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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낭만을 즐기자~~ 2009-01-04 04:10:35
redaktion 조회:8343     추천:681




 면적: 7만 8866 km²
 전압: 220 v / 50 Hz
 인구: 1,046만 명
 정치: 의원 내각제
 언어 : 체코어(서부), 슬로바키아어(동부)
종교: 카톨릭
1인당 국민 총 생산: 5,250 USD
나라꽃: 보리수
통화: 코루나(kcs)
영업시간: 평일 09:00-18:00, 토요일 09:00-13:00
은행: 08:00-14:00, 토,일요일은 휴무


특징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둘러 싸인 중부 유럽의 내륙국인 체코는 서부 보헤미아 지방과 동부 몰라비아 지방으로 나뉜다.
1968년에 시작된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으로 불리는 1989년의 민주화 운동을 거쳐 공산주의를 마감하고 자유 민주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여 화려한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대자연을 배경으로 스케타나, 드보르자크 등의 체코 민족주의 음악이 꽃핀 곳으로 유명하다.

기후

대륙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의 중간으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상당히 더우나 습기가 적어 그렇게 무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교차가 심하여 여름이라도 긴팔 옷이 필요하다.

역사

5~9세기 슬라브계 그리스도 교도에 의해 건국된 대모라비아 왕국은 체코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바츨라프 1세때 가장 번성하였으며 14세기에 카를 4세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프라하는 중부유럽의 중심도시가 되어 오늘날 프라하의 명성을 만드는 기초가 형성 되었다. 9세기경 체코와 슬로바키아 민족이 통일 국가를 수립하여 최근까지도 사회주의국가 체코슬로바키아로 알려져 왔던 두 나라이지만 실질적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같은 나라였던 시기는 그렇게 길지 않다. 9세기 이후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점령되었고 10세기에는 보헤미아 왕국으로 번영하여 보헤미아 왕이 폴란드와 헝가리 왕을 겸하는 등 국력이 강해졌으면 14세기에 이르러서는 카를 4세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에 오를 정도로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다. 
 
그러나 15세기 초 종교 개혁자 후스에게 위협을 느꼈던 로마 법왕이 후스를 이단자로 몰아 처형하면서 시작된 후스파와 교황파의 전쟁으로 16세기에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 둘어가게 되었으면 그 후 19세기 후반에는 오스트리아, 독일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차 세계대전 후 슬로바키아의 민족 운동에 호응하여 체코슬로바키아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중에 다시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고 1945년 소련에 의해 해방되어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으나 그 후 자유화 민주화의 소리가 높아지고 정치 및 경제의 개혁 바람이 불면서 1968년의 자유화 정책 프라하의 봄은 그 결실을 맺는다. 1993년 1월 1일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 독립국가로 분리 되었다.


프라하 (Praha)



"황금의 도시 " "첨탑의 도시" "유럽의 미술관" " 북쪽의 로마" " 동유럽의 보석" 등  수 많은 별명을 갖고 있는 이 도시는 9세기 경부터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왔으며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중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이기도 하다.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런 옛 도시 프라하는 곳곳에 11-13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 13-15세기의 고딕 양식, 16세기의 르네상스 양식, 17-18세기의 바로크양식 건물들이 2차 대전 중에도 거의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인구는 약 120만 명 정도로 시가지 한 가운데로 불타바(Vltava)강이 흐르고 있으며 스케타나, 드보르자크 등의 대 작곡가와 문호 카프카를 배출한 도시로 역사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임을 확인하게 한다.

1) 바츨라프 광장)Vaclavske Namensti)

아름다운 보리수 가로수가 이어지는 이 광장은 광장 이라기보다 번화한 대로 같은 느낌으로 시가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면 길이 750m, 너비30m, 의 길쭉한 형태로 프라하에서 제일 큰 광장이다. 이 광장은 체코의 역사 속에서 있어왔는데 1918년에는 오스트리아로 부터 독립을 축하하는 인파로 이 광장이 메워졌으며, 194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공화국이 이 광장에서 선언되었다.

국난이 닥쳤을 때 중부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굴에서 잠을 자고 있는 기사를 깨워 그들을 이끌고 적군을 퇴치했다는 전설의 주인공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 이 시가전차가 달리는 광장 중앙에 서 있다.
또 1968년 "프라하의 봄" 때는 침입한 소련군에 대한 강력한 항의 데모가 이 광장에서 일어났다가 비극으로 끝났으나 1989년 이 광장에 모인 체코의 군중은 끝내 개방화의 물결을 가져 올 수 있었다. 광장 한켠에 "프라하의 봄" 과 스칼린의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2) 구시가 광장 (Staromestska Namesti)

구시가에서 표적이 되는 건축물로는 프라슈나 브라나(Prasna Brana)를 들 수 있다.

15세기 말에 세워진 이 탑은 옛 성곽의 출입문이었으며 한때 화약고로 사용된 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70m 의 첨탑이 솟아 있는 구 시청사는 1338년 세운 것으로 시계탑의 천문시계는 나치의 파괴에도 살아 남아 아직도 시간마다 작은 종소리를 내는데 매 시간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며 그리스도의 12사도 인형이 나타났다 얼굴을 내밀고는 사라지낟.

그 밑에 있는 2개의 시계는 천체의 회전과 사계의 이동 변화를 나타낸다고 한다. 광장 중앙에는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자인 요하네스 후스(Johannes Hus)의 동상이 서 있고 주변의 벤치에서는 시민과 관광객이 앉아 환담을 나누며 체코맥주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광장 근처의 마이슬로바(Maislova) 거리 2번지에는 유대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기도 하다.

3) 카를교 (Karluv most)

카를교는 볼타바강에 걸쳐져 있는 500m  정도의 돌다리로서 1353년에 건설된 중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다리이다.
1353년 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약 150년 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각도가 조금씩 휘어져 보이기도 한다. 다리 난간에는 15개씩 모두 30개의 성자상이 늘어서 있으며 여기서 프라하성을 올려다보는 전망이 또한 멋있다. 프라하에 황혼이 들면 카를교가 저무는 석양에 퍽 잘 어울린다. 다리자체의 아름다움은 물론 구시가쪽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과 볼타바강의 풍경은 너무나 휼륭하며 자동차통과를 일체 금지시키고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다. 13개의 다리가 있는 볼타바 강은 동독으로 흘러서 엘베강이 된다.

4) 프라하 성(Pracsky Hrad)



프라하의 상징 프라하 성은 12세기에 로마네스크양식으로 건축되었다. 현재 이 성은 14세기 체코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 지방에 황금시대를 가져온 카를 4세가 고딕 양식으로 건축한 것으로 중세의 성벽이 빙 둘러싸고 있다.
보물관 황금장식으로 이름나 성십자가 교회 (Kapie sv. Krize)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두 개의 탑으로 유명한 "성비타대성당" 가장 오랜된 "성 이지르 교회" 등이 볼 만하며 16세기 말까지 보헤미아 왕가의 궁전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a) 성 비타 성당(Katedrala sv. Vita)

프라하 최대의 고딕 양식으로 10세기 부터 시작되어 1929년 완성되어 프라하의 역사가 세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다.

b) 성 이지르 교회 (Bazilika sv. Jiri)

10세기 전후에 세워진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음향효과가 좋아 매년 스메타나 기념일인 5월 12일 부터 음악제 "프라하의 봄"의 주연주회장이 된다.


5) 유대인 지구 (Josefov)



구시가 광장에서 마이슬로바 거리로 나와 막다른 곳에서 왼쪽으로 돌면 몇 개의 유대교회와 유대인묘가 남아있다. 13세기 부터 유대인 거주지역으로 게토가 생긴이래 유럽 최대의 유대인 지역이 되었으며, 히틀러 점령 이전에 도피자를 합하여 6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묘지에는 1270년 경에 세워진 스타로누바 시나고그는 내부가 건축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지구는 큰 아카시아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서 낮에도 시원하며 화강암과 사암의 묘석은 다양한 모습으로 배열되어 있다. 묘비에 새겨진 헤브라이 문자는 오랜 세월에 쓸려 판독할 수 가 없다. 지하의 벽 일면에는 나치에게 살해된 77,292며의 성명과 사망장소, 연월일 등이 적혀있다.

6) 황금소로 (Zlata ulicka)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기거했던 좁은 골목으로 16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색색의 작은 집들이 동화속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작은 골목의 끝부분 성벽이 있으며 그 성벽의 가장자리에 탑 달리보르카가 세워져 있다. 이 탑은 중세의 감옥이었으며 그 길에 황금세공사와 성의 일꾼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작은 집들 중 22번지에서 작가 카프카가 많은 단편을 썼다 한다. 또 이 골목에는 귀여운 도안의 우표를 파는 가게가 있는데,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의 아트우포도 구할 수 있다.



7) 벨베데레 궁 (Belvedere)



프라하성 북쪽에 서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프라하성의 여름궁전으로서 아름다운 2층 건물 앞에는 16세기의 청동제 분수"노래하는 샘" 으로 유명한 프랑스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자료제공 : 독일 부배여행사
www.bubetrav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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