청혼을 한다. 클라라 아버지는 대노 한다. “미친 놈, 너같이 하찮은 놈이 어찌 내 딸에게 감히 청혼을 하느냐? 절대로 안 된다고 소리쳤고, 슈만은 저는 절대로 결혼을 해야겠습니다라며, 법정 투쟁을 5년간 벌인 끝에, 재판에서 이긴 슈만은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아름다운 21살의 클라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원래 슈만은 피아노곡만 열심히 작곡하는 음악가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부인을 위해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훗날 슈만은 가곡을 작곡한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데, 나는 맨날 피아노곡만 작곡하느라 시간을 보냈다고 한탄할 정도로 가곡 작곡에 몰두한다. 클라라는 당시 독일 최고의 피아니스트였고, 노래 또한 잘 했다. 남편은 작곡하고 부인은 노래하였으니 이 세상에 이 두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정도로 깨가 쏟아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낸다.
 
세계 음악사가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슈만과 클라라 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일 것이다. 그냥 두 사람만을 위한 사랑의 승리가 아니라, 음악의 승리라고 하는 게 맞는 말 일 것이다. 이들의 사랑이 아니었던들 슈만의 주옥 같은 가곡들을 아마도 우리가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1840년 결혼하던 그 해에 슈만은 1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해 가히 슈만의 노래를 위한 해라 일컬어질 정도였다. 그의 걸작 가곡집 <여자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미테르의 꽃> <어린이의 정경> 등 헤아릴 수 없는 노래들이다. 그는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당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노래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오라고 썼고, 그는 자주 내 스스로 생활한 것밖에는 노래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뒷날, 슈만은 뒤쎌도르프 궁정악장으로 초청받아 뒤쎌도르프에 살고 있을 때, 그가 41살이 되던 해에 슈만은 정신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치료를 받는 동안 클라라는 열심히 병문안을 다닌다. 후에 병세가 너무 악화되자 병원 측에서 클라라의 면회까지도 금지 시키자, 클라라는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한다.
 
슈만은 정신병으로 46세에 죽었고, 그 후로 클라라는 40년을 혼자 살면서 6남매를 훌륭하게 키우는가 하면, 남편의 전기를 써서 음악사에도 큰 업적을 남겼고, 또 한편으로는 시간만 나면 남편의 곡을 들고 연주여행을 떠나는 독일 최고의 현모양처였다. 그래서 지금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100마르크짜리 독일지폐에 새겨졌던 여자가 클라라였고 뒷면에 희미하게 배경으로 나오는 피아노가 클라라가 쳤던 피아노다.
 
슈만은 본에 있는 공원묘지에 묻혀있고, 함부르크 출신 브람스는 비엔나 음악가들의 묘지에 안장되어있다. 브람스의 동상은 비엔나의 카를스 교회 앞 공원에 세워주었다. 브람스는 후반생의 37년간을 비엔나에서 살았기 때문에 비엔나에서는 그를 기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음은 핀란드의 시벨리우스(Sibeliusksen Puisto 1865-1957)의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핀란디아. 바이올린 협주곡, 카렐리아 모음곡, 투오넬라의 백조, 7개의 교향곡 집, 예배음악 등 그의 활동은 왕성했고 광범위했다. 그래서 그의 업적은 빛난다. 헬싱키 시베리우스 궁원에는 24톤의 강철 관으로 된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시벨리우스 기념조형물과 그의 얼굴 모양이 세워져 있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핀란디아는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곡이다.
 
시벨리우스는 나는 숲을 거닐 때 커다란 바위를 스테이지로 하여 새들을 위해 긴긴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고, 돛배를 타고 여행을 할 때엔 대해(大海)를 향해 즉흥곡을 켰다고 회상한다. 소년 시절의 시벨리우스에 대해 같이 자란 한 친구는 그는 몽상가였다. 그의 강한 환상력의 영양(營養)을 자연에서 받았다. 자연의 풍경이 주는 인상은 그에게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고, 사크스마키 숲 속을 쏘다니는 것을 즐거워 했으며 옛 이야기에 나오는 요정을 찾아 헤맸다. 그는 특히 일몰을 좋아해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면서 그 빛이 사는 신비의 나라를 공상했다고 회상한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에는 그가 사랑하는 북구의 대자연이 항상 바닥에 흐른다. 핀란드는 70%가 침엽수로 덥혀 있고, 국토의 9%정도가 호수, 경지는 6% 남짓이고 한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나라다. 그는 내가 <핀란디아>를 작곡할 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젊은 날에 보던 내 고향의 정경이었다고 회상한다. 그의 대표적 작품인 <핀란디아>1899년에 나왔다.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고, 국민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연극 <역사적 정경>이 상연되었을 때 그 부수 음악을 작곡하면서 마지막을 힘찬 교향시로 맺은 것이 나중에 독립된 곡의 <핀란디아>가 된다.
 
핀란디아는 국민찬가다. 억압된 국민분노를 소리로 담아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러시아 관헌들의 연주 금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그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곡이 되었다. 웅대하고 정열에 넘친 이 곡은 1919년 핀란드가 마침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여 공화국이 선언되었을 때 경축식전(慶祝式典)에 연주되었고 지금도 국가(國歌) 이상으로 사랑 받는 곡이다.
 
헬싱키 여행은 스톡홀름에서 실자라인호화 쿠르즈를 타고 배에서 1박을 하면 그 다음날 아침 헬싱키에 도착한다. 하루 종일 헬싱키 관광을 한 다음 다시 그 배, 그 선실에서 다시 1박을 하면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스톡홀름이다. 운 좋게도 나는 몇 번인가 이런 여행일정을 통해 시벨리우스의 기념공원을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행운이었다.
참조 : ‘세계음악기행(김성우)
사진: 로베르트 슈만, 장 시벨리우스
 
<99417>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기고/연재섹션 목록으로
[기고/연재]상냥한 정여사가 ...
[기고/연재]Bericht Eroeffnun...
[기고/연재]그래서 삶은 아름...
[기고/연재]김대웅의 서양미술...
[기고/연재]스페인 안달루시아...
 

이름 비밀번호
[1]
다음기사 :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5) (2016-09-12 00:00:00)
이전기사 : 작곡가 이도훈의 클래식 라운지 (2016-09-12 00:00:00)
경서인한인회의 "코리아의 밤"행...  
2017 재독한인테니스선수권대회
제33회 전독 한인골프대회
제22회 한우리한마당체육 문화행...
에쎈한인교회 - 소말리아 어린이...
자동차퍽치기 당하다!?
책&삶에서 독일 소식을 전해줄 ...
한글로망 자랑스런 한글 세계화
    답변 : 한국을 한국이라 말...
독일의사들 선운사에서 한국기공...
피해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Damenmode bis 80% Duesseldorf-...
아름다운공간
CoOpera 가이드 모집공고
총신대 한국어교원양성과정과 함...
2016학년도 재외동포 국내초청교육(모국수학) 과정 수...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포럼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