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 작가 채길순이 만난 서유럽에서 희망을 노래한 개척자들 ① <우복희, Bock-Hee Schmidt>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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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09월05일 00시00분 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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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채길순이 만난 서유럽에서 희망을 노래한 개척자들 ① <우복희, Bock-Hee Schmidt> 편
채길순(소설가 /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 본보 초청으로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에센 지역에서 순회강연 및 토론회를 마친 채길순 교수가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가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 토론회에서 만난 이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삶의 여정을 생생하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프랑크푸르트 시내 한복판에 있는 공원. 그 한쪽에 낮은 울타리가 쳐진 한국 정원이 있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 정원으로 들어서자 정자각 두 발을 담근 연못에 연꽃이 한창이고, 주변에 무성한 풀 나무들이 생기가 뿜고 있었다.
 
우복희 정방지 두 여인이 한국정원 안 건물과 주변 길을 청소하는 동안 필자는 천천히 정원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은 자원봉사자로, 정해진 때에 청소를 한다고 했다.
“지 같은 사람 머 소개할 사연이 있는교?”
 
아직도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우복희 씨는 소녀처럼 수줍음을 탄다. 금방이라도 달아날 것 같아, 정원을 떠나 곁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캠퍼스 노상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마주앉았다.
 
독일에는 언제 오셨느냐는 물음에 우복희 씨는 거침없이 “1966년 4월에 3년 계약 간호사로 입국하여 1968년에 독일 남자 슈미트와 결혼하여 아이 셋을 낳아 살고 있다.”고 단숨에 자기소개를 했다. 소녀 같은 수줍음이 얼굴에서 가셔지고 작은 체구답지 않게 당당했다.
 
독일에 오신 동기는요? 나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의 권위적인 말에 순종하지 않아서 늘 “왜?” 혹은 “아니요.”에 익숙했다. 그래서 조부모로부터 “검은 양 속에 흰 양”이라는 핀잔을 받았다. 이런 생각이 내내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고, 독일은 왜인지 ‘권위 의식이 없는 합리적인 나라일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파독 간호사 모집 광고가 나왔을 때 주저 없이 지원하여 독일 땅에 첫발을 내딛었다.
 
독일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누구나 그랬겠지만,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컸다. 솔직히 내게는 독일어가 어려웠다. 게다가 말 수가 적은 내 성격 탓도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접촉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슈미트를 만났다. 그의 성격 역시 나와 비슷하여 말 수가 적었다.
 
슈미트(Volker Kare Schmidt)가 마치 귀한 보석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만났어요? 내게는 정말 보석 같은 사람이다. 옛 동독 출신으로, 한국어 3학기를 배우는 학생 신분이었고, 한국어에 익숙해 있었다. 그는 이미 동독의 대학에서 러시아 프랑스 영어와 같은 각국의 말을 유창하게 구사할 만큼 여러 나라 말에 익숙했다. 내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도시 경주 출신’이라고 소개하자, 그는 익숙한 한국어로 나도 모르는 한국의 역사, 특히 불교에 대해서 말해줘서 깜짝 놀랐다. 나는 집이 경주 석굴암 부근이었고, 어려서부터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는 말을 듣더니 그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 뒤부터 그는 내게 불경(바이블)을 타자 쳐서 보내왔고, 내게는 그런 슈미트가 성자처럼 느껴졌다.
결국 성자가 복희씨를 선택한 셈이네요. 필자의 말에 우복희 씨의 얼굴이 또 소녀처럼 붉어졌다. 필자는 그녀가 불교 신자인지는 묻지 않았다.
 
독한 가정이면 좀 드문 예인데, 이질적인 문화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남편 집안과 우리 집안은 근본적으로 윤리 도덕의 차이가 없다고 본다. 유럽문화와 동양문화의 차이를 말하기 전에, 독일인과 한국인, 혹은 인간 대 인간 관계를 먼저 생각하면 별 차이 날 것이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그랬다.
 
슈미트에 관해서 좀 더 들려주세요. 그는 학문적인 토론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도움으로 1970년대 학생 변혁운동 시기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한국어와 함께 역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서로 공통된 문제에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 각별한 기억으로, 1972년 프랑스에서 민권운동가 콘벤디트가 우리 마을, 우리 집으로 망명하여 남편과 유치원을 함께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한때 절친 동지였으나 이론과 현실적인 견해 차이로 몇 해만에 각기 제 갈 길을 갔다.
 
부부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예를 들어주세요. 아들이 함께 있을 때였는데, 내가 그에게 커피 잔을 집어던지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슈미트는 말없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 뒤에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어와 “나랑 산책하실까요?” 하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반응이 이러니 이제 더 짓궂은 시험 따위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반응이 없는 사람. 화 낼 일에 말을 삼가 화낸 사람을 도리어 숙연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고향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는데,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요양할 셈으로 석굴암 부근에 집을 짓고 살았으나 얼마 안 가서 엄마가 세상을 떴다. 내게는 목탁 소리에 젖어 불국사 층계를 오르내리면서 그림을 그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 고향에 가고 싶지 않나요? 고향을 떠나온 지 50년이 넘었지만 35년 만에 딱 한번 고향에 다녀왔다. 이미 어른들은 세상 뜨고 없었다. 아버지 산소 비석에 ‘맏딸 우복희’와 ‘사위 슈미트’가 새겨져 있었다. 기자들이 내 사연을 듣고 나를 찾아와 취재를 요청했지만 거절하고 창피하여 숨어 다녔다. 지금은 우리 집이 헐려서 자취도 없으니 더 이상 고향에 가고 싶지 않다. 다행히 막내딸이 한국에서 한 5년 살다 왔는데, 엄마를 대신하여 서울 경주를 오가면서 딸 노릇을 충실히 하고 돌아왔다.
 
자녀 교육에 관해서 한마디 들려주세요. 내가 남의 간섭을 싫어하고 스스로 제 갈 길을 선택 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거나 되라거나, 어떤 가르침도 말하지 않았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우복희. 그녀는 각별히 루 안드레아스살로메(Lou Andreas-Salomé)를 좋아한다. 동시에 니체, 릴케, 프로이트 등 당대 유럽 최고 지성인들에 대한 관심 많았다. 그들의 저서를 읽는 일에 여념이 없다. 그녀가 한국 정원 청소 자원봉사로 일하고 얻는 것이라면 시청에서 제공해주는 문화공연 표 때문이란다. 그녀의 취미는 독서를 넘어 문화 공연까지 끝이 없는 셈이다.
 
우복희 슈미트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유를 나름 정리해보았다. 맑고 성숙한 영혼을 위해 예술 역사 철학 등의 문제를 탐구하거나, 자신을 수양하며 사는 부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99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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