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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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09월12일 00시00분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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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7)
정원교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독일지부장)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에집트를 탈출해 시나이에 도착했을 때 십계명을 받았다.
이 때 예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 석판>과 대사제장 아론이 지녔던 <싹이 돋은 지팡이>, 유대민족이 피난 다니면서 먹었다고 하는 식량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넣어둘 언약궤 제작을 지시하자 나무로 만든 상자에 금을 입히는 등 언약궤제작에 정성을 다했다.
 
이후 이 언약궤는 가나안(Kanaan) 으로 들어가기 위해 언약궤를 메고 가로놓여있는 요르단 강을 건너기 위해 손을 대니 둘로 갈라지거나 예리코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신비함을 보여주었다.
 
바위 돔 자리는 원래 다윗이 사들여 아들 솔로몬이 하느님의 제1의 성전을 건축하였던 곳이다. 그런 곳을 서기 636년 이슬람족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마호멧이 신비의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며 이슬람의 성지로 만들었다.
바위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문틈으로도 들여다 볼 수 없었기에 엽서카드의 사진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돔 내부의 대리석 기둥들의 색깔과 높이, 두께 등이 서로 틀리다고 하는데 이 기둥들이 비잔틴 때나 로마시대의 신전이 있던 곳의 기둥을 그대로 이용하다 보니 기둥이 서로 틀리게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넓은 사원 내에는 완전무장을 하고 초소를 지키고 있거나 자동소총을 들고 순찰하는 군인들 이외에도 여성들의 옷차림을 단속하는 사복경찰들이 자주 눈에 뜨이는 삼엄한 사원이었다.
 
통곡의 벽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당할 당시 유대인을 무참하게 살상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벽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로마군에 함락되면서 해외로 강제 추방되었던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무참하게 부서져버린 성전을 보고 비통한 나머지 부서진 성전의 벽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다는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는 두 가지다.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에 위치한 옛 성당(聖殿)의 일부이자 유대인의 성지로 되어 있다.
원래는 요르단 땅이었던 것을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나서부터 이곳을 강제점령하고 있는 상태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이유
1사원이 지어진 이후 약4백년이 지날 즈음 헤로데왕이 백성들을 단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제2의 사원을 건축했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세계각지로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던 최초의 이유는 이 제2사원 때문에 로마인과 유대인과의 갈등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갈등은 결국 로마와 치르게 되는 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전쟁에서 이긴 로마의 티투스 (Titus) 장군에 의해 성전은 철저히 보복 파괴되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예루살렘과 제2의 성전을 잃은 유대인은 로마군에 쫓겨 세상 밖으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통곡의 벽(Klagemauer)
통곡의 벽으로 들어 갈 때는 남녀의 입구가 따로 나뉘어 있는 곳으로 갈라져서 들어가야 했다.
즉 남성이 기도하는 곳에 여성이 들어갈 수 없으며 여성이 기도하는 곳에 남성이 들어갈 수 없게 격리시켜 놓았다.
통곡의 벽 앞에서 유대인들은 유대경전을 갖다 놓고 서서 또는 앉아서 머리를 흔들어가며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순례객의 일부는 종이에 소원을 적어 벽에 꽂아두기도 했다. 소원이 적힌 수많은 쪽지들은 2년마다 한 번씩 수거하여 감란산(Olivenberg) 에 뭍어두고 있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의 복장이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빵떡모자처럼 생긴 키파(Kippah) 를 쓴 사람들은 흰색의 옷을 입었고 정통 유대인들은 검은색 코트를 입었다.
 
우리들이 방문했을 때가 한낮의 뜨거운 햇빛 속이었는데도 검은 코트를 입고 머리 크기보다 작은 모자와 양쪽 귀 윗부분부터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중절모까지 쓰고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기도하는 유대인도 볼 수 있었다.
 
통곡의 벽에 꽂혀 꼬리를 내밀고 있거나 수거되지 말라는 마음에서 바위틈 깊숙이 집어넣은 소원쪽지에는 무슨 애틋한 사연들이 적혀있을까 ?
 
감람산에서 태워지기 전까지는 그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나의 소원도 하나 적어 꽂아놓고 올걸 그랬나 보다.
통곡의 벽 가까이에 수도가 있지만 두 손으로 얼굴을 닦지 않는다는 이유를 아느냐고 묻는다.
옛날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 세수를 해야 했는데 한 손에는 두레박을 쥐고 있어 다른 손만 쓸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겟세마니(Getsemani)
<겟세마니>의 뜻은 <올리브기름을 짜는 압착기> 이다.
 
겟세마니의 감람산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군에 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 올랐다는 산이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성경중에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라는 기도를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성모 마리아가 여기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겟세마니에는 아름다운 색채로 지어진 카도릭 성당, 그리스 정교회, 둥근 지붕마다 금을 입힌 러시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나타날 때에는 이곳 감람산에 나타 날 것으로 믿고 있으며 죽은 후에는 감람산에 묻히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무덤은 우리나라처럼 땅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돌로 만들어진 관에 눕혀진 채 줄을 맞추어 지상에 놓여있다. 감람산 지역에는 아랍인들의 마을도 있지만 이곳에 뭍히는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뿐이다.
 
지상에 놓여있는 석관에 특이한 점이 있다.
석관의 뚜껑이 하나같이 관보다 길이가 짧아 턱이 져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석관마다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과 아이주먹만한 돌을 여러 개씩을 올려 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묻지 못하고 돌아왔다만 죽어서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사망하면 3일장이나 5일장을 치르는 동안 시신을 집에나 장례식장에 보존하고 있다. 유대인은 죽음이 확인되는 순간 장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으면 당일에 시신을 매장하며 특별한 경우라도 이틀을 넘기지 않는 장례문화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장례의 경우를 보더라도 죽음이 확인된 순간 장례는 즉시 이루진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확인한 요셉이 장례풍습에 따라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의 시신을 내려주기를 요청하자 바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염을 끝내고 바로 마포에 싸서 동굴 속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께서 채찍질을 당한 성소
가톨릭에서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께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까지의 중요한 열네 장면을 묵상하며 드리는 기도이다.
 
우리 일행은 이 십자가의 길이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으며 예수님께서 받은 수난의 현장을 걸으며 순례했다.
중요건물마다 입구위에 십자가의 길 몇 번째인지를 로마숫자로 새겨져 있었고 수난의 고통 모습을 조각해 두고 있었다.
 
가톨릭에는 전대사와 한대사라는 예식이 있다. 전대사는 세상에서 지은 벌을 모두 용서를 받는 것을 말함이요 한대사란 그 벌의 일부만을 용서 받는 것이다. 이 전대사와 한대사는 각 성당이나 성지 등에 마련된 14곳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를 바쳐야 모든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다.
 
우리들이 방문한 성당제단에는 로마군의 지휘아래 방금 십자가를 세우고 있는 옆에 예수께서 붉은 옷을 입고 서있는 대형 그림이 걸려있다. 모자이크로 된 다른 그림을 자세히 보면 채찍 끝에 돌이나 쇠로된 구슬이 달려있음을 볼 수 있는 데, 이런 채찍으로 고문을 당했을 생각만으로도 그 아픔이 느껴지는 듯 했다.

유다(Judas)는 자신의 배신으로 예수님께서 죄 없이 빌라도 군사에 잡혀가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배신의 대가로 받았던 몸값을 모두 성소에 내놓고 자살을 택했다.
 
바리세(Pharise )인들은 예수님께서 <스스로가 왕임을 자처하고 로마에 대한 반역을 기도했다> 며 죄를 씌었지만 그것만으로 사형을 내릴 정도의 죄목이 아니어서 본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그러자 몰려온 바리세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해야 한다며 아우성을 치자 <너희들이 바라던 일>이라며 마지못해 십자가형을 언도 하게 된다. 이 바리새인 즉 유대인들은 여호와가 유일신이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돌아가시게 했고 구세주는 미래에 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스라엘에서 공존공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다.
 
마태복음 2313-33절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세인을 안하무인하고 방자하기 짝이 없는 인종이라고 언급하고 있음에도 이스라엘에서 공존공생하고 있음은 물론 세계경제의 힘을 쥐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세주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을 다녀갔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를 믿고 있는 유대교에서는 구세주는 앞으로 감람산에 나타날 것이며 그 때는 유대인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며 예수님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 같은 나라에서 같은 법의 체제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종교적으로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 형을 받은 죄수들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의 고통을 덜기위해 먼저 채찍질부터 한다는 데,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당했다는 곳에 조그마한 성당이 지어진 곳을 순례했다.
 
유태인 노() 안내인은 우리들을 의자에 앉히고 아무 말 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앉아서 예수께서 채찍질을 당하는 그림을 바라보기만 하라며 각자 명상의 시간을 가지게 했다.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쓰러진 세 번째 십자가의 길 위의 성당 외에 아홉 번째는 헬렌콥틱성당(St.Helen Coptic Church)에 만들어진 것을 들러 보기도 했다. 성 헬렌콥틱성당은 에집트에서 발전했던 영향으로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와는 다른 모습의 성화를 가지고 있는 데 상당히 동양적이다. 성인들의 성화에서도 황금색보다는 붉고 푸르며 초록색 등의 원색을 많이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그 마구간 위에는 거대한 성당이
예수님이 실제로 태어난 곳은 나자렛 베들레헴이다.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은 루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으며 헤로데왕의 갓 태어난 아기들을 살해하라는 위협을 피해 가족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헤로대왕 사망이후 나자렛으로 돌아와 베들레헴에서 생활했다.
 
예수님의 탄생지였던 마구간위에 세워진 성당은 그 때의 성당원형 그대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예수님 탄생성당의 출입문이 일반 성당과 같이 크게 만들어졌었지만 지금은 크기에 비해 출입문의 크기가 1,20 m x 0,80 m에 불과한 아주 작은 문으로 바꾸어 놓았다. 성스러운 장소에 말을 타고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고 이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머리를 숙이게 하였다 하여 이 문을겸손의 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들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된 나무 바닥에는 헬레나 왕후가 이곳에 처음으로 성당을 세울 때의 원형 모자이크 바닥이 선명한 색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들이 순례한 예수님 탄생 성당은 한창 성당내부가 수리 중에 있을 때였고 안전상의 이유로 장막으로 가려져 있거나 빔(Beam) 설치와 먼지로 매우 어수선한 때였다.
 
예수님 탄생 성당의 중앙 제단의 왼편 계단을 내려가면 제단 바로 아래쪽에 3,5 m x 12.30 m 정도 되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굴()이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깊고 넓은 곳을 동굴> 이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은 <패어 들어간 작은 굴()> 이라고 해야 맞겠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굴바닥에는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하는 열네 개의 각을 가진 별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스 정교회와 카도릭 종파 간에 어떤 나눔의 협약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예수님 탄생성당 전체가 그리스 정교회의 소속이면서도 예수님께서 출생한 베들레헴의 14개의 각을 가진 별이 있는 아주 작은 굴은 카도릭 소유로 되어 있다.
 
어떤 협상기술력이었기에 <이 건물을 네가 다 가져도 건물 내의 이곳만큼은 내가 가진다.> 는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예수님 이름 뒤의 그리스도는 왜 붙는가 ?
예수라는 이름 뒤에 따라 붙는 그리스도(Christus)는 옛 그리스어인 <기름을 부은>의 뜻을 라틴어로 표기한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 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지체 높은 사람에게나 주어지던 명예로운 일로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예수메시아> 를 뜻하는 것이 되겠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더 붙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예수님께서 여러 기적을 보이며 복음을 전도하자 자연히 군중들이 따르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큰 무리를 이루게 되자 오합집산으로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기 보다는 조직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을 때, 누군가가 메시아를 뜻하는 <그리스도>로 부르자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 예수그리스도라는 합성어는 예수에 메시아 구세주를 합성해서 부르는 것이라는 주장과 예수님을 따르는 단체를 뜻하는 이름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약에서부터는 예수님을<예수그리스도> 라고 쓰고 있다.
 
예수님을 뉘운 바위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이 안식일 전날이었고 유대인은 안식일에 시체를 만지면 부정을 타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에 안식일 전에 장례를 지내야만 했다. 안식일전에 장례를 치루기 위해서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으며, 아리마대 요셉이 본시오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줄것을 요구하자 부하를 시켜 사망을 확인한 후에 바로 내어 주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놓고 염을 한 바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님을 뉘운 이 바위에 성물을 얹어 놓으면 은총을 받을 수 있다> 고 누군가가 말했는가 보다.
순례객들은 묵주 등을 올려놓고 기도를 하거나 입을 맞추기도 하지만 아예 배를 깔고 누워 온 몸을 비벼대는 흑인여성도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마 그녀가 지은 죄가 많았나 보다> 며 광신적인 행동에 측은지심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000여 년 동안 예수님을 뉘운 이 바위에 얼마나 많은 손길이 닿았던지 바위는 닳고 손때가 묻어서 반질거린다.
 
바위 뒤에 있는 모자이크 그림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이 바위에 모셔놓고 염을 하는 장면, 그리고 시신을 무덤에 묻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노안내인은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서 내려졌는지, 무슨 요일에 돌아가셨는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서 안식일 전에 모든 장례절차를 엄숙히 마친 일과 부활하신 일 그리고 인류의 좌와 벌을 혼자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오늘날 망자를 기억하는 행사에서도 어떤 삶을 살고 돌아가셨는 지와 사망일이 중요하지 무슨 요일이었으며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무덤
우리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도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지 않았다.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 내 차례도 올 것으로 기다렸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무덤이 있는 곳에서 무슨 기도를 그렇게 오래하고 있는지 그리스정교회 신부님이 기도하느라고 시간을 끌고 있는 순례객을 강제로 끌어내거나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빨리 나오라고 험한 얼굴을 보이며 무덤 안에다 대고 소리도 지른다.
 
인자하게 보여야만 할 신부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세계에서 몰려오는 순례객들이 질서 속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참례케 하려면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쓰러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현장으로 전해지는 골고다로 오르는 계단이 있는데 성당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다. 그리스 정교회 관할의 중앙 제대에는 유리함을 통해서 골고다의 바위도 볼 수 있으며 제대 아래에는 큰 구멍이 하나있는 데 그곳에 십자가가 세워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99414>
 
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1)
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2)
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3)
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4)
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5)
나의 이스라엘-요르단 순례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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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redaktion@kyoposhinmun.d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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